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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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공식명칭 | Folklore|Minsok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개설]
충청남도 부여군의 서북쪽은 차령산맥의 영향으로 산지를 이루며, 남동쪽은 차차 높이가 낮아져 금강 유역에서는 평야가 발달되었다. 특히 금강이 부여군의 동쪽에서 굽이쳐 남쪽으로 흐르면서 범람원이 넓게 발달하여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 덕에 부여 지역에서는 금강을 이용한 교역과 장시가 발달하였고, 금강 일대의 평야를 이용한 농사도 활발하였다. 따라서 부여 지역 사람들의 민속 문화는 상업과 농업의 흔적이 혼재되어 다양하게 발달하게 되었다.
부여 지역 사람들의 민속은 크게 민간신앙과 평생의례, 세시풍속, 민속놀이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민간신앙]
부여 지역의 민간신앙은 타 지역의 민간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주민들이 믿어 온 신앙은 신앙의 범주에 따라 가정신앙과 마을신앙, 무속신앙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부여 지역의 주민들은 집안의 화평을 위하여 집안의 수호신인 가신(家神)을 집 안 곳곳에 봉안하고, 가정에 특별한 일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고자 주술적인 의례를 행하였다. 가정에서 행하는 주술적인 의례로 동토잡이, 잔밥먹이기, 해물리기 등이 전승되고 있는데, 충청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내지리단잡기는 의약으로 치유되지 않는 피부병인 단(丹)을 주민들이 합심하여서 주술적으로 잡고자 하였던 의례이다. 마을의 한 가정에 환자가 발생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함께 병을 치유하고자 하였던 것으로서, 부여 지역 주민들의 질병관과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 자산이다.
가정뿐만 아니라, 부여 지역의 각 마을에서는 현재까지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산신제나 거리제, 동화제 등 의례 행위를 행하여 왔다. 예를 들어, 서북쪽의 차령산맥 주변에 사는 은산면 주민들은 정월대보름마다 산지 마을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높게 쌓아서 ‘마을 불[동화(洞火)]’을 밝힌다. 주민들은 동화를 태워서 마을을 정화할 뿐 아니라 동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동네 주민들의 단합을 보여 준다. 마을신앙이 확대되면 고을[지역] 제사가 되는데, 은산리의 경우 장시의 발달로 인하여 마을 제사가 확대·개편되어 은산별신제가 열리게 되었다.
한편, 가정신앙과 마을신앙이 주민 개인 혹은 주민 단체가 해결하는 것이라면, 주민들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는 전문 사제에게 의뢰하였다. 이를 무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여 지역에서는 주로 법사, 보살들이 독경(讀經)이나 굿을 통하여 귀신을 위무하거나 내쫓으며 문제를 해결하였다.
[평생의례]
평생의례는 평생에 걸쳐 지내는 의례를 말한다. 부여 지역의 평생의례로는 출산의례와 혼례, 상장례와 제례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부여 지역의 주민들은 삼신이 아이들을 돌보아 준다고 믿었다. 아이를 출산하는 방에 삼신상을 놓고, 난산이거나 아이가 아플 경우에 삼신에게 빌어 아이를 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산부인과에서 출산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삼신에 대한 의례가 대부분 사라졌고, 혼인 후 자녀가 생기지 않는 등의 특별한 상황에서만 삼신이나 칠성에게 빌기도 한다.
부여 지역의 혼례는 근대화를 거치며 가장 많이 달라졌다. 194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가정에서 혼례를 올렸지만, 1970년대부터는 현대식 결혼식장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이때에는 아직 혼례 이후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동네잔치를 여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예식장 문화가 정착되면서 동네잔치를 별도로 열지 않게 되었다. 1900년대 후반부터는 중매혼을 하거나 부부가 죽을 때까지 사주를 간직하는 풍습 등도 부여 지역에서 사라졌다.
부여 지역의 주민들은 1990년대 이전까지 집에서 상장례를 치렀는데, 주로 주민들이 상여계를 조직하여 마을마다 상여를 보관하여 두었다가 사용하는 상부상조의 분위기가 있었다. 상장례 때 부여 지역 주민들은 죽은 이의 물건을 넣어서 혼백(魂帛)을 만들었는데, 주로 죽은 이가 평소에 입던 저고리의 동정을 넣었다. 타 지역은 이름만 적어 넣는데, 부여 지역은 구체적인 혼백의 주인을 표시하는 물건을 넣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장례식장이 보편화되며 대부분의 절차는 사라지고 조문만 유지되고 있다.
부여 지역 주민들은 기제사, 묘제, 차례 등을 지낸다. 과거에는 기제사를 모실 때 조상 이외에도 찾아오는 잡신을 위하여 밥 한 그릇을 떠서 올리거나, 차례를 지내기 전에 먼저 성주상을 올리는 의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의례가 모두 사라졌고, 절기마다 지내던 차례도 설과 추석에만 지내게 되었다. 다만 지금도 집안에 초상이 발생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마을에 초상이 났다면 초상이 난 집에 문상을 가지 않는 등 제사를 앞둔 사람은 부정을 타지 않도록 주의한다.
