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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805
한자 工藝
영어음역 gongye
영어의미역 craf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미영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공장(工匠)의 손으로 가식 없이 만들어져 서민의 일상생활에 쓰여지는 도구를 만드는 일.

[개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지정 기준 전통 공예 기법으로는 도자 공예((陶瓷工藝), 마미 공예(馬尾工藝), 금속 공예(金屬工藝), 화각 공예(華角工藝), 장신 공예(裝身工藝), 나전 공예(螺鈿工藝), 칠공예(漆工藝), 제지 공예(製紙工藝), 목공예(木工藝), 건축 공예(建築工藝), 피혁 공예(皮革工藝), 지물 공예(紙物工藝), 직물 공예(織物工藝), 염색 공예(染色工藝), 옥석 공예(玉石工藝), 자수 공예(刺繡工藝), 복식 공예(服飾工藝), 악기 공예(樂器工藝), 초고 공예(草藁工藝) 등 18종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들 가운데 남원 지역에는 도자 공예, 금속 공예, 장신 공예, 목공예, 제지 공예 등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연원]

남원시 운봉읍을 비롯하여 대강면 등지에서는 삼한시대의 토기를 굽던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萬福寺址) 뒤편 기린산 서쪽 중턱에서 발견되고 있는 백자 도요지는 조선시대의 도기소(陶器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원 지역의 옹기는 세계 도자기류에서 그 종류를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한국적 민속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남원 지역의 옹기 생산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는데, 산내면과 운봉면 등지에 옹기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원 지역에는 남원공설시장 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식도(食刀)와 왕정동 일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담뱃대 그리고 운봉읍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놋그릇이 있다. 이들은 대개 하나의 가업으로 3대 이상이 전승하고 있는데 지금도 대부분 전통적인 제작 방법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목공예품은 옛날부터 전국적으로 운봉목기가 유명하였다.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바릿대, 반상, 장롱의 제작은 이 곳 남원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목공예품에는 각종 문양을 조각하기도 하고 장석(粧錫)을 달기도 하며, 때로는 칠(漆)을 칠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특히 현재 남원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불구(佛具)와 반상 그리고 제기(祭器)는 전국적으로 뛰어난 제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목공예의 한 종류인 죽공예(竹工藝) 가운데 부채 또한 남원 지역에서 생산되는 명물 중의 하나이다.

한지(韓紙)의 제조 또한 남원의 중요 공예 중 하나였다. 조선 세종 때에는 전주(全州)에 조지소(造紙所)를 두어 표전자문지(表箋咨文紙), 인서제색지(印書諸色紙), 고정지(藁精紙), 유목지(柳木紙), 의이지(薏苡紙), 마골지(麻骨紙) 등을 제조하게 하였으며, 뒤에 태지(苔紙)도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남원 지역에서도 한지 제조업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 양지(洋紙)가 유입됨에 따라 한지의 수요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그 생산도 역시 감소하여 지금은 거의 소멸되고 운봉읍산내면 등에 몇 곳의 제지소가 있을 뿐이다.

[종류]

1. 목공예(木工藝)

(1) 목칠 공예(木漆工藝)

목칠 공예란 목물(木物)에 수액으로 다양한 칠(漆)을 하여 사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목칠 공예는 크게 목각 공예와 가구 공예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의미의 목칠 공예는 도자 공예와 더불어 우리나라 공예사상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라 하겠다.

남원 지역의 대표적인 목칠 공예로는 운봉읍의 목기와 남원시 일원의 소반(小盤)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운봉목기와 남원소반은 지리산 주변의 풍부한 산림 자원을 바탕으로 5백 년 동안 그 명맥을 유지해 온 남원 유일의 특산품이다.

운봉목기와 남원소반은 제작 과정이 섬세할 뿐만 아니라 원자재가 지리산의 고산 지대에서 나오고 있어 특유의 향기와 함께 그 재질이 단단해 조선 초기부터 전국에 명성을 떨쳐 왔다.

최근 들어와 플라스틱 제품의 범람으로 사양길에 들어서기도 했는데 다시 전통문화 계승과 복고적인 생활양식의 붐에 따라 새로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 수요량의 50% 이상을 남원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다.

현재 운봉읍에는 10여 호의 가구가 대를 이어오면서 부업으로 목기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주로 제기(祭器)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기는 금속이나 사기그릇처럼 소리가 나지 않고 정갈해 조선 초기부터 최고품으로 많이 애용되어 왔다.

