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민속원에서 출간한 『구전설화』13-충남편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어떤 마을에 효심 깊은 아들이 살았다. 아버지 제삿날이 되었는데 돈도 쌀도 없었다. 마침 개가 똥을 쌌는데 희끗희끗한 게 눈에 띄어 들여다보니 쌀이었다. 아들은 개똥에 섞여 있는 쌀을 깨끗이 씻어 밥을 지어 제사상에 올렸다. 그러고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개태사 삼존석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에 개태사 스님들이 부처님께 호국 염불을 올리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왜적이 개태사로 몰려와 절간 문을 열어젖히고 행패를 부렸다. 대웅전에 다다른 왜병이 대웅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대웅전 안에서 광채가 뿜어 나왔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개태사 솥뚜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크게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것이 부처님의 가호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천호산 기슭에 개태사를 건립하여 국찰로 삼았다. 그 후로 전국 각지에서 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개태사 약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연산에 실려 있다. 제보자와 채록에 관한 정보는 밝혀져 있지 않다. 옛날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성질이 아주 난폭한 중이 있었다. 어찌나 성질이 고약한지 절 앞을 지나가는 신혼부부가 있으면 습격하여 신랑을 죽인 뒤 신부는 겁탈한 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장전리에서 거북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거북뫼」는 욕심 많은 부자가 악행을 저질러 그 인과로 조상의 명당을 스스로 파손하고 집안이 몰락한다는 전형적인 명당 파손 이야기이다. 이러한 명당 파손담은 전통적인 풍수 관념에 뿌리를 둔 전승의 하나이다. 1991년 논산시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연산에 실려 있다. 옛날 장전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 황산벌 전투에서 숨진 계백의 활동을 소재로 만든 노래. 「계백 장군」은 삼국시대 백제의 장군인 계백을 소재로 한 두 곡의 노래이다. 한 곡은 1992년 가수 남상규가 발매한 「남상규의 베스트 컬렉션」15곡 중 맨 마지막에 있는 곡으로 장르는 트로트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음원제작자협회가 발매한 총 10곡 중 다섯 번째 곡으로 장르는 어린이역사노래회가 부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남편을 잃은 열녀의 복수 이야기. 2001년 11월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에 사는 이진우(남, 채록 당시 83세)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 간행한 『구전설화』에 수록하였다. 연산면 관동리 골짜기에 두 쌍의 부부가 집을 짓고 살며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하루는 윗집 남자가 아랫집 남자에게 부여장에 가자고 하였다. 두 사람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와 청동리에서 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박종익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한 『구전설화』14에 실려 있다. 이는 2001년 11월 3일에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이진우(남, 83)로부터 채록한 자료이다. 연산면에 고양리와 청동리가 이웃해 있다. 고양리란 이름은 마을 산의 모양이 엎드려 있는 고양이를 닮은 데서 비롯되었다. 반면 냇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사포리에서 귀신둠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귀신둠벙」 전설은 주인 집 딸과 노비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이들이 신분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연못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원혼담이다.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옛날에 연산면 사포리에 권력 있고 부자인 사람이 무남독녀 외딸을 두고 살았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노부를 구하고 죽은 부부」는 아버지는 모시고 피난을 가던 이겸 부부가 왜군을 만나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들은 희생된다는 부부희생형의 효행담이다. 2005년 박종익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된 『구전설화』13에 실려 있다. 이는 2003년 5월 18일 백석리에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연기(남, 76)로부...
-
조선 중기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에 은거할 때 고고한 은자의 삶을 지향하며 지은 평시조.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예학(禮學)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의례문해(疑禮問解)』, 『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다.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만년에 제수 받은 벼슬을 사양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말고개와 여우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머슴 박서방이 살았다. 하루는 박서방이 몸이 아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사랑방에 누워 있었다. 그러자 주인 김생원이 “비가 올 것 같으니 어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계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이지형(남, 59)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에 민속원에서 출간한 『구전설화』14에 수록하였다.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와 관동리 뒷산을 성재라고 하는데, 성재가 황산성의 본성이다. 성을 중심으로 산 쪽을 성안이라 하고 그 반대쪽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서 범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에 논산시에서 출간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어느 마을 야산에 한 쌍의 호랑이가 살았다. 호랑이는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매년 호랑이의 제물로 예쁜 처녀를 바쳤다. 이 마을에는 농부의 딸이 살고 있었는데, 농부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사계 김장생·우암 송시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이지형(남, 59)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한 『구전설화』14에 수록하였다. 김장생이 1613년 계축옥사 이후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여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서 후학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당시 김장생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사계 김장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이지형(남, 59)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한 『구전설화』14에 수록하였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가 사계 김장생이 머물던 곳이었다. 이곳의 지대는 다른 곳보다 낮아 장마라도 들면 어김없이 물이 찼다. 지대가 낮고 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신개다리와 허씨부인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송도 땅에 대사헌 허응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허응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예의범절이 분명하고 인물이 뛰어났다. 그녀는 17세가 되던 해에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사는 충청도관찰사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다...
-
조선 중기 장유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의 양성당을 소재로 지은 제영. 양성당(養性堂)은 임진왜란 후 김장생(金長生)이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하였을 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양성당 십영(養性堂 十詠)」이라는 동명의 시가 여러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당대의 명문장가인 장유(張維)가 사계 김장생에게 바친 시를 대상으로...
-
1602년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건립된 양성당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는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인 김계휘(金繼輝)가 건립한 경회당(慶會堂)이 있어 당시 문풍(文風)이 크게 진작되었다. 김장생은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한 뒤에, 경회당 인근에 양성당(養性堂)을 세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1634년(인조 12...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표정리에 있는 매봉의 역적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에 매봉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산의 모양이 매를 닮은 데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데, 산의 상봉을 중심으로 좌우의 산줄기가 마치 매가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다. 이 매봉의 한쪽 날개 부분을 역적날이라고 한다.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왕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멸망시키고 대망의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태조 왕건은 부처의 가호로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도선 국사의 도움을 받아 천호산 기슭에 개태사를 창건하여 삼국 통일을 기념하고, 국태민안(國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장전리에서 용머리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머리산」은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용궁에 살고 있던 용 두 마리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기만 하였다. 이러한 마음을 안 용왕은 두 마리의 용에게, “인간 세상에 내려가 선행을 베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에서 장자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자터 설화」는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신암리에 권세 높은 장자가 살았다. 그는 30여 명의 노비들을 거느리고 살았으나 어찌나 인색한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노비가 아파서 누워 있어도, “일도 하지 않는 저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장전리에서 밭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연산에 실려 있다. 장전리는 옛날부터 논보다 밭이 많아 밭고랑이라고도 불렀다. 계룡산 줄기에 있는 장전리는 곡식을 심어 가꿀만한 장소만 있으면 땅을 일구어 밭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은 논보다 밭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이 마을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천호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황산(연산)에 이르러 후백제 군사와 전투를 벌였다. 양쪽 군사들은 대낮이면 격전을 벌이고 밤엔 피로에 지쳐 전투를 멈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건이 꿈을 꾸었다. 자신이 큰 밥솥을 머리에 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퉁소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연산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사는 부부가 앞 못 보는 아기를 낳았다. 부부는 봉사 아들을 키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성격이 유순하고 온화한 봉사를 동정하였다. 봉사는 성인이 되어 가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서 한재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한재동은 연산면 백석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글 배우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9세 되던 해 겨울에,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삯바느질을 하던 어머니께서 병이나 몸져눕고 말았다. 살림이 매우 어려워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형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박종익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펴낸 『구전설화』14에 실려 있다. 이 자료는 2001년 11월에 연산면 고양리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이지형(남, 59)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옛날 연산 당골에서 화골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 이 산은 높이가 650m나 되었다. 산의 정상에서 100m 가량 내려오면...
-
충청남도 연산면 천호리와 화악리에서 마을의 당산목인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왕건은 황산에서 후백제군을 제압한 뒤 그 공이 부처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처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지금의 개태사를 짓게 하였다. 왕건은 절을 다 지은 후 공이 큰 두 사람을 가려 느티나무 묘목을 하나씩...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의 황산벌에서 있었던 백제 마지막 전쟁을 코미디 형식으로 만든 영화. 「황산벌」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희화(戱化)한 최초의 한국영화이다. 논산시 연산면 지역의 천호리(天護里)·연산리·표정리(表井里)·관동리(官洞里)·송정리(松亭里) 등을 포함하는 곳인 황산벌은 백제시대 최후의 격전지로 영화에서는 당시에도 사투리를 썼다는 가정에서 기존의 역사를 코믹하게 재구성하...
-
도토리묵집의 주인장 김성금 씨가 고향인 공주의 경천리를 떠나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재래시장이 있는 골목에는 ‘도토리묵 거리’라고 불릴 만큼 묵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쯤 가짜 도토리묵이 성행하고 밀가루를 섞거나, 혹은 중국산의 도토리로 묵을 만드는 집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맞지 않아 전통 묵 집들은 하나...
-
연산재래시장 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반갑게 우리들을 맞이해 주는 분은 다름 아닌 문복규 씨이다. 연산재래시장에 관심과 애착이 많기도 하겠지만, 인정이 너무 그리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로서 그저 사람만나는 일이 반갑다고 한다. 문복규 씨는 연산리의 토박이로 연산리에서 태어나 지금껏 80년이라는 세월을 연산시장과 함께 한 터줏대감이다. 현재 연산재래시장...
