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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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培 |
이칭/별칭 | 구암(龜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추모 시기/일시 | 1808년 - 양배 지계 서원에 배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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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01년 - 양배의 유업을 기리는 구암정 설립 |
출생지 | 양배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사당|배향지 | 구암정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남원 |
대표 경력 | 사헌부 장령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구암(龜岩). 동생은 양돈(楊墩)이다. 아들은 양공준(楊公俊)인데,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과 춘추관 기주관을 지냈다. 양공준의 아들 양홍(楊洪)과 손자 양사형(楊士衡), 증손자 양시보(楊時普) 및 양시보의 사촌인 양시우(楊時遇)와 양시정(楊時鼎)까지 4대가 연속해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양배(楊倍)는 순창군 구미(龜尾)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서 지식이 고원(高遠)하였다. 연산군 때의 무오[1498년]·갑자[1504년] 양대 사화(士禍)로 어진 사람이 화를 당한 것을 보고 강호에 숨어서 그의 아우 진사 양돈과 함께 고기를 낚으면서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가 당시에 교유하였던 사람은 모두가 당세의 명절(名節)의 선비들이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명성을 듣고 사헌부 장령을 제수하여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한편 지금까지도 적성강(赤城江)의 상류인 만수탄(萬壽灘)에 그의 형제가 고기를 낚았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세상에서는 배암(培岩), 돈암(墩岩)이라 부르고 합쳐서는 형제암(兄弟岩)이라 부르고 있다.
[상훈과 추모]
양배의 학문과 덕망을 추모하기 위하여 1808년(순조 8) 그의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지계 서원을 세워 종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헐린 뒤 그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 양배의 호를 따서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구암정을 세웠다. 구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는데 남원 양씨 대종회에서 보호·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