이밖에 각종 목기나 화병, 주병, 항아리 등 기타 소품의 목공예품도 생산하고 있다. 원자재는 주로 오리목, 들뿌리, 물뿌리나무를 이용하고 있으며, 신축성이 있고 질긴 야막나무나 노각나무를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향나무와 같은 특유의 향기를 내뿜는 박달나무는 고급 원자재로 각광받고 있다.

목칠 가구는 일반 생활에 널리 사용되는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한때 산내국민학교에 목공예 과목이 있어 많은 기술인을 배출한 바 있다. 남원소반은 남원반인협회가 주축이 되어 남원목공예사업협동조합을 구성하여 대단위 목공예 단지를 조성 중에 있다.

(2) 죽공예(竹工藝)

죽공예란 목공예의 하나로 대나무를 이용하여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예를 말한다. 죽공예는 통대나무를 그대로 이용하여 평상(平床), 탁자(卓子), 의자(椅子) 등의 생활 용구를 만드는 경우와 큰 대나무를 정교하게 쪼개어서 부엌살림에 요긴한 바구니, 소쿠리, 용수, 조리, 키 등을 만들거나 부채, 죽침(대나무 베개), 죽립(대나무 갓) 등의 장신구를 만들기도 한다.

대나무 표피에 낙죽(烙竹)을 하거나 오색 물감을 들여 부녀자용 가방, 반짇고리 등 화사한 무늬의 치장 용구를 만들기도 하며 이 밖에 담배설대나 단소, 퉁소 등의 악기를 만들기도 한다.

아주 가늘고 얇게 쪼갠 대오리를 가지고 발, 채상(彩箱), 부채, 갓양태 등 매우 공력이 들고 세련된 솜씨를 필요로 하는 죽세공품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우리나라만이 가진 특유의 것들이다.

죽공예로는 부채, 우산, 등(燈)이 대표적이다. 부채는 대부분 전주에서 생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남원 지역에서도 상당량이 생산되고 있다. 전주와 남원에서 부채가 생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 초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인근 지역인 운봉에서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가 다량으로 생산되어 좋은 품질의 한지가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전주감영에 선자청(扇子廳)까지 두었다 한다.

특히 합죽선은 양반들의 의례 용구나 그 위에 그려진 시화의 그윽한 묵향을 음미하는 필수적인 장신구로 등장한 소품으로, 지금도 전주와 남원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남원시 조산동에 거주하는 김종일·형종섭·장재근·추홍열·양해문·강영도 등 10여 호의 가정에서는 접부채인 합죽선을 비롯하여 각종 방구부채(둥글부채)를 만들고 있는데, 그중 방구부채만을 만드는 공장은 두 곳이 있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수대에 걸쳐 가족 중심의 가업으로 이어오면서 이웃 주민을 포함한 10여 명 내외의 인력을 동원하여 스스로 개발한 간이절단기, 압착기, 연마기 등과 칼, 톱, 줄 등의 수공구를 이용하여 제작한다.

부채 제작 업체에서는 순수 수공 과정으로 연간 2,000~3,000개에서 많게는 수만 개를 생산하고 있으나 모두가 가족의 생계유지에 지나지 않는 극히 영세한 가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여 대부분 폐업하고 현재는 몇 집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2. 한지 공예

(1) 한지 제조

한지 공예란 닥나무에서 추출한 식물성 섬유를 곱게 찧어서 물에 풀어 놓은 섬유질 점액으로 만들어 대나무를 정교하게 쪼개어 만든 대발로 얇게 떠서 종이를 가공해 내는 제지 공예를 말한다.

전통적인 제지 공예는 닥나무 껍질을 이용하여 한지를 만들고, 이 한지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드는 것이다. 한지는 일명 조선지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한지는 특히 호남 지역에서 가장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그중 전주, 남원, 순창, 장성이 특산지였다. 지금도 전주, 완주, 남원 등지에서는 닥나무 껍질로 한지를 만들고 있다.

