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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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夢熊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명진 |
개정 시기/일시 | 1765년 - 몽웅역이 금정도에 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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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몽웅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
[정의]
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에 있었던 역(驛).
[개설]
몽웅역은 고려 태조 때 설치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현(縣)의 서쪽 9리에 있었다 하고, 딸린 지도의 서쪽에 역촌(驛村)이라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역말이라는 마을에 해당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몽웅역은 남동쪽으로는 운주[홍성]로 통하고 북쪽으로는 면천[당진군 면천면]으로 통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해 있다. 북서쪽으로는 서산으로 연결된다. 운주에서 남서쪽으로는 보령으로 연결되고, 운주의 남동쪽으로는 청양·부여로 연결이 가능하다. 또한 몽웅역은 면천을 거쳐 아산만으로 나아가 해상으로의 연결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역참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홍주(洪州) 정해현(貞海縣)조, 같은 책 권82 지36 참역(站驛)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0 충청도 해미현(海美縣) 건치 연혁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해미현 역원조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내용]
고려 태조 때 설치되었던 몽웅역에 관한 당대의 기록은 역 자체보다는 역리인 한씨(韓氏)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그 실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만 한씨를 통해서 몽웅역에 대한 대강의 내용은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 권56 지10 홍주 정해현조에 “고려 태조 때 한씨 성을 가진 몽웅역의 역리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태조 왕건(王建)이 그에게 대광(大匡) 벼슬을 주고 고구현(高丘縣)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을 설치하고 그의 관향으로 삼게 하였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역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군사의 이동 및 주둔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정황을 통하여 당시 몽웅역은 아산만에서 운주로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몽웅역의 구체적인 규모에 대해서는 1765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역리 57명과 노(奴) 39명, 비(婢) 2명이 배치되었고, 대마(大馬) 2마리, 중마(中馬) 4마리, 하마(下馬) 5마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고려 시대에 설치되었던 몽웅역은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몽웅역은 고려 시대 22역도(驛道) 중에서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한 참역(站驛)의 하나였다. 이후 조선 후기 『여지도서』가 편찬되던 18세기에는 금정도(金井道)에 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 전쟁을 수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세력을 포섭할 당시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왕건은 초기에 아산만 확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산만과 운주로 연결되는 길목에 있었던 것이 몽웅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 세력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거나, 벼슬이나 재물을 주기도 하고, 성씨와 관향을 내려주기도 하였다. 몽웅역의 한씨는 왕건으로부터 당시 지역 세력에게 내린 최고의 벼슬인 대광을 받았으며, 정해현을 관향으로 사용하도록 왕은을 받았다. 한씨의 예는 고려 통일 전쟁 시기에 서산 지역 세력의 동향과 교통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