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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2553
한자 張經世
영어음역 Jang Gyeongse
이칭/별칭 겸선,사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손앵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1547년연표보기
몰년 1615년연표보기
본관 흥성장씨[흥덕장씨]
대표관직 승문원박사|전라도도사|금구현령

[정의]

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개설]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1547~1615]는 선조광해군 연간에 주로 활약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전라도도사, 금구현령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등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사직하였다. 이후 벼슬을 단념하고 시문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는데, 사회 현실과 우국지정을 읊은 문학 작품을 남겨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가계]

본관은 흥성(興城)[興德]. 자는 겸선(兼善), 호는 사촌(沙村). 남원시 송동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랑을 지낸 장건(張健)이며, 어머니는 남원양씨로 양공건(楊公健)의 딸이다. 종부(從父)인 장급(張伋)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1589년 43세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93년 공주제독관으로 있다가 얼마 뒤에 승문원박사로 옮겼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 방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남원부사와 협력하여 군량미 비축과 군정(軍丁) 확보에 전력을 다했다.

1602년에 노모를 모시기 위하여 외직인 금구현령을 자청해 나갔으나, 어지러운 정국을 피해 사직한 후 1615년 69세로 임종하기까지 자연에 묻혀 살았다. 당시 덕행과 문명이 높았던 노진(盧禛)을 비롯하여 김복흥(金復興)·양사형(楊士衡)·최상중(崔尙重)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사상]

주로 가학(家學)을 전수받아 경사백가에 두루 통하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시문으로는 당송팔가(唐宋八家)의 맥을 이었다는 평을 들으며, 명성을 떨쳤다. 또한 덕이 높아 남인(南人)의 사표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본떠 충군 애국의 성심을 읊은 「강호연군가(江湖戀君歌)」12수를 지었다. 그밖에도 「정부사(征婦詞)」, 「상사곡(相思曲)」, 「유선사(遊仙詞)」 등과 문집으로 목활자본인 『사촌집(沙村集)』 4권 2책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부친인 율계(栗溪) 장급과 함께 남원의 주암서원(舟巖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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