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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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主敎 |
영어의미역 | Catholicism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규근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개설]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충청북도 천주교의 메카였다. 충청북도 전역에 천주교가 확산되는 교두보가 되었으며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다.
[변천]
천주교의 한국 전래는 청나라 당시 북경에 온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인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이벽, 정약전 등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전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남인 계통의 학자들이 실학의 입장에서 ‘서학 또는 천주학’으로 지칭하면서 서양문물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것이 학문적인 관심을 넘어 신앙차원으로까지 확대된 것이었다.
전래 이후 100여 년에 걸쳐 조선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크고 작은 박해가 10여 차례나 있었다. 특히 신해박해(1791년) 및 을묘박해(1795년)에 이은 신유박해(1801년)로 인하여 많은 교인들이 순교하였으며 여기에는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인 이국승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 서울과 경기도에 밀집되어 있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강원도·충청도·경상도 산간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충청북도 진천 지역과 충청북도 제천의 산간 지대에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도 천주교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86년 조선과 프랑스 간에 조약이 체결되면서 약 1세기에 걸쳐 행해진 박해가 사라지게 되었고 천주교는 다시 조선 전역으로 빨리 전파되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도 단위의 지역 본당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충청북도 음성 지역의 천주교는 1896년 ‘부엉골’에서 사목지를 옮겨온 ‘장호원본당(현 감곡성당)’이 최초로 관할하게 되었다. 장호원본당은 1954년 음성성당이 신설되기 전까지 교리 전파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따라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천주교가 전파되었던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충청북도 각지로 천주교를 전파시키는 교두보가 되었다.
[주요사업]
1. 교육사업
충청북도 음성 지역의 천주교는 교회가 창설되던 초기부터 교육 사업을 통한 계몽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천주교 청주교구의 메리놀 소속 신부들이 주축이 되어 남학교인 매괴학당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12년에는 여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들 학교는 이듬해 6년제 보통학교로 과정이 변경되었다. 1953년 3월에 매괴학교는 매괴상업학교로 변경되었다. 1966년에 여자 중학교를 병설한 뒤 학칙을 변경하여 매괴여자중·상업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한편 음성성당에서는 지역 선교의 일환으로 1981년 3월 유치원을 설립하여 4년간 2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나 1985년 2월에 폐원되었다. 그리고 제6대 타이난(John Tynan) 신부 재임 시에는 날개성당을 독서실로 개조하여 지역의 신자와 비신자 학생들에게 개방하였다.
그 외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학교법인 꽃동네 현도학원이 1997년 7월 16일 인가되어 1999년 3월부터 사회복지학부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또한 2001년 3월 15일 꽃동네 천사의 집과 중증 장애 아동을 위한 꽃동네학교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1994년 3월 7일 꽃동네 봉사자와 수도자들에게 간호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간호조무사 학원도 개설하였다.
2. 사회·복지사업
천주교의 사회복지 활동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주체와 사업 내용에 있어 조금씩 변화를 보여 왔다. 선교와 복지를 통합된 사목으로 여기고 사회 복지 활동을 지속적으로 조직화, 전문화시키면서 한국 사회복지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감곡매괴성당에서는 6·25전쟁 이후 영유아 및 고아 보육과 노인 보호는 물론 수용된 고아와 노인의 치료를 위한 시약소를 세우는 등 적극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또한 1976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용담산에 사랑의 집인 ‘꽃동네’를 열어 걸인 18명을 수용하였다. ‘꽃동네’는 당시 무극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오웅진 신부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교 다리 밑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냥을 해 다른 걸인들을 돕는 최귀동 할아버지를 보고 감명 받아 열게 된 복지시설이다.
이후 ‘꽃동네’는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꽃동네요양원, 정신요양원, 결핵요양원, 노인요양원, 알콜중독자요양원, 인곡자애병원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하였다. 그리고 의료기관, 꽃동네학교,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간호조무학원, 사랑의 연수원 등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