-
이인보를 시조로 하고 이다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가평이씨의 시조 이인보(李仁輔)는 신라 때 완산(현 전라북도 전주시)의 호장을 지낸 인물이다. 『가평이씨세보』에 의하면 이인보의 8세손 이기문(李起文)이 조종에 이거하면서 본관을 조종으로 하였다가 조선 태조 때 조종이 가평에 편입된 후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이 가평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상종 소속 사찰.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940년 개태사가 완공되자 왕건은 화엄법회를 열고 친히 소문(疏文)을 지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 부근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불교의식용 쇠북. 개태사 청동금고는 개태사지 부근에서 주택 개량 사업을 실시하던 중 발견되었다. 불구(佛具)는 사찰 행사 때 사용되는 도구들로서, 금고는 이러한 불구 가운데 범종·운판·목어 등과 함께 소리를 내며, 징 모양을 하고 있고 반자라고도 부른다. 양쪽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쇠북이라는 뜻에서 금고라 부르고, 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사찰이다. 개태사 인근에 있어 이름 붙여진 개태사역은 호남선의 철도역으로 건립되었다. 1944년 4월 9일 광석신호장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6년 2월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1968년 11월 29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고, 1969년 10월 1일 개태사역으로 역명...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개국 사찰이다. 936년 창건되어 940년 완공되었다. 개태사 오층석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치하기 위해 건립된 석조물로 금당과 더불어 경내의 중앙에 위치하였다. 기단부는 대부분 결실된 채 탑신부와 상륜 일부가 남아 있다. 평면 방형에 탑신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찰 터. 태조 왕건은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후, 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고려사』 태조세가 19년조에 따르면 “이 해 광흥사, 현성사, 미륵사, 사천왕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시대 저수용 석조. 장방형 혹은 원형의 화강암을 파서 만든 개태사지 석조는 구 개태사 주방에서 저수용으로 사용했던 석조물로 보인다. 석연지(石蓮池)라고도 불리는 석조는 석재 내부를 파내 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표면에 문양이 없는 것과 연화문이 장식된 것이 있다. 개태사지 석조는 평면 장방형의 형태로서, 2기이다. 하나는 마을 안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가마솥. 개태사 철확은 원래 개태사 창건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승려 5백여 명이 밥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 준 것이라고 전한다.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 벌판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7년(고종 24)의 정해년 대홍수 때 4㎞ 정도 떠내려가 연산읍 앞 냇가에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일본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사이에 있는 고개. 개태치 아래에 936년(태조 19) 고려 태조가 창건한 개태사가 있어서 사찰의 이름을 따 개태치라 부르게 되었다. 개태치는 논산시 북동쪽 남~북 방향의 능선인 천호봉(352m)·깃대봉(393.1m)·국사봉(國司峯, 333m)에 있는 고개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개의 서쪽은 남~북 방향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요보호 아동을 위한 보육 시설. 계룡학사는 「아동보호법」에 의한 요보호아동의 수용 보호 및 양육과 요보호아동의 건전한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전인교육을 실시하며, 자립을 위한 교육 및 지원사업을 전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48년 2월 9일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계룡학사를 설립하였다가 1951년 8월 1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
-
이황(李璜)을 시조로 하고 이민(李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고성이씨의 시조는 한문제(漢文帝) 때 사람인 이반(李槃)의 24세손 이황(李璜)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이씨는 고려 말 이후에 성세를 보였으며,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36명, 상신 1명을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이원(李原)이다. 이원의 가계(家系)는 고려의 명문으로 고조부는 충렬왕 때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끼고 괭이다리(괭잇다리)가 있어, 이 다리 이름에서 마을 이름을 고양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식한면(食汗面) 교촌리(校村里)와 하교촌리(下校村里)를 병합하고 고양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큰절이 있었으므로 붉절골 또는 적사곡(赤寺谷)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거절터 또는 거정터·거정치·거정대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지역으로, 적사곡면(赤寺谷面)이 되어 청동(靑洞)·범남(凡南)·풍덕(豊德)·충곡(忠谷)·거사티[居寺峙]·안천(安川)·성겁(城劫)·성내(城內)의 8개 리를 관할해 오다가 1895년(고종 3...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서 광산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고정리는 1400년대 초반 광산김씨 동족촌락으로 형성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타적 공간으로 지켜 온 곳이다. 연산에 거주한 광산김씨의 연원(淵源)은 고려시기 본관지 광산을 이탈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재경(在京) 광산김씨의 일파였다. 김약채(金若采)가 광산김씨로서는 최초로 연산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던 조선시대 석상. 사계 김장생의 조모 양천허씨의 사후 묘역을 정해 준 승려가 장례 기일을 지키라는 당부를 하였는데, 이 당부를 잊고 장례를 진행하자 승려가 갑자기 사망하였다고 한다. 훗날 이 사실을 안 종중원(宗中員)들이 승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양천허씨의 묘역이 바라보이는 지점에 묘소를 향하여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정리 원고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양천허씨 정려. 양천허씨는 조선 전기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과 결혼하였다. 17세에 남편이 죽자 부모가 다시 출가시키려고 하므로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 집으로 가서 평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보인다. 양천허씨는 유복자인 김철산을 정성을 다해 키워 좌의정을 지낸 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백 장군이 신라의 16세 소년 관창(官昌)을 사로잡아 그 의기를 가상히 여겨 살려 보냈는데 관창이 다시 침입하여 그를 부득이 잡아 죽인 곳이라고 하여 관창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관청골 또는 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식한면(食汗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촌리(校村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관동리라 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 윤씨 문중 서원 터. 구산서원은 서인계 성혼의 학맥을 이은 곳으로, 훗날 후손 중에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尹拯)이 배출되었다. 파평 윤씨는 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 대 유학자들과 관계가 깊은 대표적 호서 명가의 하나이다. 특히 김장생의 광산 김씨와 빈번한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호서 사림 내에서 파평 윤씨 일족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고려 전기 금동탑. 개태사지는 고려 태조 왕권이 후백제를 물리치고 창건한 절터이다. 개태사 금동대탑은 고려 전기(10~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개태사의 폐사로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1960년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금동탑은 절의 중심적인 존재라기보다 건물 안에 장식품으로 안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탑의 성격보다...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효통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기계(杞溪)는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라 때 아찬(阿湌)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 멸망 후 고려왕조에 불복하자 태조(太祖)가 기계호장(杞溪戶長)을 삼았다. 그 후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하였다. 기계유씨는 조선 초기부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소재 기계유씨 묘소 앞에 세워진 조선 후기 묘표. 기계유씨는 김집의 아내로 좌의정 유홍의 딸이다. 1592년 김집에게 시집 왔으나 자식 없이 별세하였다. 사후에 김집 묘소와 거리도 떨어져 있고 비석도 없었기 때문에 기계유씨 묘표를 건립하였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겸광의 묘소. 본관이 광산(光山)인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뒤 감찰, 정언 등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신숙주(申叔舟)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군기시정에 오른 뒤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65...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공신 김겸광의 신도비. 김겸광 신도비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좌리공신 3등으로 광성군에 봉해진 김겸광의 공을 추대하여 1492년(성종 23)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직진하면 고정리가 나온다. 신도비는 쇠머리에 위치해 있다. 1507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묘역. 김계휘(金繼輝, 1526~1582)의 본관은 광산,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이다. 현감 김호(金鎬)의 아들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이다. 1549년(명종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1566년(명종 21) 직제학으로 문과 중시에 율과로 급제하여 대사헌·예조판서·경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 김계휘(金繼輝)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좌의정 김국광의 현손이며, 현감 김호의 아들로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이다. 김계휘 신도비는 원래 고정리 마을 안에 있었으나 후대에 마을 입구로 옮겼다고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 가면 남쪽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 정도 들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공휘 묘비.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전과 예학을 강구한 김공휘는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느 요직에서건 치적이 현저하였다. 김공휘는 연산 휴정서원에 배향되었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의정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김국광의 불천위제사.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은 조선 세조 때의 명신으로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정충출기적개공신의 호를 받고 숭록대부좌찬성에 봉해졌다. 1469년(예종 1)에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영경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좌의정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1471년(성종 2)에는 순성명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국광의 사당.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석(瑞石)이다.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 때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맞아 함경도 경차관으로 공을 세워 병조 참판, 병조 판서에 이르렀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남이 장군과 함께 평정하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화(茂和).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 어머니는 사직 진계손(陳繼孫)의 딸로서 삼척진씨(三陟陳氏)이다. 숙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극개는 1496년(연산군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병과 1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정랑, 훈련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시대 면임 김두종의 불망비. 면임(面任)이란 조선시대 지방의 면에서 호적과 공공 사무를 담당했던 직책이다. 풍헌(風憲)·약정(約正)·존위(尊位)·권농(勸農)·집강(執綱)·도유사(都有司)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향촌 지배 기구가 강화되어 향촌의 자치 영역인 면리가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됨으로써 면임이 부세를 비롯해 여러 행정...
