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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762
한자 天主敎
영어음역 Cheonjugyo
영어의미역 Catholicism
이칭/별칭 로마가톨릭교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천갑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 성당이 있는 로마교구의 주교인 교황을 으뜸으로 삼는 기독교의 한 교파.

[전파과정]

전라도 지역은 조선 후기 천주교 탄압 사건인 교난(敎難)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즉 1801년 신유교난(辛酉敎難),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 1846년 병오교난(丙午敎難), 1866년 병인교난(丙寅敎難) 등 대규모 탄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한양과 경기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은 관헌들의 추적을 피하여 상대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관대했던 전라도 지역의 깊은 산간 지대로 피신하였다.

또한, 구한말 치안이 불안정하여 선교사들에 대한 농민군과 자위단의 박해가 심해지자 선교사들은 그들의 위협을 피해 장수와 진안 등지로 와서 활동했으며 그 중에는 남원 지방에 거주하는 천주교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박해를 피하여 이주한 천주교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 박해가 사라졌어도 공소가 형성되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897~1898년경 남원 지역에서만 16명의 성인 영세자가 교적에 올랐다. 이 사실을 기록한 보두네 신부(1907년 11월 말부터 1908년 1월 사이에 진안군의 어은동 본당과 전주 본당 소속 신부)는 천주교에 대한 남원 지역의 전망이 밝을 것으로 예견하였다.

그러나 당시 남원은 천주교보다 개신교 신자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한 때였다. 이로 인해 1900년대 초 남원 지역에서는 천주교 교세의 신장이 더디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원 근방의 몇몇 사람들이 입교 의사를 밝히자 보두네 신부는 이들에게 교리 공부에 필요한 책을 보내 주며, 이들이 영세를 받아 훌륭한 교우촌을 형성하기를 바랐다.

그 후 천주교 전교에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가, 1932년 장수 수분리 성당 소속 김윤문(아우구스티노) 등 2명의 신자가 남원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이들은 1934년 1월경 남원공소를 설립하고, 장수 수분리 성당 석종관 신부를 청하여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동년 5월 김윤문 등은 남원읍 내 죽항리에 3칸 협실의 공소집을 건축하였다. 그 후 수분리 성당에서 파견된 김마리아, 정안드레아, 김바르나바 외 여러 전교회장들의 노력으로 예비신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34년 5월 신자들은 죽항리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석종관 신부는 동년 8월 20일 부임하였다. 부임한 석종관 신부는 신설 본당의 기초를 닦으면서 문맹 퇴치를 위하여 소화학원과 교리야학을 세워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새로운 영세자가 200여 명에 이르렀고 소속 공소 3개와 본당 관할 신자는 230여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회장 4명과 전교회장 3명(남 1명, 여 2명)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장수 수분리 성당 구 요셉의 기부금으로 종탑을 설치하였다.

1935년 6월 16일 남원 지역 최초로 본당인 남원성당이 신설되었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일으키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신사참배(神社參拜)와 국기에 대한 경례, 동방 요배, 국가 봉창, 황국신민의 서사(誓詞) 제창을 극도로 강요하는 시기 남원 지역의 천주교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쌍교동 성당]

1937년 석종관 신부는 수류성당으로 전임되었으나 후임 신부가 임명되지 않아 신부 공석이 된 채 정읍 관할이 되었다가 1938년 6월 김영구 신부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본당은 1938년 성당을 증축하고 소화학원을 개편하였으며 1939년에는 청년회를 창립하였다.

김영구 신부의 뒤를 이어 김기봉·조상익·강윤식·이철연·김재덕 신부 등이 부임하여 본당 사목을 하였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 정국, 그리고 한국전쟁 등 커다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때였다. 이러한 시대 여건에서는 본당의 조직화와 내실 있는 신심 생활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1958년 1월 제8대 주임으로 박성운 신부가 부임하였다. 박성운 신부는 동년 2월 읍내 쌍교리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성당과 사제관 신축에 착수하였다. 동년 8월 15일 성당을 준공하여 9월 23일 교구장 김현배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재원은 구호물자와 분납제를 실시한 교무금으로 충당하였다. 성당 건물은 그 당시 읍내에서 제일가는 건물이었다. 1958년 4월부터 인보성체수도회 소속 수녀들이 부임하여 본당 사목에 일조하였다.