[세시풍속]
세시풍속은 1년 4계절의 풍속을 말한다. 부여 지역의 세시풍속을 계절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음력 1월에서 3월 사이인 봄에는 설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설에는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성묘를 다녀오거나, 무당이나 점쟁이를 통하여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서는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며 쥐불놀이, 오곡밥훔치기, 부럼깨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등의 풍속과 거리제·산신제·동화제 등의 마을 제사가 시행된다. 2월에는 콩점치기, 노래기쫓기, 머슴들이기 등의 풍속을 행하는데, 이 중에서 콩점치기는 농경을 주로 하는 부여 지역 주민들이 그해의 강수량을 예측하려고 하는 농점(農占) 풍속이다. 또한 삼월 삼짇날에는 집마다 화면, 수면 등의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음력 4월~6월인 여름에는 사월 초파일에 절에 가서 공양을 하고 등에 불을 밝힌다. 단오에는 마을마다 그네뛰기를 하고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다. 유두에는 농촌 마을 주민들이 부침개나 보리개떡을 쪄서 논의 물고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음력 7월~9월인 가을에는 칠석이나 백중 때 두레먹이를 하던 전통이 남아 있다. 또한 추석 때는 송편을 빚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는데, 부여 지역에서의 추석차례는 햇곡을 조상에게 바치는 천신제(薦新祭)의 성격이 짙다. 9월에는 배앓이 등의 병을 치료할 때 사용하려고 구절초를 베어다 말리는 풍습이 있다.
음력 10월~12월인 겨울은 추수를 마친 뒤라 비교적 넉넉한 시기를 보낸다. 이때 부여 지역의 주민들은 갈떡[가을떡]을 쪄서 가신에게 올리고 이웃에 돌리며, 문중을 중심으로 하여 5대조 이상의 조상 묘를 돌며 시제(時祭)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양력으로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인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또한 섣달그믐에는 묵은세배를 하며 가는 해와 오는 해를 환하게 이어 주려고 온 집 안에 불을 밝힌다.
[민속놀이]
부여 지역의 민속놀이로는 규암나루 관등놀이, 세도두레풍장, 부여 보부상놀이, 들돌놀이, 춘향이놀이, 달팽이놀이, 한발두발, 기름찍고빵, 인어공주, 태극기, 깡통차기, 갈퀴치기, 고누, 비석치기, 공기, 고리먹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부여 지역에서 특징적으로 행하여지는 놀이들은 규암나루 관등놀이, 세도두레풍장, 부여 보부상놀이 등이 있다. 이러한 놀이들에는 금강과 너른 평야를 이용한 교역과 농업에 활발하게 임하였던 부여 지역 사람들의 생활 풍습이 잘 드러난다.
먼저 규암나루 관등놀이는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규암나루에서 매년 사월 초파일 무렵에 장시와 나루의 부흥을 도모할 목적으로 행하던 놀이이다. 규암나루터와 규암장 일대에서 6일 동안 개최하였는데, 규암장 개시일[3일·8일]과 날짜를 조율함으로써 놀이 기간에는 두 번의 장이 열렸다. 따라서 행사 기간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시장의 거래는 더욱더 활기를 띨 수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말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중단된 뒤로는 더는 열리지 못하였다.
세도두레풍장은 넓은 평야가 발달한 부여군 세도면 일대에서 두레꾼들이 논을 매거나 흥겨운 놀이판을 벌일 때 치던 특유의 풍물굿이다. 총 여섯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레꾼들이 논에서 공동 작업을 할 때 연주하는 가락, 칠석이나 정초에 지신밟기를 할 때 치는 가락, 풍물을 시작하고 맺을 때 치는 가락으로 나눌 수 있다. 세도두레풍장은 조선 후기부터 전승되었는데,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대부분 중단되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세도면 동사리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두레가 전승되어 풍물굿도 함께 전승될 수 있었다.
부여 보부상놀이는 부여 지역에서 충청남도 저산팔읍상무사(苧山八邑商務社)에서 전승되던 보부상 공문제(公文祭)를 민속놀이로서 복원한 것이다. 부여 보부상놀이에서는 보부상들의 공문제 제사 의식이 끝나면 여흥을 즐기게 되는데, 이때 장터에서 장꾼을 부르는 각종 놀이와 옛 보부상단의 장문 의식을 함께 볼 수 있다. 또한 보부상들뿐만 아니라 장터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연희패, 각설이 등의 각종 타령과 놀이가 진행되었다. 특히 놀이의 마지막은 상무사에서 전하는 상업 유희요를 공연함으로써 보부상놀이가 지닌 부여의 지역적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부여 보부상놀이는 1979년 처음 선을 보였는데, 현재는 홍산면과 임천면의 보존회가 옛 전통을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