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지』 「성주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12
한자 邑誌星州牧
영어공식명칭 Eupji Seongjumok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78년연표보기 - 『읍지』「성주목」편찬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 서울 종로구 효자로 12[세종로 1-57]
성격 읍지
행자 20행 20자
규격 23.4×15.5㎝
권수제 성주목(星州牧)

[정의]

1878년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여 경상도 도지에 수록한 성주목 읍지.

[편찬/간행 경위]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읍지(邑誌)』 경상도편(제37~50책)은 경상도의 71개 고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878년(고종 15)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의 완질을 갖추기 위하여,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면서 환적 등에 지방관을 추기한 것이다. 원래는 열고관에 있던 『읍지』 14책으로, 첫 책인 제37책 표지에만 ‘읍지’, ‘공14’를 표시하였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9년 6월 14일 통감에서 물러나면서, 이문원에 있던 『각도읍지(各道邑誌)』 경상도편 대신 가지고 갔던 읍지이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흔히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라고 부르는 『각도읍지』 20책[보유편 1책 포함]은 유형이 획일적인데 비해, 열고관에 있던 경상도의 『읍지』 14책은 상대적으로 유형이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하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에서 물러나면서 가지고 갔던 『읍지』는 2011년에 환수하였다.

[형태/서지]

『읍지』 제45책의 일부로 상주목과 함께 제본하였다. 49장 98면의 필사본(筆寫本)이다. 크기는 23.4×15.5㎝로,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의 선장(線裝)을 하였다. 1면 2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는 ‘성주목(星州牧)’으로 되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읍지』 「성주목(星州牧)」 의 첫 장에는 읍사십면총도(邑四十面摠圖)를 수록하였으며, 내제 성주목 다음에는 협주(夾註)로 예전에는 진관(鎭管)이 상주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독용진(禿用鎭)으로 고령현을 소속시킨 사실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록인 강역(疆域)을 기재하였다. 읍치부터 동쪽으로의 거리는 의흥현(義興縣) 대신 신설한 칠곡(漆谷) 경계까지 24리[9.43㎞]임을 밝히면서 서울까지의 거리 627리[246.24㎞]를 630리[247.42㎞]로 수정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처럼 감영, 좌병영, 우병영, 통영까지의 거리도 수록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 도로, 교량, 제언(堤堰), 장시, 역원, 목장, 형승, 고적,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관적(官籍), 과거(科擧), 인물, 제영(題詠), 비판(碑板) 순이다.

『읍지』의 과거 항목에는 송홍기(宋弘基)까지만 수록하였는데, 송홍기 뒤에 ‘상지정묘(上之丁卯)’에 문과(文科)에 급제한 사실을 밝혔는데 ‘상’은 당시 임금인 영조이며 정묘는 1747년이다. 그런데, 1786년에 편찬한 『성주지(星州誌)』에는 송홍기 뒤에 이석구와 이해진을 추가하였다. 또한 진보 항목에는 광선(廣船) 14척, 농선(農船) 12척, 진선(津船) 2척을 기재하고 목장 항목에는 분양마(分養馬) 관련 내용을 기재하였으며, 장시 항목에는 어염(漁鹽)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1786년에 편찬한 『성주지』에 실렸던 내용이지만, 1832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성주목읍지」 등에서는 생략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 읍지의 저본(底本)이 1786년 이전 시기의 읍지였음을 보여 준다. 1768년 경상도를 비롯한 전국에 『여지도서』 유형을 대체하는 새로운 수록 규정에 의하여 읍지를 편찬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점을 감안하면, 이 읍지는 영조 말에 편찬한 읍지를 그대로 베끼면서 관적 선생안(先生案)에 1875년까지 부임한 인물들을 추가하거나 일부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호구 통계를 보면 신묘식으로 1만 1933호인데, 1771년(영조 43)이나 1831년(순조 31)의 통계이다. 군명 항목에서는 속현이었던 팔거현이 1640년에 칠곡도호부가 되고, 화원현이 1684년[실제는 1685년]에 대구에 편입된 사실만을 간단히 기재하였다. 관적 선생안에는 고려 태조 대의 이총언(李悤言)부터 1875년에 부임한 이직현(李稷鉉)까지 성주에 파견된 지방관의 인명을 나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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