(2) 등공예(燈工藝)

한지 제조가 발달한 남원 지역에서는 부채뿐만 아니라 등공예도 다른 지역에 비해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등의 종류로는 수박등·마늘등·연꽃등·칠성등·오행등·일월등·구등(球燈)·선등(船燈)·방울등·종등(鐘燈)·고등(敲燈)·누각등·난간등·화분등·가마등·마루등·병등(甁燈)·항아리등·난등(卵燈)·용등(龍燈)·봉등(鳳燈)·학등(鶴燈)·잉어등·거북등·자라등·수목등(樹木燈)·태평등(太平燈)·만세등·남산등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약 30여 종의 등이 있었다.

3. 도자 공예(陶瓷工藝)

도자기란 질그릇·오지그릇·사기그릇의 통칭이며, 양질의 흙을 성형하여 불에 구워 만든 생활 용기나 장식 기물을 말한다. 남원 지역에서의 도자 공예에 관한 역사는 멀리는 가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萬福寺址) 뒤 기린산록에 있던 백자가마가 유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유재란 때 일본에 전해진 도자기 문화는 남원 지역에서 성행하였던 도자기 문화로 추정된다. 이는 정유재란 때 남원 지역에서 50여 명의 도공을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에서 추측할 수 있다.

남원 지역의 도요지로는 산동면 대상리에 있는 요골 도요지, 운봉면 준향리준향리 도요지, 운봉면 공안리수철 도요지, 이백면 효기리문수동 도요지, 주천면 고기리고기리 도요지, 금지면 입암리의 서재 요지, 대강면 평촌리평촌 요지, 대강면 사석리고리봉 요지, 대강면 사석리석촌 요지, 보절면 괴양리회산 요지, 남원시 왕정동왕정동 도요지 등이 있었다.

4. 금속 공예

금속 공예는 금, 은, 동, 철 등을 재료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예를 가리킨다. 이들 재료에 열을 가하여 용해된 쇳물을 틀에 부어 빼낸 것이 주물(鑄物)이고, 쇠의 신축성을 이용해 두드려서 성형한 것은 단조물(鍛造物)이라 한다.

종, 솥, 쟁기, 삽 등은 주물에 속하고 낫, 칼 꽹과리, 담뱃대 등은 단조물에 속한다. 남원 지역에는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 금속 공예가 많은데, 그중 담뱃대와 유기그릇 그리고 부엌칼의 제조는 금속 공예의 대표적인 물품들이다.

(1) 유기그릇

유기(鍮器)란 유석으로 만든 모든 그릇이나 도구를 말한다. 유석(鍮石)이란 향로감석, 황동 또는 진유라고도 하는데, 자연적으로 출토된 광물질이 아니고 구리에 여러 가지를 합금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의 시장에 유기점이 따로 설치되어 각종 식기와 풍물류의 유기물을 서민들에게 판매하였다. 유기 공예는 8·15 해방 뒤까지 각 지역에서 성행하였는데, 특히 경기도 안성을 비롯하여 경상도 금천, 전라도 남원, 특히 운봉 등지에서 계속 제작되었다.

운봉은 호남과 영남을 잇는 전라도 남부 지역의 중요 교통 요로로서 일찍이 군사적으로 중요시되어 온 지역이다. 더구나 운봉은 대관령 다음으로 높은 고원 분지로 지리산을 끼고 있어서 일찍부터 자원이 풍부하여 공산품이 발달한 곳이다.

운봉유기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게 된 것은 조선 중기부터라 생각된다. 이 곳에서 제작된 유기는 색채가 뛰어나 마치 황금과 같고 질이 매우 우수하여 한국적인 고전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운봉유기는 운봉의 여러 곳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봉면 공안리 뒷산과 삼산리, 동면 속운리와 상우리, 산내면 달궁리 뱀사골 뒷산 등지에는 지금도 그때 유기를 만들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중 운봉의 상운리와 속운리에서는 한국전쟁 전까지 계속 유기가 제작되었는데, 당시의 유기 제작 기능 보유자로는 윤춘열(尹春烈)이 유명했다.

조선 말기부터 지금의 남원시 왕정동에서도 유기를 제작하여 왔다고 하는데, 현재는 거의 소멸되고 전업하여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또 남원공설시장 내 몇 군데에서는 식도(食刀)인 남원식도을 만들고 있는데 이 남원식도은 오늘날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남원 지역에서 제작되었던 유기는 방짜와 주물(鑄物)의 제작 방법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원 지역에서 제작되었던 유기의 종류로는 밥그릇과 국그릇 등의 식기류와 요강·세숫대야 등의 혼사 용구, 향로·촛대 등의 제사 용구, 바라·범종 등의 불기류(佛器類), 청동화로, 부삽 등의 난방 용구, 나비촛대·유경 등잔 등의 등잔류(燈盞類) 등이 있었다.

