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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743
한자 水産業
영어의미역 Fisheries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봉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담수나 해수에서 자라는 생물을 인간생활에 유용하도록 이용, 개발하는 산업

[개설]

섬으로 이루어진 울릉도에서는 일찍이 어업이 이루어졌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역인 만큼 다양한 종의 수산물이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것이 울릉도민의 좋은 식량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울릉 어민들의 수산업 활동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개척령 이후부터이다.

[변천]

1882년(고종 19) 개척령 이후 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의 지역민들이 전라도 어선을 뜻하는 ‘나선’을 타고 이주해 왔다고 한다. 나선은 음력 3월에 입도하여 음력 7·8월에 어로 작업을 하고 출항하였다. 울릉도 근처에는 풍족한 수산물이 있기 때문에 육지에서 어로 작업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어로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울릉 주민들은 주로 농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이 무렵 울릉 주민들은 해수에 잠긴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 전복이나 소라 따위를 잡아 올리는 것이 어로의 대부분이었다. 이 당시 등장한 것이 떼배였다. 이 배는 일본인들이 입도하기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뗏목과 비슷한 형태였다. 울릉 주민들은 작은 떼배를 타고 육지에서 200~300m 되는 해안가에서 주로 미역·다시마·김·곰피·모자반 등을 채취하였다.

이때 사용한 어로 도구로는 해조류를 베는 긴 낫과 오동나무로 만든 물수경이 전부였다. 울릉도에서는 어선을 이용한 어업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떼배를 이용하여 춘궁기 때 해조류를 채취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울릉도에서 본격적으로 기술적인 어업이 이루어진 것은 1904년 일제가 일본인의 통어 구역을 전 영역으로 확대하면서부터이다. 1908년 일방적인 어업 협정과 1910년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으로 일본은 울릉도 주위의 어장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1914년 2월 24일 울릉도에 어업협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어획물의 판로가 개척되었고, 1937년부터 1942년까지 6년 동안 고등어 연승어업(延繩漁業)이 이루어졌으며, 도동·저동·태하에 통조림 공장이 만들어지면서 울릉도에서 수산물 생산 판매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수산업 활동은 대부분이 일본인들에 의해 영위되었다.

울릉 주민들은 일본인들의 어업 기술을 차용해 나가면서 일본인으로부터 어선을 제작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이때 일본인들 밑에서 제작된 배는 대개 강고배[전마선]로서 돛을 단 배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렇게 일본식 어구나 어선, 어법을 차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울릉도식 어법이 일본식으로 변해가게 되었다.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울릉군에서 주된 산업은 여전히 농업이었고, 농번기가 아닌 때에 꽁치와 오징어잡이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농경지를 휩쓸어 극심한 흉년이 들자, 생업을 어업으로 전환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1963년부터는 포항에서 울릉군을 왕래하는 배가 생겨나면서 육지와 울릉군을 오가며 이곳의 수산물을 판매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결국 농업과 어업의 분업은 더욱 촉진되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울릉군의 어선은 대부분이 목선이었다. 크기도 소형이었기 때문에 5명 이하가 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사람의 힘으로 움직였다. 또한 목선은 주로 떼배로, 미역 채취에 많이 이용되었다. 그리고 삼나무를 이용한 목선도 많이 제작되었다.

196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동력 목선이 등장하면서 규모도 커지고 그만큼 울릉군의 어업도 발전하게 되었다. 어구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어류를 유인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집어등·주낙바구니·수경·미역낫 등이 점점 현대식으로 교체되어갔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른 한일 어업 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5년부터 1970년대까지 울릉군의 수산 인구는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울릉군 어선의 기계화 양상을 보면 소형 동력선이 점차 디젤선이나 FRP선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모두 동력 어선으로 바뀌지는 않아서 떼배가 사용되었고, 해조류 채취 도구도 전통적인 낫이 사용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정부 주도로 어선의 대형화를 비롯한 어업 기술의 선진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국제 유가 변동과 어가 부채의 증가로 인해 어업 환경이 불리해지고, 대도시 공업 단지로의 인구 유출, 수산물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인해 점차 울릉군의 수산 가구는 감소하게 되었다.

[현황]

2009년 12월 현재 어가 인구는 697가구에 1,717명이며, 어선은 총 251척에 2,268.11톤인데 여기에는 무동력선 5척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울릉군에서는 오징어를 주로 어획하며, 전복과 소라와 같은 패류와 각종 어류·해삼과 해조류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 외에도 원양 어업을 비롯해 각종 양식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산물 어획고는 총 5,212톤으로, 그 가운데 오징어 등 연체동물류가 5,027톤으로 전체 어획고의 96.4%를 차지하여 울릉도 어획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는 해조류가 51톤[0.97%], 갑각류가 30톤[0.57%], 어류가 1톤[0.02%], 기타 103톤[1.98%]이다.

수산업의 기반 시설로 어항과 등대가 있는데, 어항 시설은 연안항 1개[울릉항], 국가 어항 3개[저동항·현포항·남양항], 지방 어항 3개[천부항·통구미항·태하항], 소규모 어항 8개[내수전항·구암항·학포항·웅호항·죽암항·추산항·섬목항·선창항]가 있으며, 등대 시설에는 유인 등대 2개소[도동등대·울릉도등대], 무인 등대 3개소[석포등대·독도등대·가두봉등대], 사설 등대 20개소가 있다.

어민들의 자치 조직인 어촌계는 도동어촌계 83명, 저동어촌계 237명, 신흥어촌계 52명, 통구미어촌계 30명, 남양어촌계 67명, 태하어촌계 49명, 학포어촌계 16명, 현포어촌계 55명, 천부어촌계 57명, 죽암어촌계 18명, 사동어촌계 25명 등이 활동하고 있다.

수산업에 관련된 단체로는 울릉군 수산업협동조합과 수협울릉통신국, 울릉해양수산사무소가 있다. 울릉군 수산업협동조합은 7과에 2지소와 1출장소, 11계의 어촌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울릉해양수산사무소는 수산 행정과 지원, 해양 수산 민원 업무를 맡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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