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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344
한자 傳統-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6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명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12월 31일 - 성주 한개 마을 중요 민속 문화재 지정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많은 고택들로 이루어져 있는 전통 마을.

[개설]

성주 한개 마을은 뒤로 영취산(靈鷲山)[322m]이 있고 앞으로는 이천(伊川)백천(白川)이 합쳐져 이룬 비교적 넓은 농경지와 접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자리한 성산 이씨(星山李氏) 집성촌이다. 농경 사회를 살아온 양반가 집성촌답게 고유한 전통과 풍속이 잘 남아 있는 마을로 대표할 만하다. 성산 이씨가 600년 가까이 세거하면서 형성한 전통 마을의 모습과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감응사(感應寺) 사하촌(寺下村)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건축된 전통 가옥과 이를 둘러싼 토석(土石) 담장, 그리고 골목길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우러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전통 마을이다. 성주 한개 마을은 안동 하회 마을, 경주 양동 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통 마을로 일컬어질 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 마을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어 2007년 12월 31일 중요 민속 문화재[현 국가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한개’는 큰 하천[白川] 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개’는 개울을 의미한다. 곧 ‘큰 개울’을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온 이름이다. 이를 한역(漢譯)하여 대포(大浦)라고 쓰기도 한다. 법정동인 ‘대산리(大山里)’의 ‘대(大)’ 자도 ‘대포(大浦)’에서 딴 글자이다.

[형성 및 변천]

성주 한개 마을은 뒷산인 영취산에 신라 때 세워진 감응사가 있어 마을의 형성도 그 시기 전후로 추정해 볼 수 있으나 그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성산 이씨 종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료에는 조선 세종(世宗) 때에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이라고 한다. 성주 한개 마을은 광해군(光海君) 때 월봉(月峰) 이정현(李廷賢)[1587~1612]이 대과에 급제한 이후 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주 한개 마을은 전통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성주 지역 집성촌을 대표할 수 있는 마을로서, 전통 가옥 60여 채가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성주 한개 마을 안에는 경상북도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건축물이 아홉 곳에 이르며 대부분의 건축물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건립되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구성은 풍수지리에 따른 전통적인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상류층 주택과 서민 주택의 배치 및 평면 구성에서 지역적인 특성이 돋보인다. 동네 전체 방향은 약간 서남향이지만 개별 가옥은 대체로 남향이다. 마을은 현재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불리는데, 웃마·아랫마·동녁·서녁·남계[남개]이다. 과거에는 마을 들머리 도로변에 가옥이 몇 채 있어 도촌(渡村) 또는 가촌(街村)이라 불렀으나 현재는 가옥이 없다.

[자연환경]

성주 한개 마을은 앞쪽으로 큰 내[川]인 백천 사이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영취산의 줄기가 좌청룡·우백호로 뻗어 내리며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는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형국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길지(吉地)에 해당하고 배산임수의 전형에 속한다. 동네와 백천 사이는 과거에는 넓은 모래밭[하천 부지]이었으나 광복 전후 제방을 쌓아 지금은 농경지로 활용한다. 마을 뒤 구릉지에 1920년 경신(庚申) 대홍수 때 쓸려 내려온 돌들이 많은데 동네에서는 ‘돌마리[돌만리·돌마지기]’라고 부른다.

[주요 인물과 전통 건축물]

성주 한개 마을 출신 중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 광해군 때 대과에 급제하여 마을의 중흥에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월봉(月峰) 이정현이다. 이후로는 영조 때 사도 세자(思悼世子)[1735~1762)의 선전관(宣傳官)으로서 마지막까지 충성심을 보여 줘 북비공(北扉公)이라는 별호(別號)로 더 잘 알려진 돈재(遯齋) 이석문(李碩文)이 있고, 조선 후기 경주부윤과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지낸 정헌공(定憲公)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가 있다. 또한 이원조의 조카로 퇴계 학맥(退溪學脈)으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주장하여 19세기 주리론적(主理論的) 심설(心說)의 정상으로 불린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86]이 있고, 그 아들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1847~1916]가 있다.

성주 한개 마을에는 전통 마을답게 많은 오래된 목조 한옥이 많이 남아 있다. 성주 대산리 진사댁, 대산동 교리댁, 성주 응와 종택[북비 고택], 대산동 월곡댁, 대산동 한주 종택, 성주 첨경재, 성주 대산리 도동댁, 성주 대산리 하회댁, 성주 극와 고택 등의 지정 문화재와 월봉정, 여동서당, 서륜재, 일관정 등 다수의 전통 한옥 건축물이 잘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월봉정은 성산 이씨의 회합 장소이자 대포파(大浦派)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재실(齋室)이다.

