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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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집필자 | 이형성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서 인(仁)을 근본으로 하는 유학을 받드는 교.
[개설]
유교는 공자(孔子) 및 맹자, 증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변천]
1. 삼국 시대
삼국 시대 순창의 유교는 자료가 없어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백제가 유교를 바탕으로 정치와 문화를 구축하고 의례를 거행하였다는 측면에서 순창 지방의 유교 문화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초고왕 때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이 일본으로 파견되어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를 전수한 바 있고, 고흥(高興)의 『서기(書記)』 편찬 등으로 유학에 대한 교육이 확대되었다. 의자왕의 효(孝), 계백(階伯)이나 성충(成忠)의 충(忠), 도미(都彌)의 절(節) 등은 유교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이를 보면 당시 백제의 서부 지방이었던 순창 지방의 유교 문화의 이해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2. 고려 시대
고려는 불교 국가라고 할 정도로 불교가 성행했지만 치국(治國)의 근본은 유교에서 찾았다. 그리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과거를 주도하며 유교적 정치를 추구하였다. 더욱이 설총(薛聰)의 후예들이 순창으로 이거하여 활동하였으니 유교가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고려 시대 순창의 유교적 학문 경향은 과거 급제자나 생원시에 합격한 인물 그리고 명현(名賢)·유일(遺逸)·상신(相臣)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에 급제한 인물로는 조홍규(趙洪珪)·조전(趙佺)·양이시(楊以時)·조원길(趙元吉)[1305~1390] 등이 있고, 명현으로는 설공검(薛公儉)[1224~1302]·설인검(薛仁儉)이 있고, 상신으로는 인빈(印份)·인완(印完)·인공수(印公秀)·설회(薛懷) 등이 있다. 이를 보면, 지방민에 대한 유교적 교육이 적지 않게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말선초에 절의 있는 선비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품고 두문동(杜門洞)으로 은거하였다가, 향촌으로 귀향하였다. 임선미(林先味)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순창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다. 조유(趙瑜)[1346~1428], 권효(權曉), 양수생(楊首生) 등도 절의를 지키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니, 이들의 절의 정신이 순창의 유교를 진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순창 출신으로 유교적 정치 이념을 실현하려는 인물도 있었을 것이다.
3. 조선 시대
1413년 최자비(崔自非)가 옥천동에 순창 향교를 창건한 이후 유교의 의례와 교육을 담당하여 유교가 진작되기에 이르렀다. 조선 시대 향교에서 유교 교육이 진작되면서 많은 학인들이 나오고 또한 사마재(司馬齋)에서도 교육이 실시되면서 유교가 번창하였다. 한편 세조의 왕위 찬탈이나 이후의 사화 등을 겪으며 절의를 지키려는 유일이 있었으니 양배(楊培)·양공매(楊公佅)·신람(申灠)·양시면(楊時冕) 등이 그들이다.
학덕이 있는 군수가 순창으로 오면서 유교가 발전한 면도 있었으니, 이들은 신중주(申仲舟), 윤효손(尹孝孫)[1431~1503], 김정(金淨)[1486~1521], 양응정(梁應鼎)[1519~1581], 임계영(任啓英)[1528~1597], 임백영(任百英), 최경회(崔慶會)[1532~1593], 고경명(高敬命)[1533~1592], 김천일(金千鎰)[1537~1593], 박이장(朴而章)[1547~1622], 윤효전(尹孝全)[1563~1619], 이안눌(李安訥)[1571~1637], 조극선(趙克善)[1595~1658], 송시걸(宋時杰), 서유구(徐有榘)[1764~1845], 서경보(徐耕輔)[1771~1839], 조면호(趙冕鎬)[1803~1887] 등이다.
다음으로 문신 또는 학자로 활약하며 후학을 양성한 인물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양자담(楊子膽)[1428~1498], 신말주(申末舟)[1429~1503], 양자유(楊子由)[1444~1495], 신공제(申公濟)[1469~1536], 김인후(金麟厚)[1510~1560], 양사형(楊士衡)[1547~1599], 양시진(楊時晉)[1573~1615], 김시서(金時瑞)[1652~1707], 양응수(楊應秀)[1700~1767], 신경준(申景濬)[1712~1781], 기정진(奇正鎭)[1798~1879] 등이다.
[현황]
순창군에서는 조선 시대 이후 서원과 사우를 중심으로 유교 교육이 베풀어졌다. 주요 서원으로는 화산 서원(花山書院)[1607, 유등면], 무이 서원(武夷書院)[1788, 팔덕면], 지계 서원(芝溪書院)[1788, 적성면], 남산 서원(南山書院)[1800, 순창읍], 어암 서원(魚巖書院)[1827, 쌍치면], 무양 서원(武陽書院)[1901, 팔덕면], 오산 서원(鰲山書院)[1941, 동계면]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19세기 이전에 창건된 서원은 1863년에 훼철되어 복설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 창건된 서원은 관리 부족으로 많이 훼손되었다. 주요 사우로는 예천사(禮川祠)[1584, 팔덕면], 호계사(虎溪祠)[1776, 금과면],오암사(鰲菴祠)[1863, 동계면],화남사(華南祠)[1949], 경현사(景賢祠)[1909, 동계면], 지산사(芝山祠)[1925, 인계면], 호계사(虎溪祠)[1940, 인계사], 옥산사(玉山祠)[1957, 풍산면], 남산사(南山祠)[1998]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예천사만 남아 있지 않고 나머지 사우는 현재 선현을 배향하며 유교를 향촌 사회에 보급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향교에는 유도회·청년 유도회·여성 유도회가 있는데 향촌 사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향약(鄕約) 정신에 힘입어 서로 구휼하며 유교의 인의(仁義)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순창 향교는 유교 문화 보급을 위해 전라북도 유도회와 함께 강좌를 개설하여 일반인들을 교육하고 청소년들에게 인성 교육을 실시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일요 학교를 개설하여 초중고 인성 교육을 실시하다가, 2011년부터는 초중고 학교를 방문하여 인성 교육 및 예절 교육을 실시하며 유교 문화를 진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