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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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磻陽里彌勒佛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관터로 1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여성민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개설]
반양리 미륵불(磻陽里彌勒佛)은 원래 들에 세워진 마을 미륵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초가집에서 슬레이트집으로, 그리고 2011년 현재는 화려한 사찰 속으로 들어간 미륵이다. 현재는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의 용화전 안에 안치되어 있다.
당초에는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반계마을 황성순의 집 마당가 맨땅에 서 있었으나 비바람에 시달리는 것이 안타까워 조그만 초가집을 지어 모셨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조금씩 지붕을 보수하였다. 1973년경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 개량이 시작되면서 도로변에 초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시멘트를 지원받아 블록 벽돌을 만들어 불사를 짓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개량하였다.
미륵불이 있던 집의 딸이 출가 후 불교에 입문하였는데,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일대가 절터일 것으로 믿고 문화재 전문 위원인 신영훈을 초청하여 살펴본 바 백제 시대의 절터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1997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 등록을 마치고, 사찰의 복원 작업을 위하여 사가를 헐어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후 착공 3년 만인 2000년 사찰을 완공하여 미륵사라 이름 지었다. 새로 지어 화려한 미륵사 안에는 금빛 찬란한 새 미륵 삼존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반양리 미륵불은 동쪽에 별도로 세워 놓았다.
[형태]
높이 250㎝, 폭 56㎝, 두께 30㎝ 크기이며, 화강암 석재 1매로 조성하였다. 상호(相好)는 온화한 느낌을 주며 이마의 정수리에 새겨 놓은 백호광(白毫光) 자리는 백호(白毫)를 도려내어 구멍만 남아 있다. 코와 입의 모습은 비교적 뚜렷한데, 왼쪽 귀와 오른쪽 귀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걸로 보아 귀가 잘려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화엽문(花葉文)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가슴 부위가 넓고 당당한 느낌을 주며, 또한 흉식(胸飾)을 장식하여 놓았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내놓고 왼쪽 어깨에 옷 주름을 표현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을 음각하였다. 배 부분에서 ‘U’자형으로 굵게 조식(彫飾)된 의습은 다리에서 갈라져 부드럽게 음각되고 있다. 두 손은 약간 위로 들어 가슴과 배 사이에 올리고 있다. 1매의 석재로 제작된 미륵의 하체는 상체에 비하여 좁고 빈약한 느낌을 준다.
[특징]
반양리 미륵불은 머리의 보관 및 조식(彫飾) 형태로 보아 조선 시대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과거 반양리 미륵불이 서 있던 주변에서 주춧돌과 고려 시대의 기와편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곳에 고려 시대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반양리 미륵불도 동시대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불상의 조식 양식은 조선 시대의 것으로 판단되는 바, 반양리 미륵불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로 이어지는 불상의 형태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