[한개 마을 명소]

1. 한주정사(寒洲精舍)

성주 한개 마을은 전통 한옥과 그 주변 풍경이 잘 어우러져서 영화나 TV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그중에서 동네 맨 위쪽에 자리한 대산동 한주 종택의 한주정사는 그 자체로도, 또 한주정사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광복 후에 영화 「춘향전」을 처음 한주정사에서 촬영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TV 문학관」과 「전설의 고향」 등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가 한주정사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한주정사와 연못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정원’에 선정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2.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

2010년 6월 9일부터 그해 9월 16일까지 KBS 2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인 「제빵왕 김탁구」를 촬영한 집이다. 2010년 당시 성주 한개 마을은 「제빵왕 김탁구」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 무르익은 마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촬영 장소로 선정되었다고 할 만큼 과거와 현대의 시대적 변화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었던 집[월항면 한개2길 16]은 너무 낡아 2021~2022년 사이에 보수하여 새롭게 탈바꿈했다.

3. 성주 대산리 도동댁 은행나무

성주 대산리 도동댁 삽짝[사립문]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가을에 은행잎이 물들어 떨어지면 골목길이 노란 양탄자를 깐 모습으로 변한다. 노란 은행잎과 대산동 한주 종택으로 통하는 골목길의 모습은 사진 찍기에 좋은 곳 중 하나이다.

4. 광대걸[광대 거리]과 광대 바위

조선 시대 성주 한개 마을에서는 과거 급제자가 모두 34명[대과 9명, 소과 24명, 무과 1명] 나왔다. 과거에 급제하면 당연히 잔치를 벌였는데 놀이패를 불러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그 당시 동네 사람들과 놀이패가 놀던 골목을 광대걸[광대 거리]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놀이패 광대들이 줄타기를 할 때 쓸 밧줄을 묶었던 바위가 바로 ‘광대 바위’이다. 광대 바위는 시대의 아픔도 담고 있다. 광대 바위는 원래 골목길 가운데 쪽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니는 데 자꾸 걸리고 위험하여 새마을 운동 당시에 그 바위를 없애 버리려고 젊은 사람들이 깨부수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어른들이 중요한 의미가 담긴 바위니까 그냥 두라고 해서 윗부분은 1m가량 없어지고 나머지 부분은 근래까지 길 가운데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 수년 전 동네 전체에 전기와 통신선 등의 지중 매설 공사를 하면서 광대 바위를 뽑아내 길 옆으로 옮겨 놓았다. 당시에 있었던 놀이에 관련된 지명과 물건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당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요소이며 그것과 관련된 사연을 알 수 있어 재미를 더한다.

5. 대산동 교리댁 탱자나무[귤나무]

대산동 교리댁에는 1870년대 초반 제주도에서 가져온 귤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귤나무는 응와 이원조가 제주목사로 임기를 마치고 나올 때 제주민이 그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것인데 현재는 탱자나무로 변하였다. 중국의 옛 고사인 귤화위지(橘化爲枳)와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의미를 되새길 만한 나무이다.

6. 왕버들나무

동네 앞 도로변에는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이 있다. 이 왕버들은 마을 사람들과 지나가는 이들에게 그늘을 제공하여 땀을 식히는 쉼터 역할을 하던 것으로 성주 한개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7. 감응사

신라 애장왕 때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감응사에는 창건 설화와 관련된 샘이 있다. 바로 영험(靈驗)한 샘이라는 뜻의 ‘영천(靈泉)’인데 ‘옥류정(玉流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영천 위 암벽에는 용왕상(龍王像)과 많은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감응사 아래로 바라보이는 성주 한개 마을과 멀리 보이는 성산(星山), 그 주변 능선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8. 비채길

최근에 ‘비움과 채움’이란 뜻을 담아 이름 지은 ‘비채길’은 성주 한개 마을과 동네 주변으로 통하는 일곱 갈래로 만든 산책길 및 등산로이다. 한두 시간 정도 가볍게 동네 주변을 걸을 수 있도록 최근에 조성하였는데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성주 한개 마을 탐방 팁]

첫째, 성주 한개 마을이 다른 동네와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는 고택들의 마당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대산동 교리댁, 성주 대산리 도동댁, 대산동 한주 종택에 수백 년 된 소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듯 서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건축적인 특징으로, 대부분의 사랑채 마루 천장에 눈썹 천장의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성주 지역의 다른 동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건축 구조의 한 부분이 성주 한개 마을 건축물에서는 일반적이라 그런 면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둘째, 성주 한개 마을에는 전체를 다 이어 놓으면 약 4㎞ 정도 되는 골목길과 토석 담장이 잘 남아 있다. 구불구불 이리저리 이어진 골목길은 아름다움과 함께 여유롭게 걷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담장 기와나 지붕 기와 위에서 자라는 와송(瓦松)은 사진 소재로도 좋다.

