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67
한자 星州極窩古宅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0[대산리 38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지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52년연표보기 - 성주 극와 고택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6월 3일연표보기 - 성주 극와 고택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4월 8일연표보기 - 성주 극와 고택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3년 4월 8일연표보기 - 성주 극와 고택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해지
현 소재지 성주 극와 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0[대산리 387]지도보기
원소재지 성주 극와 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0[대산리 387]
성격 고택|전통 가옥
정면 칸수 6칸[안채]|4칸[사랑채]
측면 칸수 1칸[안채]|1칸[사랑채]
소유자 이영직
관리자 이영직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개설]

성주 극와 고택(星州極窩古宅)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고, 건립된 지 약 30년 후에 극와(極窩) 이주희(李澍熙)[1866~1946]가 가옥의 주인이 되었다. 집 이름은 이주희의 호를 따서 ‘극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주희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덕향(德享), 호는 극와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진주목사(晉州牧使)와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등을 역임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국권 피탈을 한탄하여 거적을 깔고 소복 차림으로 칩거하였다고 한다. 국권 피탈 이후 문 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임종 때까지 성주 극와 고택에서 거주하였다.

[위치]

성주 극와 고택은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0[대산리 387번지] 성주 한개 마을 안에 있다.

[변천]

성주 극와 고택은 사랑채에 기록된 상량문(上樑文)에 따르면 1852년(철종 3)에 건립되었다. 이후 1883년(고종 20)부터 극와 이주희가 가옥의 주인이 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안마당의 동쪽에 광채가 있어 ‘ㄷ’ 자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광채는 철거되고 현재 안채와 사랑채 2동만 남아 있다.

[형태]

안채와 사랑채 2동이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양반 가옥의 형태로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의 ‘一’ 자형 건물이다. 좌측에 부엌 1칸과 안방 2칸, 대청마루 2칸이 있고, 우측에 방 1칸이 있다. 사랑채는 현재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으나 평면 구성은 양반 가옥의 형태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큰방 2칸과 마루 1칸, 좌측에 작은방 1칸이 있다. 안채의 댓돌에는 ‘만석(萬石)’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현황]

성주 극와 고택은 1998년 6월 3일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하였다가, 2013년 4월 8일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를 해지하고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다시 지정하였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이영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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