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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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文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가계]
연문진(燕文進)[?~?]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연씨(燕氏) 가문이다. 연씨는 웅진 천도 이후에 등장한 신진 세력이었으나, 478년(삼근왕 2) 연신이 해구의 반란에 연루되어 중앙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497년(동성왕 19) 연돌이 병관좌평에 임명되면서 유력한 귀족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연씨 세력의 재지 기반은 478년 연신이 해구와 함께 아산 지역에 있는 대두산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실로 보아, 아산 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다.
[활동 사항]
사비 도읍기인 무왕 대 백제는 신라와 공방전을 되풀이하는 한편, 북방의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하여 수나라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추진하였다. 607년(무왕 8) 3월에는 한솔(扞率)인 연문진을 수나라에 파견하여 조공하였으며, 이어서 좌평(佐平) 왕효린(王孝隣)을 파견하여 조공하고, 고구려를 정벌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611년(무왕 12) 수나라 양제가 친히 고구려 정벌에 나서려 하자 국지모를 파견하여 수나라 군사의 출동 기일을 알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양제가 크게 기뻐하여 상서기부랑(尙書起部郎) 석률(席律)을 백제에 보내어 고구려 침공에 대하여 같이 의논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