-
개항기 논산 출신의 의병. 김득수는 1882년 현재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실력양성운동과 의병봉기로 국권을 회복하는 노력이 일어나자. 1907년 2월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같은 마을에 사는 정찬경(鄭粲敬)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의병봉기에 사용할 무기를 준비할 목적으로 같은 해 6월 상경하여 육혈포 1정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증조할아버지는 예학(禮學)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충렬공(忠烈公) 김익겸(金益謙)이다.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형은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이며,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조카딸이다. 어머니 해평윤씨 집안은 고조부와 증조부가 영의정을...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통정대부 김영선이다. 김봉수는 어려서부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밑에서 예학을 배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도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좋은 음식이 생기면 배가 고파도 참고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어머니가 73세의 고령이 되어 병환으로 자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보(士輔), 호는 묵옹(黙翁)·신독재(愼獨齋).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첫째 부인 창녕조씨(昌寧趙氏) 사후 들어온 측실이다. 형은 김영(金榮), 김경(金檠), 김고(金杲), 김구(金榘), 김규(金槼), 이복형제는 김은(...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묵계(默溪).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하겸(金夏兼)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중과(李仲科)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큰아버지 김용겸(金用兼)에게 입양되었다. 김상연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6년(숙종 42) 부친상을 당...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좌의정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김호(金鎬)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繼輝)이다. 큰아버지인 김석(金錫)에게 입양되었다. 김은휘는 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활인서별제, 사포서별제, 수운판관(水運判官), 통례원인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은휘의 묘갈. 김은휘(金殷輝, 1529~1611)의 자는 경회이고, 본관은 광산인으로 김계휘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안력이 뛰어나서 책을 볼 때 10행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 및 구봉 송익필과 친교하였다. 관직은 천안현감을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응근의 불망비. 김응근(金應根, 1793~1863)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경(溪卿), 호는 의석(宜石)이다.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822년 익위사세마가 되었다. 그 뒤 외직으로 여러 고을 수령을 거쳐 1857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에 제수되었다가 1860년 공조판서, 이어 형조판서를...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연안서씨(延安徐氏)이며, 형은 김익희(金益熙)이다. 김익겸은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 후금(後金)의 황태극(皇太極)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일을 축하하기 위해 춘신사(春信使)로 파견된 나덕헌(羅德憲), 이확(李廓) 등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김은휘(金殷輝)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사용(司勇) 김양(金梁)이다. 김익요는 충의위(忠義衛)를 지냈다. 그러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고향인 충청도 연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지역)으로 물러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예학과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다. 김익추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는데 두 스승으로부터 총민하여 대성할 것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처음 벼슬길에 올라 익릉참봉을 거쳐 선공감봉사를 지내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충청도 연산(...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창주(滄州).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서주(徐澍)의 딸로서 연안서씨(延安徐氏)이다. 동생은 김익겸(金益兼)이다. 김익희는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정자에 등용되었다. 그 해 검열을 거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635년 수찬과 사서...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김장생은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예학을 배웠으며, 이이(李珥)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워 조선 중기 예학과 성리학의 거두가 되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을 역임하여 요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로 영향력이 매우 커서 인조 초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장생의 예학은 아들 김집에게 계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후손들이 행하는 김장생의 불천위제사. 김장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으며 20세 무렵에는 이이(李珥)에게 사사했다.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을 제향한 사당. 조선 후기 호서사림을 대표하였던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본관이 광산, 호는 사계(沙溪)이며,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이다. 송익필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대를 대표하는 대 유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 예학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장생의 신도비. 김장생 신도비는 성품이 곧고 강직하며 바른 것이 무엇이며 세상의 이치란 어떤 것인가를 알고는 학문에 힘쓴 김장생의 공과 인품을 기록하여 널리 후대에 알리기 위해 1634년(인조 12)에 건립되었다. 김장생 신도비는 김장생 묘소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 김씨 문원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717년(숙종 43) 김장생의 문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1578년(선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른 뒤 창릉 참봉을 거쳐 정산 현감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조 정랑으로 명군의 군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과 광산김씨 문중 사람들의 묘소. 고정리의 김장생 묘소 일원에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 김장생과 광산김씨의 중흥을 이룬 김장생의 7대조모인 양천허씨, 그리고 김철산과 김철산의 처인 안동김씨, 김겸광, 김공휘, 김선생 등의 묘소가 모여 있다. 이곳에는 또한 김겸광 신도비와 김장생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고, 양천허씨의 재실인 논산...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사계 김장생의 후손이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손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다. 양자로 들어간 뒤에 양어머니가 아들 삼형제를 두게 되어 구박을 받았으나 친부모에게 다하지 못한 효도를 양부모를 위하여 다하였다. 양어머니는 처음에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이 변함없고 진심함을 알고 난 후에는 친아들처럼 잘 보살펴 주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재경의 정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식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는데, 양자로 들어간 뒤 양어머니가 아들 셋을 낳으면서 김재경을 구박하였지만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주위에 김재경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64년(고종 1) 정려가 내려졌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를 가다가 남쪽 도로로 2.5㎞를...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종지(宗之). 할아버지는 좌의정 광산부원군 김국광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김극뉴이다. 부인은 영산신씨로 풍저창수 신우정의 딸이다. 4남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군수 김석이며, 둘째 아들은 별제 김종이고, 셋째 아들은 증참판인 김호이고, 넷째 아들은 호군 김단이다. 김종윤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고 성품이 후덕하고 행동에 절도가 있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종윤의 묘표. 연산역의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고정리 마을에 이른다. 김종윤 묘표는 고정리 거정 터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의 풍우로 자획이 마모되어 묘 옆에 새로이 묘비를 세워놓았다. 1538년(중종 33)에 세워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김장생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다.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김진상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에 정시문과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설서·지평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20년(숙종 46)...
-
조선 중기 논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다. 김집은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사장학(詞章學)을 좋아하지 않아 경전연구와 수양에 전심을 다하였으며,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의 김집 종손 집에서 행하는 김집의 불천위제사.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며 송시열과 송준길의 스승이다. 영특하고 학예에 뛰어나 l8세 때 진사가 되었으며 광해군 때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661년(현종 2) 김집의 문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김집(金集, 1574~1656)의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송상현(宋象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나 학통은 아버지 김장생(金長生)의 가학을 이어받았다. 18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학자 김집을 제향하는 사당. 김집(金集, 1574~1656)은 김장생의 아들로서 본관은 광산, 호는 신독재(愼獨齋)로, 호서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참봉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통치 행위를 보고 은퇴하였으며 인조 반정 후 부여 현감으로 등용되어 집의, 공조 참의를 지냈다. 효종 즉위 후, 예조 참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철산의 묘비. 김철산의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천품이 순후하고 강직하여 모두가 숨은 덕이 있다고 칭송하였다.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에 책봉되었고,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의정부사 광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처음 세워진 묘비는 오랜 세월의 풍우로 인해 마모되었고, 172...
-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태오는 전라북도 익산군 출신으로 25세 때 당시의 충청남도 논산군 논산읍 등화리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 주는 것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으며, 천도교 교인으로서 서울 천도교령에 가서 지하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되자 논산 지역으로 내려와 손필규(孫弼奎), 이백순(李伯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한수의 불망비. 김한수의 공적을 잊지 않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건립한 불망비이다. 김한수(金韓洙)의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 어렵지만, 『방여총지(方輿總志)』 전라도 지역 증직 인사 명단에 순조 연간 ‘광산인감찰(光山人監察)’로 올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1830년에 비가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선지(善之), 호는 근와(芹窩). 사계 김장생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수택(金壽澤)이다. 아버지는 김상경(金相庚)이며, 어머니는 이광택(李光澤)의 딸이다. 김희는 1762년(영조 38)에 생원이 되고 음보(蔭補)로 봉사가 되었다. 1773년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77년(정조 1)에 초계어사에 선발되었다. 1779년 교리가...
-
예전에는 산신제가 일 년 중 동네의 가장 큰 행사였기 때문에, 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제물을 준비했고, 산신제가 끝나면 준비했던 제물을 다 같이 나누어 먹으며 풍성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진행되던 마을축제는 점차 산신계원들, 특히나 산신계의 임원들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게 되었고, 따라서 산신제의 제물준비도 산신계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2000년 이전까지는 산신제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면장 남덕원의 불망비. 남덕원 불망비는 면장 남덕원이 베푼 선정을 기려 면민들이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통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약 6.5㎞쯤 가면 백석리에 이르는데, 남덕원 불망비는 도로의 오른쪽에 김두종 불망비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 이공겸 부부 효열 정려가 자리 잡고 있다. 비석은 호패형으로, 비의 앞면에 ‘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남일우의 거사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 남일우가 연산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서 건립되었다. 거사비는 감사(監司)나 수령이 갈린 뒤에 그 선정을 사모하여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가다 보면 연산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월 방면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감 남준응의 선정비. 남준응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연산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연산현 주민들이 세웠다. 원두갈로,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의 크기는 높이 101㎝, 너비 43㎝이다. 비의 앞면에 ‘현감남후준응선정비(縣監南侯駿應善政碑)’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산현감을 지내고 떠난 사람 중 선정비가 세워진...
-
연산면 연산리 시장 구석에 대장간이 자리 잡은 것은 1978년경이다. 대장간의 대장장이 유오랑 할아버지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 받아 평생 쇠를 만지는 일을 해왔다. 계룡시 신도안면 남선리(옛 논산군 두마면 남선리)에서 아버지 대부터 대장간을 운영하였으며, 12살이 되던 1950년에 불무지에서 불을 다루는 일부터 시작해, 아버지에게 하나씩 전수 받아 지금까지 58년간...