1969년 인보성체수도회 소속 수녀들이 본당에서 철수한 후 1979년부터 샬트르 성 바오로회 소속 수녀들이 부임하여 1997년 7월 현재까지 유치원과 본당 전교에 힘쓰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한 조치로 교무금 분납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1년에 한 번 성탄 때 쌀로 교무금을 내었기 때문에 신자들에게는 부담이 되었는데, 이를 시정하여 2회로 나누어 내는 분납제를 실시한 것이다.

1960년대 초반 남원 지역에서는 수해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다. 1961년 장마와 탁류로 인하여 남원군·이백면·운봉면·주천면·산내면 등지에서 150여 명의 사망자와 6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이백면 과리 마을은 집중 폭우로 인해 25정보의 옥토와 150여 호에 달하던 마을이 순식간에 백사장으로 변해버렸으며, 약 100여 명에 이르는 인명 피해를 입었다. 교구에서는 수재민들에게 옥수수와 이불 등을 전달하였으며, 본당에서 한공렬 주교 집전으로 사망자들을 위한 특별 연미사를 봉헌하였다.

또한 전주교구 모든 본당 신자들은 헌금을 비롯하여 간장, 된장, 보리쌀, 보리, 백미, 야채, 호밀, 의류, 식기, 고추장, 감자, 멸치, 젓, 마늘, 공책 등 21종을 수재민들에게 전달하였다. 남원의 수해 소식을 접한 교황 요한 23세가 남원 수재민에게 구호금을 보내 주기도 하였다.

본당은 지역 사회의 유아 교육을 위하여 1966년 3월 유치원 강당 기공식을 거행하고 동년 8월 21일 준공식 및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유치원 건물 앞에는 성모회 기증으로 골고타상을 건립하였다. 유치원은 1967년 2월 28일 설립인가를 받아 개원하였으며, 1997년 2월 현재 30회 졸업식을 통하여 총 졸업생 1,724명을 배출하였다.

본당은 1961년 10월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어 레지오 마리애 운동을 전개한 결과, 1962년 5월 꾸리아를 창설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후 쁘레시디움 증설이 계속되었고, 1966년에는 애령회가 설립되었다. 1972년 신우회와 데레사회가 설립되었고 1977년에는 운봉공소에서 그리스도 공동체 묵상회가 개최되었다.

1981년 4월부터는 여성 직장팀인 ‘천사의 모임’ 회원들이 일일 탁아소를 운영하여 주일미사에 따라오는 아이들을 돌보았다. 주일마다 34명의 회원이 3교대로 유치원을 찾아와 20여 명의 아기들을 돌보았다.

1982년 5월 홍보주일을 맞이하여 성 바오로 딸 수도회에서 방문하여 도서전시회와 디스크포럼을 개최하였다. 그해 젬마회·로사리오회·요셉회가 창립되었고, 1985년 8월에는 전주 자치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판소리 성 안드레아 김대건전’이 본당에서도 개최되었다.

본당은 1992년부터 본당 마당에서 본당 교육관 건립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행사로 남원시에서 주최하는 춘향제(春香祭) 기간 동안 ‘춘향제맞이 나눔의 잔치 한마당’을 개최하였다.

‘춘향제맞이 나눔의 잔치 한마당’을 통하여 춘향제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를 알리고, 본당 신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데도 큰 의의가 있었다.

1995년은 본당 설립 60주년이 되는 해로, 이때를 맞이하여 본당에서는 ‘본당 설립 60주년 교육관’을 신축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94년 6월 기공식을 갖고 이듬해인 1995년 11월 준공하였다. 이때 성전 의자를 교환하고 대리석으로 조각된 성모상도 설치하였다. 1996년 11월 26일자로 본당 명칭은 남원성당에서 쌍교동 성당으로 바뀌었다.

[도통동 성당]

도통동 본당은 1990년 남원성당(현 쌍교동성당)에서 분리 신설되었다. 도통동 본당의 설립은 남원에 하나 밖에 없었던 남원 성당의 교세가 확장되어 취해진 조처였다.

본당 설립은 1980년대 후반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남원 성당 주임이던 서용복 신부는 다른 본당으로 전임되면서 신설 본당 부지 대금으로 1천만 원을 기탁하였다. 그리고 후임 고경훈 신부 재임 시 현 성당 부지를 구입하였다.

