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군지
-
일제 강점기에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에서 생산되었던 우수한 품질의 누룩. 건곡 누룩은 일제 강점기에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에 누룩 공장이 있어서 지역명을 인용하여 건곡 누룩으로 명명되었으며, 좋은 물과 지리적·환경적 요건으로 우수한 품질의 누룩을 전국에 공급하였다. 누룩은 건곡, 신곡, 약누룩, 진곡이라고도 하며, 학명은 Aspergillus oryzae cohn....
-
1760년 편찬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경신판(庚辰版) 열부 이씨전(烈婦李氏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직제학(直提學) 양수생(楊首生)의 부인으로 이씨가 임신 중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의 부모는 젊어서 과부(寡婦)가 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이씨의 뜻과 상관없이 재가(再嫁)를 시키려 하였으나, 이씨는 죽음으로 항거하고 아들을 낳으매 겨우 몇 년을 지나 또 강제로 시집보내...
-
2010년까지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운남리에서 열렸던 전통 시장. 시장이란 교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장시(場市)·장(場)·장문(場門)이라고도 불렸다. 생산자가 잉여 물자를 갖고 나와 서로 필요한 물품으로 교환해 가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통의 요지에 발달하였다. 구림장(龜林場)은 순창장, 동계장, 복흥장, 쌍치장...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있던 조선 시대 절. 구미사(龜尾寺)의 창건주, 창건 연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주로 곡성 인근의 신도가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에 의하면 구미사는 순창군 옥출산에 있었다고 나온다. 현재 순창군 동계면에 구미리라는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과 관계된 사찰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발 고도 224m의 옥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 아동방에서 매 5일과 10일에 개설되던 전통 시장.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순창 군지(淳昌郡誌)』에 의하면 “녹사시(綠沙市)는 아동방(阿東坊)에서 매 5일과 10일에 개설된다[綠沙市 在阿東坊 每旬五日 十日]”고 하였다. 녹사리 장터는 현재의 순창군 동계면 동심리(同心里)의 추동(秋洞) 마을 동북쪽에 있는 녹사리 장터 마을에 해당한다. 현재는 이...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던 조선 후기 주희·설공검·설인검·조원길을 모신 서원. 순창군청에서 강천사로 가다가 팔덕면사무소를 지나 500m 정도 가서 사거리 길목에서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청계 마을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 정도 간다. 청계 마을 회관 앞에서 오른쪽 농로로 올라가면 무이산(武夷山) 아래 능선 자락에 있는 농토가 무이 서원(武夷書院) 터라...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불암사 터에 대해 1765년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불암사는 군의 동쪽 30리에 있는 취암산에 있다[佛岩寺在郡東三十里鷲岩山].”라고 하였고, 1760년 『옥천 군지(玉川郡誌)』에는 불암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 “이 절의 창립은 취암사가 창립되기 이전이다[此寺之創在於鷲岩創立之前].”라 하였다....
-
전라북도 순창군 서쪽에 위치하여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 사직단(社稷壇)은 농경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토지와 곡식의 두 신을 모시기 위해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농사가 풍년이면 백성들도 배부르고 나라도 태평하므로 각 고을에는 수령들의 책임 아래 사직단을 모셨다. 한양의 사직단은 군왕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 예부터 각 지역에는 관청의...
-
조선 후기 순창군 복흥방에서 매 3일과 8일에 개설되던 전통 시장. 삼치장(三峙場)이 『임원 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삼지장(三支場)으로 되어 있다.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순창 군지(淳昌郡誌)』에 의하면 “삼치시(三峙市)는 복흥방(福興坊)의 삼치리(三峙里) 앞에서 매 3일과 8일에 개설된다[三峙市 在福興坊 三峙里前 每旬三日 八日]”고 하였다. 그러나 삼치리는...
-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씨(姓氏)는 이미 단군 조선(檀君朝鮮)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맥(濊貊)의 군장(君長) 여수기(余守己)의 아들이 나라에 공을 세워 서성(徐姓)을 하사 받은 것에 기인한다. 이후 차차 성씨(姓氏)가 생겨 신라는 건국 초 개국에 공이...
