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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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陰城人蔘 |
영어의미역 | Eumseong Ginse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특산물/특산물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식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재배되는 대표적 특산 작물.
[개설]
음성 지역의 인삼 재배는 1959년을 전후해 음성읍 신천리 지역에서 시범포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1961년 지역 공동 사업으로 약 4,000㎡을 재배하여 성공한 것이 동기가 되어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파급되었다.
기록을 보면 1966년 음성 지역의 인삼 재배 농가는 총 40가구로 9만 2,466㎡을 재배했으며, 1975년에는 584가구에서 143만 7,580㎡를 재배했고, 1994년에는 총 재배 면적이 535만 5,900㎡으로 확대되면서 개인별 재배 면적도 크게 늘어났다.
[연원 및 변천]
고려인삼의 역사는 길지만 1,500여 년 전에야 문헌에 등장하며, 그나마 중국 문헌에 실려 있다. 양(梁)나라 때 도홍경이 지은 『신농본초경집주』와 『명의별록』을 보면 백제, 고려, 상당(上黨) 인삼에 관한 기록이 있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이며, 고려인삼보다도 중국의 상당삼(上黨參)이 더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상당삼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만삼(蔓參)으로 인삼이 아니다.
1123년(인종 1)에 중국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가서 저술한 『고려도경』 가운데도 고려인삼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당시 이미 홍삼(紅蔘)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문헌으로는 『삼국사기』와 『향약구급방』에 있는 기록이 인삼에 관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향약구급방』의 「방중향약목」에는 인삼이 170여 종의 향약 중 하나로 올라 있다. 우리나라 인삼의 옛 이름은 ‘심’이지만, 어원은 알 수 없다. 『동의보감』이나 『제중신편』, 『방약합편』에 인삼의 향명(鄕名)이 ‘심’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근세까지도 ‘심’을 사용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심’이란 명칭은 현재 산삼 채취인의 은어인 심마니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함경남도 지방의 산삼 채취인들은 인삼을 ‘방추’ 또는 ‘방초’라고 하는 데 어원은 방초(芳草)일 것으로 추측된다.
[제조방법 및 특징]
『정조실록』에 의하면 박유철(朴有哲)이 햇빛을 가리고 재배하는 ‘일부재배(日覆栽培)’를 실시하였다고 전한다. 백삼은 수삼을 햇볕이나 열풍 등으로 익히지 않고 말린 것을 말하며, 홍삼은 수삼을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로 증기 및 기타 방법으로 쪄서 말린 것을 말한다. 태극삼은 수삼을 끓는 물에 찌거나 데쳐서 말린 것을 일컫는다.
[현황]
우리나라 인삼 재배지는 주로 경기도와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각 도별 산지는 경기도의 경우 강화, 김포, 포천, 이천, 연천, 파주, 고양, 여주, 부천, 용인, 광주, 화성 등지가 주요 재배지이다. 충청남도의 경우에는 금산, 부여, 논산, 청양, 홍성, 대덕, 공주, 서산 등지가, 충청북도의 경우에는 괴산, 청원, 음성, 진천, 보은, 중원, 제천, 단양 등지가, 전라북도는 진안, 완주, 무주 등지가 주요 재배지이다.
우리나라는 자연적 천혜 조건에 따라 어디에서나 인삼 재배가 가능하나 정부에서는 특히 홍삼 원료포에 대해 특별 경작 구역을 지정하여, 그 구역 내에서만 계획 생산을 해온 적도 있다. 1998년 6월 말 통계에 의하면 인삼 경작 실적이 홍삼포는 2,902㏊, 백삼포는 7,447㏊로 모두 1만 349㏊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