-
시장 길목에는 예전의 시장을 연상하게 하는 노점상들이 시장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노점상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했다는 윤희훈 씨(75)를 만나 많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내가 여기서 장사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나봐. 아니다. 50년 정도 되었나보다. 나 노점상 아냐.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노점상이 어쩌구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민물고기 연구 개발 시설. 내수면개발시험장은 잉어·향어·붕어·메기 등 토산 담수어의 보호·관리와 참게·쏘가리·대농갱이·철갑상어·관상어 등 새로운 양식품종의 개발 등 민물 수산자원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개발과 새로운 양어 기술의 보급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66년 충청남도 수산자원관리소가 설립되어 충청남도 지역의 수산자원을 전반적으로 관리해 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1리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노래기를 없애려고 행하던 세시풍속. 옛날 농촌의 가옥은 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이었기 때문에 짚 안에 노래기가 알을 까고 번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래기는 본래 냄새가 지독한 벌레이다. 마을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래기 바늘주기’라는 속신이 전해져 왔다. 이러한 풍속은 논산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본래 개태사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 놓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 옮겨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태사지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 건물 터가 확인되었고 개태사의 명문기와도 수습되었다. 아울러 구 개태사를 조성하기 위해 축조해 놓은 석축도 마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논산 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또한 돈암서원은 1659년(효종 10)에 이어 1660년 (현종 1), 두 번 사액을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서 호서 지역 전체 뿐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강당. 돈암서원의 강당 건물로 1634년 서원 창건시 건축하였고 강학 공간으로 사용 및 호서 사림의 활동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으나,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서 앞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져 배치되어 있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당골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논산 표정리 도구머리 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논산 표정리 당골 고분군), 공주대학교 박물관(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의하여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조사된 고분 명칭이나 내용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논산 표정리 당골 고분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도구머리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논산 표정리 도구머리 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논산 표정리 당골 고분군), 공주대학교 박물관(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의하여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조사된 고분 명칭이나 내용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논산 표정리 도구머리...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조직된 노동조합. 1920년대 사회주의 이념의 유입으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사회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3·1운동 당시 민중의 적극적인 진출을 경험한 활동가들은 민족해방운동 주력군으로 민중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공장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단체는 점차 일용노동자 등으로 관심 영역을 확대하였다. 논산군 연산노동조합은 우차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재실. 양천허씨는 태조 때 대사헌을 지닌 허응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에게 출가하였고, 17세에 홀몸이 되자 친정 부모의 재가 권유를 거부하고, 연산에 내려와 유복자인 김철산을 키우며 일생을 마쳤다. 훗날 자손 중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을 비롯,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 기호 사림의 거두 김장생과 김집 등 대유학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델라웨어와 캠벨얼리를 주품종으로 생산하는 특산 포도. 과실류는 다른 작물에 비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논산시의 과수재배는 중산간지인 노성면과 상월면, 연산면, 가야곡면, 은진면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복숭아 재배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했으나 농가소득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복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도구머리 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당골 고분군), 공주대학교 박물관(하표정 고분군)에 의하여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조사된 고분 명칭이나 내용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논산 표정리 도구머리 고분군과 논산 표정리 당골 고분...
-
이틀간 정성껏 준비한 산신제는 음력 1월 5일 밤 8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산신제를 지낼 산신계 임원 7명이 산제당이 다 같이 모여 옷을 갈아입고, 산신제를 준비하는데 밤 8시에 산제당 앞에서 세 번 울린 징소리에 축관이 산신제의 축문을 비롯한 소지 올릴 명단을 작성한다. 밤 8시에 징 3번, 밤 9시에 징 3번, 밤 10시에 징 3번, 밤 11시에 징 3번을 치고, 밤 11...
-
흔히 풍수지리에서 배가 뜬 모양이란 행주형(行舟形)은 행운의 터라고 말을 한다. 옛날에는 배가 재물과 사람을 운반했기 때문에 배에는 사람과 재화가 모인다고 하여 배 모양의 땅에 묘를 쓰거나 집을 지으면 동네는 물론 집안이 번창한다고 믿었다. 주형(舟形), 배 모양의 앞에 행(行)자를 붙여서 말 그대로 배가 떠다니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즉 행주형이라 하는 것은 떠나갈 듯 하면서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큰 바위가 있어 덕바우 또는 덕암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행정리(杏亭里)·도구리(道龜里)를 병합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가 되었다. 덕암리의 동부는 함지봉(咸芝峰, 386.5m)과...
-
근대 개항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성주. 자는 충필(忠弼), 호는 해산(海筭). 도상하는 1894년 동학운동이 발발하여 농민군과 관군이 논산 지역에서 보복전을 벌일 때 양쪽을 중재하였다. 당시 전봉준의 농민군 선봉대는 논산 지역에서 남접과 북접이 만나는 논산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은진현을 점령하였다. 전봉준은 10월 12일 4천여 명의 농민군과 함께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
-
새벽 5시~6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김성금 씨는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재래시장에서 1970년 후반부터 30여 년간 도토리묵을 팔고 있다. 옛날 어머님이 해 온 방식 그대로 하나의 거스름도 없이 전통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판의 도토리묵을 만들기 위해서는 꼬박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 과정이 여간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도토리를 물에 담가 놓는 시간도 며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 인근에 있는 바위. 현재 돈암(遯巖)은 숲말(임리1구)의 김집 선생 사당에서 신림마을로 가는 길모퉁이에 있다. 옛날 이 돈암이 있던 부근에 돈암서원이 있었다. 현재 돈암서원(遯巖書院)은 연산면 임리2구에 있는데, 1634년(인조 12) 숲말에서 서원을 창설하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을 모시고, 1658년(효종 9)에 그 아들 신독재(愼獨齋...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원정비. 돈암서원 원정비는 돈암서원을 세우게 된 배경과 서원의 구조를 남기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의 학문과 성품을 칭송하는 글도 새겨 놓았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2.3㎞를 가면 도로 남쪽에 돈암서원 입구가 있다. 돈암서원 원정비는 서원 내의 강당 건물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말기 돈암서원 이건비.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건립되어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을 배향한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본래 현재 위치에서 약 1.5㎞ 떨어진 숲말에 있었다. 숲말에는 김장생 아호의 연원인 사계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홍수로 사계천이 범람하여 서원의 담장을 침색해 들어오게 되었다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는 책판. 『돈암서원지』 「장판각기」에 따르면 “사계 선생께서 돌아가신 지 292년 후 임술년(1922)에 전서(全書)가 완성되어 판각에 올리니 모두 1,793판이요, 또 유고(遺稿)와 『변의집람(辨疑輯覽)』과 『비요(備要)』에 구판(舊版)이 모두 1,137판이요, 「황강실기」와 『신독재전서』 및 유고가 모두 1,2...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당. 돈암서원 유경사는 호서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며, 1658년(효종 9)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추배하였고, 이어 1688년(숙종 14)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95년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각각 추배하고 있는 곳이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
산제당은 연산리 4구의 뒤편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영천봉(靈天峯), 마을 주민들이 ‘영실봉’이라고 하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빨간 벽돌과 파란 기와지붕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이러한 모습을 갖추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산제당은 영천봉의 동북쪽 끝자락, 마을입구에서 봤을 때 동산의 왼편쪽에 있는 큰 둥구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로 지어놓은 제당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서 국산 콩을 이용하여 만든 양조간장. 맛가마간장은 1994년 창립한 맛가마식품에서 만드는 재래간장이다. 맛가마간장은 맛가마식품 창업주인 도기갑(都基甲, 1934~2003)이 전통 방식의 재래간장과 기업 방식의 양조간장의 장점을 혼합하여 개발하였다. 재래간장은 콩을 메주로 만들어 담그는데, 메주 속이 잘 발효되지 않고 부패하여 냄새가 나면서 간장이나 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호·김계휘를 제향하는 재실. 모선재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조부(祖父)인 김호와 부친 김계휘(金繼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자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1700년대 초반인 것으로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 가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산리 사당에서 행하는 민발의 불천위제사. 민발(閔發, 1419~1482)은 조선 세조 때의 공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1467년(세조13)에 이시애 등의 반군을 무찌른 공으로 정충적개공신(精忠敵愾功臣)의 호를 받고 여산군에 봉군(封君)되었다. 민발의 불천위제(不遷位祭)는 여흥민씨 위양공파에서 나라의 허락을 받아, 4대 봉사가 끝나더라도 민발의 신주를 사당에...
-
고려 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1376년(우왕 2) 가을 왜적이 부여를 거쳐 공주에 이르자, 당시 공주목사였던 김사혁이 정현에서 맞서 싸우다가 패하여 공주가 함락되었다. 당시 토왜군의 원수(元帥)였던 박인계는 속현감무(屬縣監務) 서천부(徐天富)가 이를 구원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참수하고, 왜적이 석성(石城)을 거쳐 연산(連山, 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지역) 개태사(開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마을 안에 흰돌이 많아서 흰돌, 흔돌 또는 백석이라 불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지역으로 백석면이 되어 덕암리(德岩里)·당곡리(棠谷里)·상암리(上岩里)·상표리(上表里)·중표리·하표리·신표리(新表里)·신범리(新凡里)·고양리(高陽里)·행정리(杏亭里)·도구리(道龜里)·덕산리(德山里)·용산리(龍山里) 등의 3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개성 있는 학생, 기초와 기본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전통문화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이웃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게 새롭게 씩씩하게’이다. 1934년 3월 31일에 연산공립보통학교...
-
1991년에 백중놀이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되면서, 매년 ‘연산 백중놀이 축제’를 통해 옛 모습을 재현해오고 있다. 매년 음력 7월 15일에 벌어지는 축제는 백중놀이 보존회에서 주관을 하고 있으며, 초대회장 송인수 씨를 시작으로 김용만 씨를 거쳐 2008년 현재 강대혁 씨가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처음에 120명으로 시작된 보존회는 현재 회원이 180명이 될 정도로 20...
-
현재까지 백중놀이가 열리고 있는 지역은 김해와 서울, 연산 지역이 전부이다. 그 중에서도 연산의 백중놀이는 효자와 효부에게 상을 주고, 불효자를 응징하며 농사짓는 머슴에게 상을 주어 충·효·근면을 장려하는 민속놀이로 527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연산의 백중놀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논산문화원에서 발행한 『논산의 민속』이라는 책과 연산백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전리에 있는 정신장애자를 위한 종합 복지 시설. 보람의집은 정신장애인에게 재활직업훈련 및 각종 프로그램을 통하여 정신장애기능 회복과 질병관리능력을 향상시키고, 기능적 기술훈련을 쌓아 외부에 취업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6년 5월 1일 법인 설립 인가를 받고, 1987년 4월 21일 요양시설 설치허가를 획득하였다. 1999년 7월 2...
-
드라마와 책에서 보았던 옛 장터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길바닥에 천을 깔고 물건들을 늘어놓고, 보따리 가방을 등에 짊어진 사람들이 짚신을 신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옛날의 시골 장터의 모습이 오늘날 연산의 재래시장 모습이었다. 연산1리와 연산4리에 걸쳐 장이 열리던 시장은 매달 5일과 10일, 15일과 20일, 25일과 30일로 5일장이 열렸던 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살포재 밑에 있다고 하여 살표재 또는 사포라 불렸다. 연산군 백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귀암리·신정리·송산리·신소리·평촌·구정리의 각 일부와 외성면 소원리·개정리, 노성군 하도면 숙진동 일부를 각각 병합하여 사포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연산면 사포리가 되...