-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 있던 기생 교육 기관. 교방(敎坊)은 고려 시대부터 존재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의 좌방(左坊)과 우방(右坊)을 아울러 이르던 말로 사용되었다. 좌방은 아악(雅樂)을, 우방은 속악(俗樂)을 맡아보았다. 이러한 교방은 서울 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도 존재하였다. 교방에서는 가무(歌舞)를 담당하였으므로 이들에게 악기와 가무에 대한 교습도 동...
-
1957년에 순창군에서 순한문으로 간행한, 전라북도 순창군에 관한 인문 지리서. 1957년에 편찬된 『순창 군지』는 1882년(고종 19)의 같은 책명 『순창 군지』를 새롭게 고증하여 증보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러므로 순한문·세로쓰기·구철(舊綴) 등의 편찬 형태를 구지(舊誌) 그대로 하고, 다만 새로운 고증을 신증(新增)이라 하여 세 권으로 증보하였다. 1882년의 구지 편찬에서...
-
1968년에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한글로 펴낸, 순창군의 역사·문화 관련 인문 지리서. 『순창 군지』[1968]에는 서문, 총 목차, 편집 후기 혹은 편집 위원 명단 등이 생략되었고, 다만 판권 사항만 기록하여 1968년에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발간하고 고려 상사에서 인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물론 향토 문화 연구회의 주소 등도 생략되어 있어서 편찬 과정...
-
1982년에 순창군에서 간행한,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와 문화 등 모든 방면의 자료를 집대성하여 엮은 인문 지리지. 1882년(고종 19)에 『순창 군지』가 편찬된 이후, 100주년이 되는 해가 1982년이므로 이를 기념하여 순창군에서는 『순창 군지』 한글본을 편찬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순창 문화 연구원에서 하던 작업을 바탕으로 1979년에 순창 군지 편찬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의 대모산에 축성되어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영되었던 산성.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2001년과 2002년, 2005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홀어머니산성[대모산성]에 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발굴 조사는 2001년 11월 28일부터 2002년 1월 16일까지 북문 터 및 주변에서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발굴...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운림리에 있는 고려 후기 관인의 토광목곽묘. 운림리 농소 고분은 1982년 순창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간한 『순창 군지(淳昌郡誌)』에 ‘운림리 고분(雲林里 古墳)’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왕씨 묘’ 또는 ‘왕 무덤’으로 불러왔으며, 옛날 주위 80여 리 안팎의 땅을 소유했던 왕씨 성을 가진 부호(富豪)의 묘지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심초리(深草里)는 매봉산[511m]을 기점으로 좌우에 높은 산이 둘러싼 깊숙한 골 안에 분지를 틀고 형성된 심심산골 오지 마을이다. 그래서 예부터 깊고 깊은 골짜기에 나무만 울창하다 하여 ‘지푸실[짚푸실]’이라 불렀으며, 한자로는 심초(深草)라 하였다. ‘지푸실’은 전라도 방언으로 깊은 마을을 의미한다. 전해오는 이야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 이암방에서 매 4일과 9일에 개설되던 전통 시장.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순창 군지(淳昌郡誌)』에 의하면 “연산시(燕山市)는 이암방(里巖坊)의 연산리(燕山里) 앞에서 매 4일과 8일에 개설된다[燕山市 在耳巖坊 燕山里前 每旬四日 八日]”고 하였다. 이때 8일은 9일의 잘못으로 보인다. 그러나 『호구 총수』나 1914년에 일제가 행정 구역을 개편하...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사 김일손, 김치세, 김선경을 모시기 위해 1957년 세운 사우. 옥산사(玉山祠)는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1048번지[대가 1길 25-32]에 있다. 순창군청에서 대강·유등 방면 지방도 730호선을 가다가 오산 사거리에서 풍산·대강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간다. 1㎞ 정도에서 옥과·풍산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1㎞ 정...
-
1760년에 편찬한 전라북도 순창군에 관한 최초의 군지이자 순창군의 인문 지리서. 『옥천 군지』는 1758년(영조 34)에 어명으로 각 지역의 지리·역사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의 소략함을 확장 보충하여, 1760년(영조 36)에 찬술을 마치고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순창군의 인문 지리서이다. 편찬자는 수정 유사(修整有司) 한치명(韓致明) 외 5인, 개간 유사(開刊有司) 권도제...
