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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212
한자 大關嶺山神
영어의미역 Mountain God of Daegwallye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
구분 문헌신화
주요 등장인물 김유신
관련지명 대관령|선지사

[정의]

대관령 산신이 된 김유신(金庾信) 장군에 대한 설화.

[개설]

강릉단오제 때 제사하는 대관령 산신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내용은 허균(許筠)이 쓴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에 들어 있다.

[채록/수집상황]

김유신대관령 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적 근거는 강릉 출신 허균이 1603년(선조 36) 직접 대관령산신제를 보고 행사를 주관한 사람에게 물어서 알아낸 내용이다.

[내용]

허균「대령산신찬병서」에서 언급된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묘년(1603) 여름 내가 명주[강릉]에 있었는데, 그 당시 명주 사람들이 5월 길일을 택해 대관령 산신을 맞이하였다. 나는 수리(首吏)에게 물었다. 이에 수리가 대답하기를, ‘이 신은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입니다.’라고 했다. 김유신이 어려서 명주에 유학하였는데 검술을 산신이 가르쳤고, 그가 소지한 칼은 명주 남쪽에 있는 선지사(禪智寺)에서 만들었는데 90일 만에 그 칼이 완성되어 빛은 달빛을 능가하였다고 한다. 김유신은 그 칼을 차고 고구려를 멸하고 백제를 평정했으며, 죽은 뒤에 대관령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신이 지금까지 영험해서 고을 사람들이 신봉하여 해마다 5월 길일에 번개와 향화를 갖추어 대관령으로 가서 그 신을 맞이하여 부사에 모신 다음 5일(단오날)에 이르면 온갖 잡희를 베풀어 신을 즐겁게 해준다고 한다. 신이 즐거우면 길상이 깃들어 풍년이 든다 하고 신이 노하면 반드시 풍수의 천재지변을 준다고 하였다. 내가 이상히 여겨 그 광경을 보았는데 명주 사람들이 모두 모여 노래하며 서로 경하하고 춤을 추었다.”

[모티브 분석]

김유신대관령 산신이 된 것은 행사를 주관한 책임자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모티브를 보면 강릉과 김유신은 일정한 인연을 보인다. 김유신은 어려서 강릉에 유학 왔고, 삼국을 통일한 칼을 선지사에서 만들었다는 중요한 단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후에 대관령을 지키는 산신이 되었으며 사람들이 5월 단오날에 잡희를 베풀어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이 즐거워야 풍년이 든다고 하는 영험을 보여주기에 축제의 중심신격이 된 것이다. 역사의 실존인물이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강릉의 수호신이 된 것은 복합적인 분석을 요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대략 400여 년 전에는 강릉단오제의 주 신격은 김유신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강릉단오제가 산신제의 성격에서 성황제로 옮겨가는 시기를 정확히 밝힐 수 없고, 또한 그렇게 변한 이유에 대해서도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다만 김유신 장군은 강릉 출신이 아닌데 반하여, 범일국사(梵日國師)는 강릉의 굴산사(掘山寺)를 세운 고승으로 일찍이 지방에서 존숭되었다. 또한 강릉 지역이 일찍이 영향을 받은 바 있는 신라 때 김유신 장군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축제를 통해 지역주민의 구심체를 형성하고 이를 토착 세력화하려는 의지도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국사라는 칭호는 국사봉, 구수봉, 국수봉이라는 지명으로 전국에 퍼져 있으며, 동시에 그 뜻이 신이 좌정한 봉우리의 뜻이 있음을 감안할 때 대관령을 신성한 봉으로 인정하고 여기서 산신제를 지낸 것이 신라 때 승려인 범일국사와 연계된 것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중심신격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단오제의 신격이 산신에서 성황신으로 변화된 것은 강릉단오제의 시원이 신라 이래 고려 때에 이르기까지 대관령과 관련된 산악형 산신신앙에서 출발하였다가, 조선 중기 이후 차츰 마을신앙 형태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감에 따라 신격의 변화가 뒤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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