-
산신계의 역사는 산신제의 100여년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산신계가 몇 년에 시작되었고, 누가 시작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산제당의 현판에는 1936년 이영호 씨를 비롯하여 열한 명의 산신계원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 계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1월 3일 풍장을 치고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쌀을 비롯한 각종 음식을 걷었다. 이렇게 모은 쌀과...
-
백제 말에 계백 장군이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황산벌 일대 산성 3개소에 설치한 군영. 백제 후기 의자왕 때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군대 5만 명이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의 의자왕은 계백 장군으로 하여금 신라군을 막도록 하였다. 이에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당시 백제의 왕도 사비 방어의 요충지였던 황산벌에 도착한 후 험한 지형을 골라 신라군과 대적하기...
-
충청남도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성주도씨의 사당. 성주도씨 사우는 노은(魯隱) 도응(都膺)을 제향하고 있는 곳으로, 사우 안의 어필각에는 조선 태조가 도응에게 내린 왕지(王旨) 4매(枚)와 녹패(祿牌) 1매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보관된 성주도씨 종중문서는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24호로 지정되었다. 왕지는 조선 초기 교지 형식, 교지 서체의 변화, 왕지와 교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성주도씨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관작·자격·시호·토지·노비 등의 특전을 내릴 때 쓰는 문서 양식으로 관리에게 관작을 내리는 교지는 고신(告身)이라 한다. 특히 조선 전기 태조·정종 대에는 교지라는 용어 대신에 왕지(王旨)라 하였고, 보인도 ‘조선왕보(朝鮮王寶)’가 사용되었다. 녹패(祿牌)는 이조·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종...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전리에 있는 정신 질환자를 위한 요양 시설. 성지드림빌은 정신 질환자를 예방·치료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하여 사회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6년 5월 1일 사회복지법인 논산성지원법인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87년 4월 21일 정신요양시설 성지원 설치 허가를 받았고, 2006년 2월 14일 법인 명칭을 ‘함께하는 복...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문림의 묘표.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연산 화악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송서(宋瑞)의 아들인 송윤번(宋允蕃)이 진잠(鎭岑)에 살다가 그 아들 송전(宋琠)이 화악리로 이거해 살기 시작했다. 이미 송윤번의 셋째 딸이 고성 사람과 결혼하여 고양리에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고 송전(宋琠)의 딸은 기계인(杞溪人) 유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송불암이 위치한 자리에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석불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1946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살았던 동상태의 어머니가 2칸의 민가로 송불암을 창건하였다. 송불암은 1970년대부터 승려 경연이 주지를 맡고 있는데, 송불암이라는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논산 송불암사지는 대전에서 연산사거리로 향하는 국도 1호선 가에, 사거리를 500m 남겨 둔 지점에 있다. 본래 송불암사지 미륵불 주변에 수령 250여년 된 소나무가 있어 마치 미륵불을 보호하듯 서 있었으나, 소나무 가지가 점점 처져 불상의 머리 부분을 압박함에 따라 미륵불 이전이 결정되고, 2001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한...
-
연산 사거리에서 벌곡으로 가는 길 옆인 연산3리에는 노송 한 그루가 우산살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고 그 아래에 소나무 이름을 딴 ‘송불암’이라는 석불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연산리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송불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초에 광산김씨 가문이 연산 땅에 살고 있었다. 그는 글 공부에 매진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고, 벼슬길에 오르면서 개경에 있는 좋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송불암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불상. 송불암 미륵불은 석불사라는 옛 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의 석불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50m 들어간 산기슭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현재의 송불암(松佛庵)이란 명칭은 송불암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나무가 무성하였으므로 솔미 또는 송산이라 하였다. 연산군 백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구정리 일부와 외성면 부황리·청림리·중외리·하외리·왕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산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연산면 송산리가 되었다. 송산1리, 송산2리의 2개 행정리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나무 숲에다 정자를 만들었다 하여 소정이 또는 송정이라 하였다. 연산군 식한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중개태리, 한림정리, 산노리, 북계리, 상송리, 하송리, 호동, 천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가 되었다. 송정1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었고, 1630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마(洗馬)에 제수된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내시교관(內侍敎官)·동몽교관(童蒙敎官)·대군사부·형조좌랑·사헌부지평·한성부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아가지...
-
KBS 네트워크(2008년 5월 방영), 대전일보(2003, 2004년, 2005년 보도) 등 정말 여러 차례 맛집으로 소개된 ‘연산순대’집을 찾아갔다. 연산재래시장에서 대추거리로 조성된 길가의 맞은편에 위치한 가게는 대로변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연산순대집의...
-
연산재래시장 에서는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연산순대야말로 수십 년간 논산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 온 효자다. 연산시장에서 일렬로 늘어선 순대집들이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사하던 모습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한때는 순대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화했었던 이곳에서 지금까지 20여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연산...
-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후남과 안세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순흥(順興)은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시대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 신호위상호군(神號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따라서 시조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그 후대로 순흥현(順興縣)에 세거했기 때문에 후손들이 순흥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에서 발원하여 연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신암리를 흐르는 하천이라 하여 신암천이라 불린다. 함박봉의 서쪽 사면은 경사가 급하며 하천에 의해 개석된 소규모 분지성 지형이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신암천이 발원하여 수지상 하계패턴을 이루며 북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지형도상으로는 평탄지에 가까우나 중하류의 평야에 비해선 80~100여m로 고도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씨가 처음 이룩한 마을이라 하여 신양뜸 또는 신양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량리(下良里)·황산리(黃山里)·시목동(枾木洞)·중명암리(中鳴岩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양리라 하여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 하며 하산티[下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아랫산명재라고 불린다. 아랫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아랫산명재 북쪽에 산명재와 윗산명재가 있으며, 서쪽은 일음골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안호의(安好義)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의리에 강했으며 학문을 즐겼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외직으로 아산현감·정산현감·석성현감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고 지방 토호들을 엄히 다스려 기강을 바로잡았다. 또한 미신을 타파하는 한편 학교를 부흥시키는 치...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성규, 호는 규정(規亭).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사를 지낸 안여택(安汝宅)이다.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은 증조할아버지 안여택의 효행을 본받아 부모 섬기는 데 평생 변함이 없었다. 효행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화하고 순박하여 동기 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이웃 간에도 화목하여 남의 모범이 되었다. 품행이 알려져 주민들과 유림의 추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의 서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생전에 관직에 나가는 것보다 연산이나 연산과 가까운 곳에 서재(書齋)를 짓고 문인들과 강학하며 지내는 것을 즐겼다. 양성당은 1602년(선조 35)에 정인홍(鄭仁弘)의 용사(用事)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연산에 내려와 아한정(雅閑亭)의 유지(遺址)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사설 교육기관. 양지서당은 도덕윤리, 인의예지, 효제충신, 인성예절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한문, 서예, 검도 등을 교육함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 문화와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청소년의 정신 교육에 선구자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에 양지서당을 개원하였다. 2002년 7월 논산시 연산면 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
-
연산시장의 상인회는 연산시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상인회는 2006년에 연산재래시장이 설립되고 상가들이 하나둘씩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되었다. 16개 상점에 24명으로 재래시장에 점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가입이 된다. 시장이 생긴 바로 직후에는 상가의 번영회장이 상인회의 회장직까지 겸해서 일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상...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에 있는 돌탑.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 일은골로 접어드는 어은지(漁隱池) 북동쪽 끝자락 옆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길 양쪽에 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은 그냥 ‘탑’이라고 부른다. 어은리 일은골 방사탑은 높이 2.7m, 둘레 3.6m의 둥근 기둥 모양의 돌탑이다. 마을 공동 의례는 없으나, 외지의 무...
-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연산에서 공주 방향 도로를 따라 약 8㎞ 정도 가면 연산면 덕암리에 이른다. 덕암리 고분군은 덕암리 행경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심하게 이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199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대부분 입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사육하는 꿩과에 속하는 척추동물. 일반적으로 오계는 외형이 닭과 큰 차이가 없으나 머리는 작은 편이며, 볏은 닭과 달리 딸기 모양의 관을 가진 것이 보통이고, 때로는 복관·삼매관·장미관도 눈에 띄는데, 어두운 자색 또는 어두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부리는 청백색 또는 검은색, 얼굴과 몸은 자색 또는 청백색, 눈조리개는 갈색 또는 검은색, 귓볼은 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연산공원 귀부석은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 낮은 구릉 진입로 입구에 있는데, ‘연산공원’이라고 새긴 비신을 얹고 있다.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는 아닌 듯한데, 본래는 연산공원 일대 관아 터 유적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연산공원 귀부석은 네 발이 구부러져 있고 발톱무늬가 선명하며, 꼬리는 ㄴ자로 꺾여 있다. 전체적으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양촌면에 결성되어 활동한 항일 비밀 결사 단체.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제는 전시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조선에 대한 인적·물적 수탈을 감행하였다. 인적 수탈로는 이전의 지원병제도를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로, 1944년에는 징병제로 바꾸어 강행하였으며 물적 수탈로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여 전시에 필요한 물자를 강제 징발하였다. 연산국수동맹...
