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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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丘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명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018년 - 고구현이 운주의 속현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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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고구현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
관할 지역 | 고구현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
관할 지역 | 고구현 -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
[정의]
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고구현은 현재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해당된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이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고구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관련 기록]
고구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백제의 우견현(牛見縣)이 그것이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홍주(洪州) 고구현조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홍주목(洪州牧) 고적조, 같은 책 권20 충청도 해미현(海美縣) 건치연혁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내용]
고려 시대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4개 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부성현, 여미현, 정해현, 지곡현이 그것이다. 이와 별도로 고구현(高丘縣)이 있었는데 이 지역은 원래 서산시 해미면과 고북면, 그리고 홍성군 갈산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구현의 해미 지역만은 서산 지역 4개 현 가운데 하나인 정해현으로 독립하였다. 따라서 고구현은 현재의 서산시 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고구현이 작아진 것은 몽웅역의 역리인 한씨(韓氏) 때문이다.
『고려사』 권56 지10 홍주 정해현(貞海縣)조에 “고려 태조 때에 한씨 성을 가진 몽웅역의 역리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태조 왕건(王建)이 그에게 대광(大匡) 벼슬을 주고 고구현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을 설치하고 그의 관향으로 삼게 하였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한씨에 대한 처우는 운주전투에서 태조 왕건이 승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해현이 설치되면서 고구현의 영역이 이전보다 작아진 것이다.
[변천]
고구현은 원래 백제의 우견현인데,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목우현(目牛縣)으로 고치고, 이산군(伊山郡)의 관할로 두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고려 태조 때 목우현을 고구현으로 고쳤다. 또한 고구현의 일부인 해미 지역이 정해현으로 독립하였다. 이후 고구현은 1018년(현종 9)에 운주[지금의 홍주]에 소속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홍주목 고적조에 고구폐현(高丘廢縣)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홍주로 흡수된 듯하다.
[의의와 평가]
고구현의 변천을 통해서 서산시 해미 지역이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몽웅역의 한씨가 고려 태조의 통일 전쟁 당시 큰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하였다. 고구현의 축소와 해미 지역의 성장을 통해서 고려 초기 서산 일대 지역 세력의 판세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