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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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載寧李氏 |
영어공식명칭 | Jaeryeong-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80년 - 이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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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61년 - 이애 사망 |
본관 | 재령 - 황해도 재령군 |
입향지 | 인량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세거|집성지 | 세거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오촌리 |
성씨 시조 | 이우칭(李禹偁) |
입향 시조 | 이애(李璦)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우칭을 시조로 하고 이애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재령이씨(載寧李氏)는 이우칭(李禹偁)[?~?]을 시조로 하고 이애(李璦)[1480~1561]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와 오촌리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재령이씨의 시조는 고려시대 인물인 이우칭이다. 이우칭은 경주이씨 알평(謁平)의 8세손으로 문하시중을 지내고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은 경주이씨에서 분적하여 재령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 경위]
재령이씨로 영덕 지역에 처음 입향한 이는 시조 이우칭의 11세손 이애이다. 이애는 홍문관 부제학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훈된 이맹현(李孟賢)의 6남으로 중부(仲父) 이중현(李仲賢)이 영해부사로 부임할 때 16세의 어린 나이로 책방으로 따라왔다가 진성백씨 백원정(白元貞)의 무남독녀와 혼인하여 창수면 인량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애가 인량리에 정착한 이후 손자 운악(雲嶽) 이함(李涵)[1554~1644], 증손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 현손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1619~1672],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1627~1704] 등 3대에 걸쳐 4인이 불천위로 봉해지는 영예를 얻으며, 지역 사회의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휘일·이현일 형제는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은 영남 유학의 거두가 되었다. 장흥효(張興孝)의 딸로 이시명의 부인이 된 정부인 장씨[장계향(張桂香)]는 이휘일·이현일을 낳아 대학자로 길렀으며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였다. 또한 시서화에 능하여 ‘여중군자(女中君子)’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현황]
재령이씨는 입향한 이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와 창수면 오촌리 등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후손들이 영양 등지로 이거하여 정작 영덕지역에 거주하는 후손들은 많지 않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내에 거주하는 재령이씨는 117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련 유적]
입향지인 인량리에는 재령이씨 영해파 종택인 영덕 충효당 종택[국가민속문화재], 영덕 우계종택[경상북도 민속문화재], 갈암종택[경상북도 기념물]이 있으며, 창수면 신기리에는 이애의 재실인 사암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오촌리에는 존재종택및명서암·우헌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면운재고택 및 별묘[경상북도 민속문화재]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