-
고려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연산군은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 또는 황등야군으로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황산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공주 임내에 병합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에는 연산현이 되었으나 1646년(인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산농공단지는 연산면과 두마면(현 계룡시) 일대의 농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특산 대추. 연산대추는 연산면 인근의 벌곡면, 양촌면, 전라북도 운주면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을 연산에 사들여와 다른 지방에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이름이다. 이후 연산면을 중심으로 대추 거래가 활발해져 전국적인 대추 집산지가 되었고, 이로써 대추 구입을 위해 연산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좋은 품질의 대추는 연산대추’라는 이미지를 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대추 축제. 1965년 전후로 논산 지역의 연산, 벌곡, 양촌에는 아름드리 대추나무가 많이 있어 가을에는 집집마다 대추 따는 소리가 메아리를 울렸고, 또한 그 밑에서 돌을 던져 대추를 따먹고 놀던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수확한 대추는 수레로 운반하여 주로 논산에서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연산의 상인들은 논산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산현의 소재지여서 읍내리 혹은 연산읍내로 불리다 연산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현 소재지로 현내면이 되어 구아동(舊衙洞)·백애(白厓)·월양대(月陽垈)·일양대(日陽垈)·신암(莘岩)·옥계리(玉溪里)·백림동(栢林洞)·옥전리(玉田里)·중리(中里)의 9개리를 관할하다 1894년(고종 31) 군내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촌리(南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연산리 석탑은 구연산(舊連山)이라 불리는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비교적 밀집된 주택지의 동쪽인 분지형 구릉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연산리 석탑은 높이 3.8m에 4층의 탑신(塔身)을 지닌 화강석으로 꾸민 것인데 약화된 기단(基壇)과 탑신부, 복발(覆鉢: 상륜 등의 노반 위에 있는 발을 엎어놓...
-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70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은 문석진(67) 할아버지는 마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2006년부터 시장의 자치부위원장, 연산면 번영회 부회장 등의 요직을 맡고 있으며 연산면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마을의 사정은 물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다 알고 있는 연산리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연산시...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삼국시대 황산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된 뒤 연산이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황령(黃嶺)·신곡(莘谷)·남촌(南村)·북촌(北村)·신암(莘岩)의 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성면(外城面)의 소계(巢溪)·개정(盖井)·부황(夫皇)·청림(靑林)·중외(中外)·하외(下外)·...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연산면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면 면민들이 같은 해 4월 7일인 장날을 이용하여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독립만세운동을 말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의 가로를 따라서 형성된 촌락. 가촌(街村)은 봉건시대의 주막거리나 저잣거리처럼 가로(街路)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또 상업적 기능이 높다. 산지가 바다에 임한 좁은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가도 등에서는 한쪽으로만 형성된 가촌을 많이 볼 수 있다. 토지의 분할은 가도와 직각 방향으로 좁고 길게 한다. 연산면 연산리 가촌이란 명칭은 연산리 주민들에게 널리 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연산면은 조선시대 연산현 지역으로서, 연산리는 연산현의 행정 업무를 집행하던 관아가 있던 구읍취락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읍취락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연산현은 은진, 니산, 석성과 함께 충청도 공주진(公州鎭)에 소속되어 있었고, 공주목사 관할 하의 연산현감이 있었다. 연산현은 진산군(현 충청남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이. 연산 백중놀이는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지금의 계룡시]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1989년 연산면 청동리에서 연산 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이 놀이는 두레먹이[호미씻이]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대동놀이이자 지역 축제의 성격을 띤다. 흔히 두레먹이는 자연 마을 단위로 베푸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대전 방향으로 3㎞쯤 가면 송정리 하송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 산 능선에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계룡산 줄기의 남단에 해당한다. 연산 송정리 마애삼존불 앞 왼쪽에 개태사가 있다. 높이 4.3m, 너비 3.5m의 수직 화강암 벽에 선각한 입상의 삼존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본존불 3.2m, 우협시불 1...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연산시장(일명 연산장)은 1911년에 개설된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연산면은 물론 인근의 양촌면, 벌곡면, 부적면, 노성면 등에서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대전광역시가 팽창됨에 따라 면세(面勢)가 점차 위축되면서 연산시장의...
-
연산재래시장 에는 분식집, 약초상회, 미용실, 반찬가게, 생선가게, 순대집 등 각기 다른 품목의 16개의 점포가 들어 서 있다. 그 중에서 약초상회와 건강원의 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정태윤 씨가 연산시장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점포의 사장님이다. 시장에 개점하면서부터 약재 일을 시작한 정태윤 씨는 원래 연산면 송산리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그러나 어려서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 관아를 출입하였던 정문.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쯤 가면 구 연산면소재지 인 연산리가 나온다. 이곳 농촌지도소 연산지소 서쪽에 연산아문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 2층 목조누각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직사각형의 돌기둥...
-
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1908년 논산 지역에는 사립학교가 다수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1908년 6월 연산에서는 민성학교가 처음으로 개교하였다. 뒤이어 동년 7월 18일에는 논산 돈암서원에 연산여명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날 입학한 학생은 50여 명이었고, 각종 경비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전담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1911년 7월 11일 대전·연산 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7년 7월 18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다. 1977년 11월 1일 특급열차 여객을 취급하였고, 1990년 8월 1일 전산단말기를 설치하였다.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을 중지하였고, 1999년 11월 26일 역사를 개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극유의 처 의령남씨의 재실. 연산 영사재 뒤쪽 50m 정도 거리의 구릉에 의령남씨의 묘소가 있으며, 묘역에는 묘비·문인석·석등·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석은 최근의 것이다. 묘비명은 1689년(숙종 15)에 세워진 것으로 호패형이고, 앞면에 ‘유명조선정부인의령남씨지묘(有明朝鮮貞夫人宜寧南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연산 영사재의...
-
연산아문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돌계단이 나타난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면 눈앞으로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공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연산리의 연산시민공원은 이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원이다. 연산공원의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국지사 농암(濃巖) 곽성진(郭性鎭) 선생 추모비이다. 곽성진 지사는 논산 강경에서...
-
연산리 입구는 늘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거린다. 농협을 비롯하여 현대식 마트, 우체국, 버스정류장이 밀집되어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연산재래시장 때문이다. 이곳에는 옛날 장터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의 편의에 맞추어 16개 점포들이 하나의 공간에 밀집되어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장 입구 앞쪽으로는 예전 연산 장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점상들이 파라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합리적 사고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능동적인 사람, 성실한 자세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주·진실·노력’이다. 1951년 12월 4일 6학급으로 연산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1년 12월 31일 초대 박창서 교장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동부와 중남부를 흘러 오산리에서 노성천으로 유입되는 하천. 연산면을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연산천의 하곡은 북남 방향의 상류로부터 연산리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비교적 좁은 직선상의 곡지를 이루며, 이에 따라 비교적 좁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이에 직각으로 꺾이는 동서 방향의 구간에서는 점차 넓어져서 상류부보다 훨씬 넓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용화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구 개태사지(開泰寺址)에서 출토된 것으로, 처음 발견했을 때 불두가 파손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보수되었다.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높이 110㎝로, 화강암으로 조상하였다. 왼쪽 무릎을 세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12년 5월 10일 4년제 연산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23년 4월 1일 6년제 연산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1946년 9월 30일에는 백석국민학교가 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대성전.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강당.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
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를 보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 터.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로 읍치의 중심인 객사에서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따라서 객사는 수령의 집무청인 동헌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에 자리하였는데, 이 때문에도 관아 안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관아 터. 관아(官衙)란 조선시대 읍치에 있던 관청건물을 통칭하며 연산현 관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셔 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 격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이 근무하던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있는 관노청 등이 있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연산현지』에 따르면, 연산현 관아에는 동헌...
-
연산리가 조선시대에 연산현의 소재지로서 연산의 중심마을이었다는 사실은 현재 연산리에 남아있는 동헌 터와 아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산4리에 위치한 연산공원의 서편자락에 위치한 연산아문(連山衙門)은 1973년 12월 24일에 시도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되었으며, 관아건축물로 1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연산아문과 비석군, 건물의 초석...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연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안이씨의 시조는 이무(李茂)로, 본래 당나라 출신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나당연합군 대총관 소정방(蘇定方)의 부장(副將)이 되어 신라에 들어와 백제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지고 연안을 식읍으로 받아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이무를 시조로 받들어 세계(世...
-
연산리는 삼국시대에는 황산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연산을 감싸고 있는 천호산의 산세가 계룡산과 대둔산과 연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이은 산이다’라는 뜻에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 중에도 이러한 연유에서 연산리라는 이름으로 붙여졌다고 기억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의 재실. 염수재는 유학자 김장생(1548~1631)을 모신 사당의 앞면에 있는 재실이다. 염수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염수재 정문에 걸린 김재경 정려의 연대가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염수재 뒤쪽으로 김장생 사당과 연결된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산김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오계로 만드는 탕. 오계(烏鷄)는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제정 이달충(1309~1385)의 『제정집(霽亭集)』에 오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오계란 본래 검지만 흰색 솜털을 가진 일본의 실크오골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국의 오계가 뼈, 깃털, 피부, 발톱까지 온통 검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구산(鰲龜山)이 있으므로 오구미(五口味) 또는 오산·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오리(上梧里)·하오리(下梧里)·송산리(松山里)·부황리(夫皇里)의 각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하도면(下道面) 노오리(魯五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오산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에서 발원하여 오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윗산명재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연산면 북부에서 남쪽으로 흘러 장전리에서 동쪽으로 유로를 바꾼 뒤 오산리에서 연산천에 합류한다. 주변이 200~300여m 산지와 낮은 구릉, 하안단구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곡저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고, 하천의 양안에는 인공제방이 축조되...
-
고려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총칭.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라고 한다. 일찍이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이 침입한 바 있지만 침입 규모나 피해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친 시기에는 거의 해마다 침입했고 피해도 막대하여 ‘왜인(倭人)들이 노...
-
연산백중놀이의 전수관은 연산 상설시장 옆쪽에 자리해 있다. 백중놀이 전수관은 국비와 도비, 시비의 지원을 받아 2006년 8월 31일에 제17회 연산백중놀이 행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연산백중놀이 전수관은 440여 평으로 2층 건물로 지어졌다. 전수관은 연산 백중놀이가 1991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으면서부터 전수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 후로 15년이...