1990년 남원성당(현 쌍교동성당)의 교세가 확장되어 남원 지역을 두 개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하여 천주교 전교를 하기 위해서 도통동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 도통동 본당이 관할하는 구역은 남원시 도통동, 죽항동, 향교동 일부, 월락동, 이백면, 운봉읍, 인월면, 동면, 아영면, 주천면, 사매면, 덕과면 일부이다.

1990년 7월 15일 도통동 본당이 설립되어 초대 주임으로 유영도 신부가 임명되었다. 유영도 신부는 부임하였으나 사제관이 없어 쌍교동 성당 사제관에서 생활하면서 8월 31일 조립식 건물로 지을 성당과 사제관의 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유영도 신부는 불과 한 달여 만에 광주 가톨릭대학으로 전임되고 후임에 경규봉 신부가 부임하였다.

1990년 11월 17일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어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경규봉 신부는 본당 신자들과 함께 성전 신축 기금 마련을 위해 꿀 등을 판매하면서 성당 신축을 도모하였으나 약 2년 만에 전임되었다.

제3대 한기호 신부는 수녀원을 설치하여 공동체의 활성화를 모색하였으며 제4대 김교동 신부가 부임해 사목 활동을 펼쳤다. 1999년에 부임한 제5대 서석희 신부는 남원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2년간 선교문화예술제를 개최하여 지역 주민들이 천주교에 대한 호응도를 높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2003년 김정민 신부가 도통동 본당 주임 신부로 재임 시 성전 신축 기금을 마련하고자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도통동 본당 인터넷쇼핑몰은 제기, 남원상, 농산물 등 남원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여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에 부응하였다.

동시에 교회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본당 신부와 남원시장이 보증하는 품질 인증제를 실시하였다. 본당은 전문 인터넷 쇼핑몰 관리대행업체인 TEAM사와 2003년 6월 22일 정식 계약을 체결하여 쇼핑몰이라는 색다른 운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도통동 본당은 12년간 조립식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해 오다 2002년 12월 본당 신자들의 의사를 물어 성전을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성전신축위원회를 발족 신축 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2003년 6월 1일 성전신축선포식을 공포했다.

2004년 1월 부임한 김희태 신부는 교우들의 염원인 성전 신축을 재추진하여 3년 여 동안 교우들이 직접 제작한 김부각, 김장김치 등으로 서울 일대 및 전주 지역 성당을 순회하며 신축금을 모금했다. 적극적인 본당 교우들의 정성에 감화되어 분당마태오성당에서 1억여 원이라는 신입금을 봉헌하기도 했다.

2005년 8월 도통동 본당 신축 공사를 시작해 1년 6개월 만에 새 성전이 완공되었다. 2007년 3월 24일 남원시 도통동 27-2[역재1길 6-8]에서 교구장 이병호 주교 주례로 전주교구 남원 도통동 본당 신축 성전 봉헌식을 개최하였다.

신축된 본당은 대지 2,624㎡, 연면적 1,264㎡ 규모의 지상 3층 건물이다. 1층에는 사무실과 성물방, 회합실 7개, 주방 시설, 다목적실 등이 있다. 신자석은 2층에 300석과 3층에 80석을 두었으며 부속 건물로 사제관과 수녀원을 갖추었다. 총 공사비는 13억여 원이 투입되었다.

새 성전의 겉모습은 가톨릭의 전통적 특성을 고려해 다소 무거운 감을 주지만,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저절로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넘치도록 배려했으며 자연 채광을 이용한 제대와 한옥의 서까래 형태를 표현한 천장도 이채롭다.

1990년 쌍교동 본당에서 분가한 도통동 본당 신자들은 16년 동안 조립식 가건물을 성전으로 사용하면서 성전 신축을 위해 묵주기도 200만단 바치기를 비롯해 가정고리기도, 성서필사 등 기도 신앙 운동을 펼쳤다.

도통동 본당은 남원의 신도심에 위치해 있으며 인월공소와 운봉공소 등 2개 공소와 702가구 1,700명의 신자를 관할하고 있다. 쌍교동 성당도통동 성당은 모두 전주교구 소속으로 이 두 성당이 남원시를 두 개의 관할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 전교를 하며 교인들의 모임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09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기독교인에 대한 신사참배(神祠參拜)와 ->기독교인에 대한 신사참배(神社參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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