(2) 담뱃대

담뱃대는 연죽(煙竹), 연관(煙管), 연배(煙盃)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 담뱃대가 성행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로 추정된다. 그것은 담배 자체가 16세기 중엽 스페인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퍼졌고 우리나라에는 1618년(광해군 10)경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뱃대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로 볼 수 있다.

담뱃대는 유기의 일종으로, 남원 지역에서 언제부터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문헌적 기록은 없다. 다만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남원의 유기가 퇴조되면서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남원 지역에서는 실제로 유기와 함께 만들어졌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담뱃대에는 백동연죽(白銅煙竹)과 오동상감연죽(烏銅象嵌煙竹)이 있다. 백동연죽은 보통 ‘민담뱃대’라고 하며, 일반 시장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오동상감연죽은 부유층이나 양반들에 의해서 애용되어 주문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오동상감연죽은 현재 임실과 남원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오동상감연죽은 동(銅)에 금, 은, 아연 등을 합금 처리하여 상감청자를 제작하는 기법을 이용하여 제작한다. 남원시 왕정동에 거주하는 황영보(黃永保)는 백동연죽과 오동상감연죽의 장인으로 유명하다.

(3) 식도(食刀) 공예

남원 지역의 식도 공예에 대한 역사는 대단히 깊은데, 1922년 6월 조선부업공진회에서 당시 남원읍 노암동에 거주하던 한영진(韓永鎭) 편수가 출품한 식도가 금상을 수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남원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도가 쓰기에 편리하고 날이 쉽게 망가지지 않아 많은 주부들이 즐겨 찾고 있다.

남원공설시장 내에는 3대에 걸쳐 식도만을 전문으로 만들고 있는 정정환(鄭正煥)과 곽태섭(郭台燮)의 일가가 있으며, 그 밖에 7개소의 가내 소공장에서 식도를 제작하고 있다. 이처럼 남원의 식도 공예는 오랜 전통과 수대에 걸쳐 전수된 기술과 정성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5. 매듭 공예

매듭이란 세 점 이상이 한 선 위에 교차하면서 이루는 형태를 일컫는다. 매듭을 맺으려면 우선 끈목이 필요하다. 끈목은 실을 합사하여 두 가닥 혹은 세 가닥 이상으로 꼬는 끈과 네 가닥 이상의 여러 가닥으로 쳐서 짜는 끈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명칭은 가닥수에 따라 4사, 8사, 12사, 16사, 24사, 36사 등으로 부른다.

매듭 공예는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했다가 개화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져 가고 마지막으로 끈목의 고장이라 일컫는 남원시 노암동의 박용학에 의해 전승되어 4사와 8사의 기법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남원 지역에서는 도리매듭·콩매듭·단추매듭·오발창매듭·나비매듭·안경매듭·동심결매듭·정자매듭·삼정자매듭·십일고매듭·국화매듭·방석매듭·가재눈매듭·게눈매듭·꼰디기매듭·날개매듭·혼백매듭·가락지매듭 등 다양한 매듭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남원 지역에서 만들고 있는 매듭은 한 오라기의 끈목을 반절로 접어 중심을 잡고 두 손끝으로 두 가닥의 끈을 순서대로 얽어서 차례대로 죄어들도록 되어 있으며 그 얽고 죄는 과정은 질서 정연하기 이를 데 없어 털끝만큼의 어긋남도 용납되지 않는다.

[현황]

공예 장인으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된 백동연죽장의 황영보, 전라북도 지방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된 목기장 김광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된 목기장 노동식,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옻칠장 김을생(金乙生),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된 옻칠장 김영돌(金永乭) 등이 유명하다.

2007년 현재 남원시에는 목기공예단지, 식도공예단지, 도자기공예단지 등의 공예단지들이 남원 공예의 명맥을 잇고 있으며 공예 관련 모임으로는 남원반인목공예협회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22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반등(般燈)·방울등·종등(鐘燈)·고등(敲燈)·누각등·난간등 ->선등(船燈)·방울등·종등(鐘燈)·고등(敲燈)·누각등·난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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