-
연산재래시장에는 16개 점포가 전부이지만, 그 입구에는 옛 시장을 연상시키는 노점상들과 가게들이 연산재래시장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허가한 16개의 점포만이 연산재래시장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16개 점포주들을 비롯하여 연산 주민들은 하나같이 모두 입구의 상점들도 연산재래시장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연산재래시장의 입구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월은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 말기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의 유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설을 바탕으로 백제 말기나 통일신라기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의 역사를 증명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경내에 창건 당시 심은 것으로 보이는 괴목의 수령으로 미루어 상당히 오래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하며 상산티[上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윗산명재라고 불렸다. 윗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북쪽에 산명재, 남쪽에 아랫산명재가 있다. 윗산명재의 서북쪽 사면에는 계룡산 남부 능선에서 발원한 주천과 세천...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휴계(休溪).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아버지는 유신민(柳信民)이다.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종백부이며, 유문원(柳文遠)은 종질이다. 유무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연산에 칩거하였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잠시 찰방에 봉직한 후 곧 사직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찬(燦), 자는 정숙, 호는 후촌(後村).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형은 윤황(尹煌)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승문원저작이 되었다. 1613년 유생 이위경(李偉卿)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폐모소를 올렸을 때 한림 엄성(嚴惺)과 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겸 부부의 정려. 이공겸은 왕실의 종친으로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의 증손이다. 이공겸과 그의 아내 민씨는 양촌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공겸 내외는 부친을 등에 업고 공주를 향하여 피난하기 시작했다. 연산 백석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왜병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조의 후손인 덕원군의 후손이다.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광근은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좋은 음식이 생기면 자기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먼저 갖다 드렸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병이 더욱 심해졌다. 병이 위중하자 대변의 맛을 보며 병...
-
조선 말기 논산 출신의 의병. 이명선은 1856년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서 출생하였다. 1909년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의 무력 항쟁이 전국적으로 계속될 때 이명선은 54세의 나이에도 군자금 모금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1909년 8월 20일 밤 정학서와 함께 전라북도 만경군(萬頃郡) 동일도면 남당리(현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지역) 김순기의 가택에 군자금을 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민진의 묘비.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 당시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민진의 증직과 행적을 새겨놓은 묘비이다.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838년(헌종 4)에 세워졌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838년(헌종 4)에 이민진의 충절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정려를 하사받게 되었다. 이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선익의 정려. 이선익(李善益)의 자는 우현(友賢),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가평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겨울철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10여 년 동안 손수 탕약을 끓여 올렸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양손의 손가락을 잘라 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이선일의 처 전주이씨의 정려.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 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경의 비석. 이장경 묘갈은 가평이씨 후손들이 예산현감·안음현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던 이장경의 행적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칭송하기 위해 1537년(중종 32)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00m를 가면 연산중학교가 나온다. 연산중학교의 전면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데 여기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생의 비석. 이장생(李長生)은 1467년(세조 13)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0년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에 제수되었다가, 선전관으로 발탁되고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오고,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도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동생은 이장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장생의 묘소. 이장생은 가평인으로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1467년에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하여 1490년(성종 21) 갑과에 급제하였고 용양을 거쳐 선전관을 지냈으며,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고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
연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연산도토리묵이 최고일 것이다. 현재는 도토리묵 가게가 연산재래시장과 연산 일대를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도 단 한 곳밖에는 없지만 불과 1980년대만 해도 연산의 도토리묵거리는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연산리에 스무 집 정도에서 도토리묵 장사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하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도토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철근의 묘표. 이철근은 1449년 가평군 이형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경기수운관·포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통훈대부의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1491년 충주판관으로 북정에 참여하였으며 진산군수·봉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이장생과 이장경이다. 이철근 묘표는 1508년(중종 3) 후손들에게 이철근의 행적을 칭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감을 지낸 이초로의 거사비. 이초로는 전라남도 함평 사람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2월 연산현감으로 취임하여 동년 8월에 사직하였다. 이초로가 연산현감을 사직한 뒤 연산 주민들이 그가 재임 당시 행했던 치적을 기리고자 거사비를 세웠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학순은 1843년 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 지역에서 출생하여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양촌(韓陽村)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활달하였으며, 실천에 힘썼던 선비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을 병합하려고 1910년 8월 22일에 이완용으로 하여금 데라우치와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민족적 저항을 염려하여 공포하지 않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형손의 비석. 신도비(神道碑)는 조선시대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에 있던 사람의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묘갈(墓碣)은 신도비와 비슷하지만, 3품 이하 관리의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둥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제와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이형손은 1418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재실에서 행하는 익안대군 부인의 불천위제사. 익안대군 배위 제사는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중이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 부인에게 음력 11월 18일에 올리는 불천위제사이다. 불천지위(不遷之位)는 예전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를 말한다. 사당과 재실, 영당을 모두 갖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중에서 행하는 익안대군의 불천위제사. 익안대군(益安大君, ?~1404)은 조선 태조 셋째 아들로 이름은 방의(芳毅), 시호는 안양(安襄)이며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소생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益安君)에 봉해졌다. 1398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아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시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익안대군 영당은 원래 경기도 여주에 있었는데, 1958년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가가 논산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영정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태조 1)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익안대군 영당에서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지내는 익안대군 추모제. 익안대군 이방의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다. 이성계의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 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켰고, 태종이 즉위하자 대군이 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있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초상화. 「익안대군 영정」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를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인 원훈각(元勳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방의는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가 되었고,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
-
전국 대추의 30% 이상이 모이는 집산지인 연산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황산벌 연산 대추축제’가 열린다. 2008년 10월 31일(금)부터 11월1일(토)까지 연산 체육공원(연산천 둔치)에서 연산대추축제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축제의 모토는 ‘온누리엔 오곡 풍년!!, 황산벌엔 대추 풍년!!’이다. 축제기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최고의 대추를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숲이 울창하므로 숲말 또는 임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산리(九山里)·신림리(新林里)·남리(南里)·학정리(鶴汀里)·상림리(上林里)·중림리(中林里)·하림리(下林里)와 내적면(內赤面) 상범리(上凡里)를 병합하고 임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 가옥. 임수택 가옥은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부적면, 연산면의 경계가 만나는 연산면 오산리 마을회관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다.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노성의 파평윤씨 집안에서 1703년에 윤원거의 손자인 윤임교의 처에 의해 건립된 가옥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은 지붕 곳곳에 있는 막새기와에 새겨진 ‘숭정기원...
-
2008년 8월 29일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마을 1년 행사 중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가장 큰 행사인 연산백중놀이를 시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중놀이 보존회원들과 부녀회원들 마을 주민들 등 모두 축제준비가 한창이다. 2008년은 백중놀이가 시작된 지 제527주년이 되는 해이며, 재현 제19회째가 된다. 충청남도부지사, 논산시장을 비...
-
논산 연산재래시장이 새롭게 탈바꿈하기 위해서 상가번영회에서는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연산장은 충남에서 손에 꼽혔던 장이었지만 주변에 큰 대형마트가 생겨나면서 재래시장이 쇠퇴해 가고 있어 주민들의 걱정이 늘고 있다.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주민 자치위원회에서는 “정겹고 푸짐하게, 연산 장날 신명 마당”을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연산 장날에 개최하고 있다....
-
미신이라는 이유로 현대인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산신제. 6·25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산신제, 장승제, 유왕제 등 전통 민간신앙은 살아있었지만,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그 맥은 거의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산신제를 아직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마을이 연산리이다. 산제당에 걸려있는 현판의 기록에 의하면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문신.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착하여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온순한 성품과 웃어른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송이 대단하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숭릉태봉(崇陵泰封) 벼슬에 올랐으나 홀로 계신 모친을 모시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연산으로 내려왔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모친은 노쇠하여 병석에 눕게 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조병호의 불망비. 조병호(趙秉鎬, 1847~1910)는 본관이 임천으로, 1866년(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법규교정소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이 되었다. 1881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1885년 공조판서와 예조판서를 거쳐 1892년 충청도관찰사와 1894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93년(고종 30) 조병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수의의 선정비. 조수의(趙守誼, 1699~?)는 본관이 한양으로, 자는 정숙(正叔)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58년 5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1762년 정월에 이임할 때까지 무려 5년 동안 연산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조수의가 천안군수로 떠날 때 주민들이 그의 이임을 말리며 아쉬워했으나 어쩔 수 없...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진익의 불망비. 조진익(趙鎭翼, 1762~?)은 본관이 양주로, 자는 사현(士顯)이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1822년 9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다가 1825년 4월 24일 평양서윤으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조진익이 연산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베푼 선정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연...