셋째, 성주 한개 마을을 둘러볼 때 가옥 한 채 한 채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풍수지리에 따라 구성된 마을 전체를 조망하고 관망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주거 구역을 중심으로 바깥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골목길과 동네 안쪽에 이리저리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걷는 재미는 성주 한개 마을을 찾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특히 대산동 월곡댁 뒤 산자락에는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동네를 한눈에 감상하기에 알맞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고택들의 지붕 기왓골이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넷째, 성주 한개 마을에는 농경 시대 때 사용하던 농기구나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근대화 시대 물건들이 잘 남아 있다. 다량의 농기구와 오래된 생활용품이 도장[고방채]이나 건물 벽 또는 시렁에 걸려 있어 옛 생활 모습을 짐작하게 해 주며, 그 물건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역사와 가치를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체험 프로그램]

성주 한개 마을은 전통 마을답게 조상의 생활상과 숨결을 보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한개마을보존회’를 조직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생활용품과 음식, 유교 의례, 주거, 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생활용품 만들기 체험: 짚공예 체험, 전통 매듭 만들기, 부채 만들기 등은 마을 서편에 있는 서륜재(敍倫齋)[월항면 한개2길 17-9]에서 할 수 있다. 오랜 농사 경험을 가진 분께서 평소에 짚과 나무로 생활용품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기술을 선보이며 방문객이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지도해 준다. 서륜재는 월봉 이정현의 손자인 이달운(李達雲)[1637~1695]을 추모하기 위하여 1819년(순조 19)에 건축한 재실로 체험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음식 관련 체험: 구첩반상 체험하기, 두부·약과·다식 만들기, 떡메 치기 등은 월봉정(月峰亭)[월항면 한개1길 12-17]에서 하고 있다. 특히 구첩반상은 양반가 밥상의 품위를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는 체험이다.

유교 생활 관련 체험: 유복 입기 체험, 과거 시험 백일장, 삼일 유가(三日遊街) 놀이, 한복 입기 체험 등은 동네 여러 장소에서 행해진다. 특히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많이 방문하고 있다. 한복은 사도실댁[월항면 한개2길 18]에서 빌려준다.

민박 체험: 목조 한옥과 초가집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옛 조상들이 살았던 정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섯 집을 선정하여 민박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을 이야기 듣기: 전문 해설사에게 성주 한개 마을의 역사와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더 많은 프로그램은 한개민속마을(http://hangae.c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

한개마을보존회는 그동안 성주 한개 마을의 전통성을 살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해 왔다. 그중에서 짚공예나 한복 입기 체험 등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늘 행해져 오던 것이라 상시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삼일 유가나 광대 놀이 등 일부 프로그램은 시범적으로 시행해 보았지만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등 제반 여건 마련에 어려움이 있어 한시적 시행에 그치고 상설 공연은 못 하고 있다.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적은 인원으로 일상생활처럼 할 수 있는 놀이 문화 같은 것을 구성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대산동 교리댁에 놀이판이 남아 있는 ‘승경(陞卿) 놀이’나 성주 대산리 하회댁에 자료가 남아 있는 ‘삼육 놀이’ 등이 그런 것들이다. 승경 놀이는 지역에 따라 종경도(從卿圖)나 승정도(陞政圖), 종정도(從政圖)로 서로 다르게 불렀는데, 옛 관직명을 도표로 만들어서 놀던 놀이로 주로 양반집 아이들이 즐겨 하였다고 전한다. 삼육 놀이는 부녀자들이 많이 하던 놀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한 놀이 방법을 알지 못해 실행을 못 하고 있다.

반면에 대부분의 마을에서 독자적으로 해 왔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동제[당제]나 산신제 같은 의례는 부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행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내용이 대동소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것을 해 오던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고증을 통해 충분히 복원,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 한옥 분위기에 어울리는 전통 혼례식도 가능할 것이다. 2021년 3월 성주 한개 마을 동쪽에 있는 월봉정(月峰亭)에서 현대식 결혼식을 시범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통 혼례식이든 현대적 결혼식이든 성주 한개 마을의 풍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를 많이 유치하고 그것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성주 한개 마을은 전통 가옥이 많고 옛 생활 풍습도 많이 남아 있어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마을이다.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전통 마을답게 일상생활로 끌어들여 활성화시키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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