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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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存齋宗宅-冥棲庵于軒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서로 930-17[오촌리 318-1]|오촌 2길 4[오촌리 336-1]|오촌3길 8-13[오촌리 23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901년 - 우헌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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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774년 - 존재종택 및 명서암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4년 9월 29일 - 존재종택 및 명서암·우헌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3호 지정 |
현 소재지 | 존재종택 및 명서암·우헌정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서로 930-17[오촌리 318-1]|오촌 2길 4[오촌리 336-1]|오촌3길 8-13[오촌리 232] |
원소재지 | 존재종택 및 명서암·우헌정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서로 930-17[오촌리 318-1]|오촌 2길 4[오촌리 336-1]|오촌3길 8-13[오촌리 232] |
성격 | 전통건축물 |
정면 칸수 | 8칸[존재종택] |
측면 칸수 | 6.5칸[존재종택] |
소유자 | 재령이씨>존재파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3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과 개항기 정자.
[개설]
존재종택(存齋宗宅)은 이휘일(李徽逸)[1619~1672]의 살림집이고, 명서암(冥棲庵)은 이휘일의 강학처이다. 이휘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存齋)이다. 이시명(李時明)의 아들로, 승의랑(承議郎) 이시성(李時成)에게 입양되었으며, 어머니는 장흥효(張興孝)의 딸 안동장씨이다. 형은 이현일(李玄逸)이다. 저서로는 『존재집(存齋集)』·『구인략(求仁略)』·『홍범연의(洪範衍義)』 등이 있다. 우헌정(于軒亭)은 이휘일의 8대손인 이수악(李壽岳)[1845~1927]이 건립하였다. 한말 의병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우헌문집(于軒文集)』이 전해진다.
[위치]
존재종택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서로 930-17[오촌리 318-1]에 있고, 명서암과 우헌정은 각각 창수면 오촌 2길 4[오촌리 336-1]와 오촌3길 8-13[오촌리 232]에 있다. 영해에서 서쪽으로 약 12㎞ 지점, 창수면소재지인 신기리에서 약 8㎞ 지점에 있는 오천리 마을 동쪽의 산 밑에 자리한다. 존재종택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골짜기에 명서암과 우헌정이 있다.
[변천]
존재종택은 이휘일이 창수면 인량리에서 오촌리로 분가할 때 지은 살림집이다. 명서암은 이휘일이 독서와 강학을 하기 위해 지은 별당이었다. 그러나 후대 대홍수로 집이 무너지고 황폐하였는데, 1773년(영조 49)에 후손과 이휘일의 문생 후손들이 논의해 1774년(영조 50)에 이휘일을 추모하기 위해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다. 우헌정은 이휘일의 8대손 이수악이 건립하였다. 개항기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이수악은 1896년 갑오의병에 합류했으나 고종의 칙령으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이에 이수악은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지켜보면서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수악을 생각한 맏아들 이훈발(李塤發)이 1901년에 정자를 짓고 우헌(于軒)이라 편액해 학문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형태]
존재종택은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사당은 헐려 없어졌다. 정침은 정면 8칸, 측면 6칸 반 규모이다. 평면 형태는 '⊓' 자형 안채 전방에 중문간과 사랑채의 사랑대청이 안채 밖으로 돌출된 '⊥' 자형이 결합된 완결형에 행간확장형 뜰집이다. 평면은 3칸 크기의 안마당에 면해 2칸에만 툇칸이 있는 1.5칸 규모의 안대청을 중심으로 그 좌측으로 상방 2칸, 우측으로 고방이 각기 자리한다. 상방 앞으로는 툇마루와 이어지는 통래칸이 있고, 그 앞으로 고방, 중방과 사랑방 뒤의 책방과 연결되어 좌익사를 이룬다. 고방 앞으로는 안방, 정지로 우익사를 구성하였다.
안마당 전방 중앙에 낸 중문간은 좌측으로 사랑채, 우측으로는 마구, 정지, 고방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는데, 고방은 돌출되어 있다. 특히 정지는 중문간까지 확장하여 고방의 이용과 함께 전면에 출입문을 달아 중문간을 통하지 않고 바로 출입할 수 있는 부출입구를 갖춘 점이 특징이다. 사랑채는 안방 대각선 방향에 사랑방 2칸, 사랑대청 2칸을 일렬로 배열하고, 사랑방 뒤로 책방 1칸을 좌익사와 연결하였다. 사랑대청 2칸은 안채보다 돌출하고, 사랑방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어 안대청과 연결하였다.
구조는 경사지에 맞춰 자연석 기단을 쌓았고, 자연석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민도리 형식으로 꾸며 처마를 받쳤고, 지붕가구는 안채는 2고주 5량가, 사랑채는 3량가에 제형판대공으로 마룻대를 받았다. 사랑채는 안채나 중문간보다 높게 쌓은 기단 위에 툇마루와 사랑대청을 높은 위치에 설치해 마치 누마루처럼 꾸몄고, 맞배지붕으로 독립시켜 안채보다 높은 격식과 위계를 표현하였다. 또 사랑대청 전면에는 판벽에 쌍여닫이 굽널살문을 달아 내부화하였다.
[현황]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에 재령이씨 집안이 분가해 지은 살림집과 후대 후손이 선현 추모를 위한 정사와 정자를 차례로 지어 일곽을 이룬 영덕의 대표 고택이다. 안채 전면에 배치된 중문간과 사랑채가 돌출된 행간확장형 뜰집의 평면구성, 안채의 중부형 평면형태, 사랑채의 격식과 독립성을 강조한 위치와 구조형태, 안대청으로 확장된 상방과 상방 앞에 툇칸의 통래칸의 존재, 사랑대청의 전면에 창호를 달아 내부화한 점 등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경상북도 북부 및 영덕 지역의 상류주택의 건축적 특성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안대청에 상방의 존재, 정지가 중문간까지 확장된 점 등은 영덕군 내 창수면 미곡리에 평산신씨종가 설원당, 지품면 송천리 둔수재 등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