-
연산리를 관통하는 마을 중간의 도로를 걸어 연산리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추거리이다. 연산이 예전에는 대추의 생산지로 유명했고, 지금도 특화구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연산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구사거리’를 중심으로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대추거리에는 대구상회를 시작으로 연산시장 쪽으로 들어가면서 충남대추상회, 연산상회, 호남대추상...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오계 사육 농장. 오계(烏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가금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오골계는 살, 가죽, 뼈가 어두운 자색(紫色)이며 털은 보통 흰색, 검은색, 붉은 갈색을 띤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체질이 약하고 산란 수가 적다. 이에 비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우리나라 특산종인 오계는 깃털, 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준길 손윗누이의 묘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선산에 있는 송처자의 묘표는 1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처녀의 것이기에 주목이 되는데, 묘표는 후에 송준길이 세운 것이다. 이 묘표의 비신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과 농대석을 갖춘 중요한 자료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호산(天護山)의 이름을 따서 천호리라 하였다. 천호리는 본래 연산군 식한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개태리, 호동, 화악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호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남서부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 지역이 200~300m의 구릉성...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이 용마루 같이 길게 6㎞가량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갔으므로 누르기재, 또는 황산(黃山)이라고 하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일리천에서 크게 이기고, 계속 추격하여 이 곳에 이르러 항복을 받아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여 고려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도와주신 산이라 하여, 천호산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에 토기를 굽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인데, 이들이 청동을 발견한 뒤 청동을 캐는 데 전념하게 되면서 마을 이름도 청동이 나오는 마을이라 하여 청동(靑銅) 또는 청동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내적면(內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온산리(慍山里)·하락리(河洛里)·양촌리(陽村里)·수정리(水井里)·한전리(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후기 영상과 귀상의 충노비. 연산현 사람 이민진(李敏進)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죽기를 각오하고 검은색 버선과 행전을 차고 남한산성으로 의병을 이끌고 갔다. 남한산성 근처 광주 험천에 이르러 왜적의 저지를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이민진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동행했던 노비 영상(永上)과 귀상(貴上)은 많은 전사자들 중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고 꿈을 키우는 사람으로 전인적인 개성인, 기초와 기본 위에 창의적인 사람으로 창의적인 능력인, 소질을 계발하고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으로 진로 개척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으로 문화 창조인, 공동체의 발전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공동체 공헌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7년 12월 10일 청동국민학교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PVC를 소재로 한 창호 및 도어 제조업체. 청암은 PVC 창호 및 도어 공장 설비를 완비하고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하여 21세기 중부권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미래 지향적인 첨단 건축 분야 진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6년 6월 회사를 설립하였다. 1998년 1월 PVC 도어 공장 및 설비를 완비하였다. 2000년 2월 대전대...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전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책임을 다하는 능동인, 정보화 사회에 부응하는 우수한 산업인, 근검절약하고 합리적으로 생활하는 실천인, 개성과 적성을 중시하는 창의인, 심신이 건전하고 정서가 안정된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 개척, 봉사’이다. 1977년 12월 30일 12학급의 연산상업고등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78년 3월...
-
대한민국에 있는 어느 마을이 그러하지 않았겠냐마는 연산마을에도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특히 충남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대둔산과 가까이에 위치했던 여건 때문에 대둔산에 숨어있던 무장공비들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희생을 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유엔군과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를 차단하게 되...
-
연산리는 다른 어느 마을에 비해 많은 행사를 치루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10월 말에 있는 대추축제는 모든 주민이 손꼽아 기다리는 마을 전체의 행사이다. 대추축제는 이틀간 진행되면서 첫째 날 연산면의 40개리의 주민들이 리별 체육대회를 함께 개최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겹경사인 셈이다. 2008년 축제가 열리는 10월 한 달 동안은 연산리 주민은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
연산도토리묵이 그토록 유명하지만, 2008년 현재 연산에서 직접 손수 도토리묵을 제조하여 파는 곳은 이제 단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시장 한편에 김성금 씨의 가게로 2006년에 ‘기능성 도토리묵’을 특허출원을 하여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도토리묵을 제조할 때에 한약재 추출물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특허를 받았다는 기능성 도토리묵은 이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갈이 많고 물이 적은 지역이라 샘물이 말라 식수 보급의 곤란을 겪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표정(表井)이라고 하였다. 충청남도 연산군 백석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표리, 중표리, 하표리, 신표리, 신범리, 당곡리의 일부와 외성면의 고양교, 청림리 일부를 병합하여 표정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서 발굴·조사된 백제시대의 토기. 논산 표정리 고분군 출토 병형토기는 목이 짧고 주둥이가 밖으로 벌어진 병 모양 토기로 굳기가 단단하며 회흑색을 띠고 있다. 바닥은 편평하고 몸체는 위로 갈수록 넓어져 중상부에서 지름이 가장 넓어지며 위쪽으로 가면서 급격하게 좁아져 목 부분이 수직이 되고 주둥이는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이다. 전체 높이는 10...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연산에서 상월로 통하는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1㎞ 정도 가면 사갑들이라는 들판이 나온다. 사갑들 북단에 표정리 하표정마을이 자리한다. 하표정마을은 계룡산지의 남쪽 끝 서사면에 해당된다. 표정리 고인돌군은 하표정마을에 모두 3기가 위치한다. 1기는 나지막한 구릉의 서쪽 말단부에 있는 민묘 옆에 있으며, 2기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기둥. 표정리 선돌은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 어귀에 있다. 선돌의 남쪽 전방에는 연산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에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선돌은 방형(方形)의 화강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가 절단되어 결실된 형태이지만, 비교적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현재 지표상에서 확인되는 규모는 높이 130㎝, 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있었던 4년제 대학 학력 인정교.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올바른 가치관과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철저한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창조신앙을 회복하여 창조의 법칙에 철저히 순종하는 학생, 피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의식을 가진 학생을 길러내며, 각 학생의 고유한 소질과 재능을 잘 파악해 그들에게 감추어진 보물들을 찾아내어 갈고 닦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관광농원. 1994년 제정된 「농어촌정비법」에 따르면 관광농원은 농어민이 농촌 지역의 풍부한 자연자원과 농림·수산 생산 기반을 이용하여 농림 수산물 판매, 영농 체험, 운동, 휴양, 숙박 시설, 음식 또는 용역을 제공하거나 기타 부수되는 시설을 갖추어 이를 이용하게 하는 사업이다.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촉진하고 농촌 소득 증대와 지역 개발 촉진...
-
제주도에서도 순대를 맛보기 위해 들른다는 그 유명한 ‘연산할머니순대’집을 찾았다. 가게 입구에 붙어있던 텔레비전 방영화면사진이 그 명성을 상징하고 가게 안은 신문 기사 사진들이 빼곡하다. 가게의 카운터에 앉아 계신 강윤찬 씨(51)가 이 가게의 사장님이다. 그리고 주방에서 바쁘게 순대를 썰고 계신 손복례 할머니(73)가 강윤찬 씨의 어머니이다. 연산할머니 순대의 창조자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산. 함지봉은 백제 황산성이 자리 잡고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황산성은 일명 황성이라고도 불리며, 백제의 웅진시대부터 사비시대에 걸쳐 축조된 성으로 추측되며, 북쪽은 험난한 산세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이 어려운 지세를 이용하여 자연석을 축성하였고 북쪽을 제외하고는 활석을 사용하여 축성하였는데 성 높이는 서부가 2m, 동부가 1.8m이고, 성...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중기 현감 이씨의 묘소. 묘역은 쌍분이며 묘비, 상석, 문인석, 묘갈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2기의 묘비에는 각각 ‘현감가평이공지묘(縣監加平李公之墓)’, ‘선인조씨지묘(先人趙氏之墓)’라고 음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255㎝로 비신의 높이 150㎝, 너비 70㎝, 두께 22㎝이다. 묘갈의 이수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명후의 선정비. 홍명후(洪明厚, 1787~?)는 본관이 남양으로, 자는 일성(一誠)이다. 1805년(순조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829년 7월 17일부터 1833년 9월 이임하기까지 5년간 연산현감을 역임하였다. 홍명후가 연산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주민들의 고충을 덜어 주고 어려운 일을 신원시켜 주어 선정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뒷산이 꽃으로 두른 언덕이라 하여 화악이라 불렀으며, 뒷산 이름도 화악산이라 불린다. 본래 연산군 식한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화악산 밑에 있어 화악골 또는 화악이라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락리, 청동, 이곡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악리라 하고 연산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연산면에 속...
-
660년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벌판. 황산벌은 660년 백제와 신라가 대규모 전투를 벌였던 당시 백제의 행정구역이었던 황등야산군의 벌판으로,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벌판을 말한다. 936년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신검(神劒)과 일리천(一利川)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도망가는 적군을 추격하여 끝내 이곳에서 후...
-
논산시 연산면 일대의 황산벌에서 있었던 660년 백제군과 신라군 간의 전투. 황산벌전투는 백제 의자왕이 즉위 이후 고구려와 연합하면서 신라를 공격해 642년(의자왕 2)부터 대야성(大耶城)을 비롯하여 남부 지역 40여 성을 함락시키자 이에 위기를 느낀 신라가 김춘추를 당에 보내 군사동맹을 체결함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면서 벌어진 양국의 운명이 걸린 일전이었다. 7세기 중반 신라는...
-
황산벌전투는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5만 군이 충청남도 논산의 황산벌에서 660년 7월 9일부터 7월 10까지 2일간에 걸쳐 벌인 전투를 말한다. 황산벌 전투는 비록 패배한 전투였지만, 다른 어떤 전투보다도 한국전쟁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니며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 백제 말기의 정치 상황은 대부분의 고위 관료들이 자신의 안위와 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황산벌 일원에서 음력 7월 초·중순에 농사의 신명을 돋우는 두레 풍물놀이. 황산벌은 넓은 들판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들녘이 넓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되었다. 황산벌에서 음력 7월 초부터 중순까지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힘든 것을 잊기 위해 일음악으로 쓰이던 풍물놀이가 바로 황산벌풍장놀이다. 일터에는 늘 풍물이 함께 한다. 일과 어우러진 풍물을 이곳에서는...
-
충청남도 논산시 황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황산성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북산성(北山城)이라 하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성황산석성(城隍山石城)이라 하였다. 아울러 성벽의 둘레는 1,740척, 혹은 493보였으며, 높이는 12척이고, 성내에는 우물 1개소와 군창(軍倉)이 있었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황산성에 대해 성내에서 출토...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개태사는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인 936년에 후백제의 옛 수도 부근이자 바로 후백제를 항복시킨 역사적인 장소에 창건한 후삼국 통일의 기념비적 사찰이다. 고려로서는 일종의 전승 기념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태사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개태사 창건 배경과 개태사 삼존석불입상의 양식과 특징으로 미루어...
-
매월 5, 10일은 5일 단위로 연산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목을 편히 지나가지도 못했던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이 초라하지만 아직도 수십 년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연산시장의 5일장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연산시장에서 상회를 하고 있는 문복규 씨는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장 서는 것이 1/10 정도도 안 돼.”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장이 서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