-
조장을 시조로 하고 조영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옥천 조씨(玉川趙氏)는 조장(趙璋)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옥천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옥천 조씨 입향조는 조원길(趙元吉)의 큰아들 조영(趙瑛)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만 5346가구, 4만 9847명이 거주하고 있다....
-
1983년에 순창군에서 간행한,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마을 유래, 인물, 민속 등을 정리한 단행본. 『옥천의 얼』은 1981년에 발간된 『순창 군지』를 축소한 책이다. 『옥천의 얼』을 따로 발간한 이유는 『순창 군지』가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지만 한자가 섞여 대중적이지 못하고, 또 부수가 한정되어 군민들에게 보급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삼한...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및 현대 효자·효열부 등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이천 서씨(利川徐氏) 족보에 따르면 서병홍(徐炳泓)의 자는 경수(景洙·景燧)이고, 호는 지선당(止善堂)이다. 공조 판서 서숭로(徐崇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서준규(徐俊奎)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어버이가 병이 나면 하늘에 대신 죽기를 빌었고, 어머니 상을 당하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서 매 1일과 6일에 개설되던 전통 시장.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순창 군지(淳昌郡誌)』에 의하면 “읍시(邑市)는 매 1일과 6일에 개설된다[邑市 每旬一日 六日]”고 하였다. 1872년(고종 9)에 편찬된 『순창군 지도』에는 좌부면 하전리(下前里)와 남원으로 이어지는 다리 중간에 장시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좌부면 하전리에 읍시가 있었다...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조하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시혜비. 조하영의 본관은 옥천(玉川)[순창의 고호], 자는 관선(寬善), 호는 경은(耕隱)이다. 모충재(慕忠齋)조여관(趙汝寬)[1557~1592]의 후손이고, 가선(嘉善) 조상평(趙相枰)의 아들이다. 음사(蔭仕)로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을 관리하는 강릉 참봉(康陵參奉...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서 삼인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죽음도 불사한 의로운 세 선비」는 조선 14대 왕인 중종의 비(妃) 단경 왕후(端敬王后) 신씨[1487~1557]의 복위 상소를 올린 순창 군수 김정(金淨)[1486~1521], 담양 부사 박상(朴祥)[1474~1530], 무안 현감 유옥(柳沃)[1487~1519] 세 사람의 의기에...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지북리에 있던 조선 후기 학자 양배, 이유겸, 양사형, 양응수를 모셨던 서원. 구암(龜巖) 양배(楊培)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순창으로 은거하여 아우 양돈(楊墩)과 함께 고기를 낚으면서 세상을 잊고 살았다. 만회(晩悔) 이유겸(李有謙)[1586~1663]은 1639년(인조 17) 순창 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쌍매(雙梅...
-
전라북도 순창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란 글자 그대로 바람, 물 그리고 땅의 이치란 말로 바람, 물, 땅의 기(氣)가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느냐를 논하는 자연 과학으로 본다. '지풍수'라 할 수 있지만 바람을 앞에 써서 '풍수지리'라고 선현들이 바람을 먼저 표기한 것은 바람이 생명의 원동력으로 사람에게...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 피노리에서 매 2일과 7일에 개설되던 전통 시장. 1760년(영조 36)에 발간된 『순창 군지(淳昌郡誌)』에 의하면 “피노리장은 군의 동북쪽 30리 피노리(避老里) 앞에서 매 2일과 7일에 개설된다[避老里市 在郡東北三十里 避老里前 每旬二日 七日]”고 하였다. 피노리는 하치등면(下置等面)에 속하였던 곳이며, 이곳은 지금의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에 해당한다....
-
전라북도 순창 지역과 관련된 한문으로 된 한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한문학은 중세를 대표하는 문학 양식으로, 중국의 한자를 표기 문자로 사용하되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한문학은 중국 문학과 구별되며 한국 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순창군의 한문학은 순창군 출신 문인이 지은 시(詩)와 산문(散文), 또는 순창군을 배경으로 하...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무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주 강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강영준의 딸로 대제학 문량공(文良公)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이다. 세상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정숙함을 지녔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한결같이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살핌과 동시에 곁에서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셨다. 어버이가 병이 생기자 마...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화산 서원(花山書院)은 1607년(선조 40)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周)[1429~1503], 충암(冲庵) 김정(金淨)[1486~1521],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1537~1593], 눌재(訥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