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읍지』 「성주목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08
한자 慶尙道邑誌星州牧邑誌
영어공식명칭 Gyeongsangdoeupji Seongjumok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경상도읍지』「성주목읍지」 편찬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행자 20행 20자
규격 35.0×22.6㎝
어미 오사란인찰판(烏絲蘭印札板)
권수제 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

[정의]

1832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성주목의 관찬 읍지.

[편찬/간행 경위]

1832년 규장각은 『각도읍지(各道邑誌)』에 빠진 고을 읍지를 채워 넣어 완질을 갖추기 위해 읍지 수집 공문을 내려 『각도읍지』를 완성하였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는 원래 『각도읍지』 경상도편 20책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각도읍지』 80책 중 경상도편을 1878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 14책으로 대체하면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남게 되었다. 당시 경상감영에서는 1768년에 내려온 적이 있었던 읍지 수록 규정을 71개 모든 고을에 적용하였다. 기준에 미달하는 고을의 읍지는 여러 차례 수정 지시가 내려졌고, 최종적으로 경상감영에서는 수정·보완·정서하여 각 고을별로 대개 40개 항목으로 구성된 『경상도읍지』를 완성하였다. 당시 성주목사는 1831년 여름에 부임한 송기정(宋基鼎)이었다.

[형태/서지]

1832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 성주목 부분은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 순으로 제본(製本)되어 있으며, 전 20책 중 제4책에 해당한다. 「성주목읍지」는 필사본으로 분량은 61장(張)이며, 어미는 오사란인찰판(烏絲蘭印札板)이다. 크기는 35.0×22.6㎝이다. 인찰지(印札紙)에 1면 20행, 1행의 자수는 20자씩 정서하였으며, 첫 장에는 채색 지도를 실었다. 권수제는 ‘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로 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는 각각 1833년경과 1841년에 편찬한 『성주목읍지』와 『영남여지(嶺南輿誌)』「성주목읍지」를 소장하고 있는데, 대체로 『경상도읍지』「성주목읍지」 수록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존경각의 『영남여지』 제7책은 성주목·울산부·김해부 순으로 제본되어 있다.

[구성/내용]

수록 항목은 건치 연혁, 군명,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 군기(軍器), 관애(關阨)[관액], 진보(鎭堡), 봉수, 학교,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 도로, 교량,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 역원, 목장, 형승(形勝), 고적, 토산,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 순이다. 전부 항목에는 한전(旱田), 수전(水田), 대동(大同), 요역(徭役), 전세(田稅), 균세(均稅)를 수록하였다. 호구는 무자식(戊子式)인데, 1828년(순조 28)이나 1768년(영조 44)의 통계로 여겨지며 원호 1만 1944호, 인구 5만 2812명이다.

환적에는 923년 벽진군(碧珍郡) 장군으로 생질 규환(圭奐)을 보내 고려에 투항한 신라의 양문(良文)부터 1829년에 부임하여 1831년에 교체된 신상현(申常顯)까지 기재하였다. 고려의 이총언부터 기록한 『성주지(星州誌)』[1786]양문(良文)을 추가한 것이다. 비판에는 이보혁, 제말·제홍록, 정구의 비문 전체를 수록하였으며, 이원익 청덕비와 김창집 유허비에는 원래 비문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보혁은 1728년 영남에서 기병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토벌한 인물이다.

[의의와 평가]

『경상도읍지』 「성주목읍지」 는 역사, 지리, 조세, 군역 등 당대 성주목의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성주 지역의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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