이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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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전라북도 남원시를 소재로 전해온 문서. 남원에서 전해오는 고문서로는 『박세중가전고문서(朴世重家傳古文書)』로 알려져 있는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 소유의 고문서와 조선 중기 충신인 황진(黃進)의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온 『무민공황진가전고문서(武愍公黃進家傳古文書)』가 대표적이다. 그밖에 시문 모음집인 『이용화백세영수첩(李容華百歲榮壽帖)』과 『기묘제현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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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심(士心). 정숙공 김양경의 후손이며, 진사 김문세(金文世)의 아들이다. 두 아들 김덕원과 김덕흥은 모두 참봉을 지냈는데, 김덕흥은 뒤에 사헌부지평의 증직이 내려졌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반정 때 수문장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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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의 남원 출신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장원(長源), 호는 도촌(陶村).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이며,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연(金沇)[1587~1651]은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조에 폐모사건이 일어나자 문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형인 재간당 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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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달원(達源).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며,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유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587년(선조 2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계 양대박(梁大樸)의 종사관이 되어 군량을 공급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뒤에 아버지 김익복이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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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김익복은 순흥안씨 사재당(思齋堂) 안처순(安處順)의 손자사위가 되어 남원 지역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후손들이 대대로 남원에 세거하여, 지금은 전라북도 남원시 남골[木洞]과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社倉)에 살고 있다. 아들 김유(金瀏)는 정유재란 때 운량관(運糧官)으로 공을 세워 교관(敎官)에 증직(贈職)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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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의 후손이다. 김축은 위풍이 당당하였으며 뜻이 고결하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과 함께 전략을 세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여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조정에서는 김축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증직(贈職)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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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도원(道源), 호는 재간당(在澗堂).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고,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화는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며,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의병을 이끌고 여산까지 올라갔으나,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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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극(君極). 부원군(府院君) 박언부(朴彦孚)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된 박검종(朴檢宗)의 아들이다. 박세중은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용기가 있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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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집안 전래의 고문서. 전라북도 남원시의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의 고문서이다. 첫째, 공신녹권(功臣錄券) 2건과 둘째 교지(敎旨, 1623~1647) 11건, 셋째 완문(完文, 1846~1857) 3건, 넷째 호적단자(戶籍單子, 1747~1801)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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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선유(善由), 호는 삼괴(三槐). 봉사(奉事) 방덕이(房德駬)의 아들이다.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는 담양 출신으로 등재되어 있다. 『호남절의록』에는 천계(天啓) 갑술년에 무과에 급제한 것으로 되어 있다. 1624년(인조 2)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우후(虞候)로서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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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공거(公擧).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주부(主簿) 방후령(房後齡)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해진 현감 방복령(房復齡)이 백부이다. 사촌 동생인 방명달(房明達)은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방명선은 1627년(인조 5)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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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겸(仲謙).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고,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며, 방덕화(房德驊)의 아들이다. 방원익은 관직이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과 1624년(인조 2)의 이괄의 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형 방원진(房元辰)과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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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으로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房貴溫)의 증손이며,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다. 방원정은 해서(海西) 오정길(吳廷吉)의 문인으로, 문장과 행의(行誼)로 이름을 떨쳤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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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중온(仲溫), 호는 고봉(羔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제당 안처순(安處順)이며 아버지는 매담 안창국(安昌國)이다. 안선은 학문을 즐기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뜻이 크고 기개가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의 뜻있는 사람과 함께 군사와 군량을 모았다. 이괄의 난이 평정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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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전통시대에 외적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선 민간인. 의병이란 순수한 민간인 신분으로,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에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가리지 않고 의를 위하여 과감하게 일어선 의용병이다. 의병의 전통은 삼국시대에 비롯되었으며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한말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한말 의병은 항일독립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남원 출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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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장(德章), 호는 내성재(內省齋).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琴軒) 이대윤(李大胤)이고, 아버지는 판서에 증직된 이엽이며, 형은 춘파(春坡) 이유형(李惟馨)이다.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광해조 때인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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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명(李碩明)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이희선(李喜善)이다. 1583년(선조 1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 좌랑으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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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보(德甫), 호는 춘파(春坡).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琴軒) 이대윤(李大胤)이고, 아버지는 판서에 증직된 이엽으로,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활계 이대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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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사용(司勇) 임규(林圭)의 손자이다. 임대유는 1624년(인조 2)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금남 정충신의 의병에 들어가 반란군을 많이 참획하였다.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고, 서윤(庶尹)의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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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자량(子良), 호는 망북정(望北亭). 장성현감 장환의 아들이다. 장익한은 타고난 성품이 재주가 있고 민첩하였으며, 충의와 절개가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엄격한 가르침을 받아서 의리가 돈독하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겨우 14세였는데, 아버지가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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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유신(幼新), 호는 용계(龍溪). 고려 태사 충헌공 장길(張吉)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장숙(張叔), 아버지는 공조판서 장승세(張升世)이다. 어머니는 연안김씨(延安金氏)로, 장사랑 김승업(金承業)의 딸이다. 장환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쓰고 충효를 인륜의 으뜸으로 알았다. 그는 1612년(광해군 4) 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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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인. 수남방옹(水南放翁) 정훈(鄭勳)[1563~1640]은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 연간에 주로 활동했던 문인이다.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친을 모시고 남원으로 피란하였다가 그곳에 우거하며 생을 마쳤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방로(邦老), 호는 수남방옹(水南放翁).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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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서만(西巒)·소옹(素翁). 참판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자, 조옥(趙玉)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이며, 조유한(趙維韓)의 아우이다. 조위한은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수찬을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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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범 할아버지의 연세는 74세로 계유생(1933년)이다. 태몽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탯자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태어날 때 목에 흰 줄(탯줄)을 감고 나오면 구육(狗肉, 구탕, 보신탕)을 안 먹으면 좋다는 말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최도범 할아버지 부친의 성명은 최성술(成述)[삭녕최씨]이고, 모친은 최수모(秀模)[경주최씨]이다. 부모가 같이 최씨이지만 본관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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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숙(輝叔), 호는 폄재(砭齋). 영의정 최항(崔恒)의 7세손이며, 교리 미능재(未能齋) 최상중(崔尙重)의 아들이다. 최온은 1583년(선조 16)에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남다르더니 나이 11세에 명나라 장수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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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진옥(振玉), 호는 삼현정(三賢亭).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주부(注簿) 태귀생(太貴生)의 아들이다. 태상문은 기사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부사가 그에게 장사 1,000명을 거느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형제·숙질(叔姪)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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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협계(陜溪), 자는 기팔(起八).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현감(縣監) 태석(太碩)의 아들이다. 태팔회는 천성이 순후하고 용모가 단정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태복련(太福連)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군량도 모아 공주(公州)로 인조를 호가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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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조선시대 무신 무은(霧隱) 박세중(朴世中)을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이른바 ‘박세중가전고문서(朴世重家傳古文書)’를 보관하고 있다. 박세중은 고려시대 문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 박언부(朴彦孚)의 13세손이며 참판이 된 박검종(朴儉宗)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아 23살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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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문양공(文襄公) 한계미(韓繼美)의 후손이며, 승지(承旨)에 증직(贈職)된 한언윤(韓彦胤)의 손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왔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公州)로 달려가 인조의 어가를 호위하였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후 진무원종공신(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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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중구(仲久), 호는 고산(孤山). 별좌(別坐) 허사익(許思益)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 34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종묘서봉사(宗廟署奉事), 의영고봉사(義盈庫奉事),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 등을 역임했다. 1616년(광해군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