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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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灝 |
영어음역 | Yu Ho |
이칭/별칭 | 석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경석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문화(文化). 호(號)는 뇌천(磊川). 할아버지는 석헌(石軒) 유옥(柳沃)이고, 아버지는 유홍원(柳洪源)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평생을 안빈낙도하면서 입신 출세를 구하지 않았다. 『뇌천집(磊川集)』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덕행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드날렸지만 병자호란이란 국가적 치욕을 당하면서 벼슬에 뜻을 거두고 향리에 은거하는 처사로 살았다고 한다.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1592~1650]이 묘(墓)에 제(題)하여 이르기를. “부모와 형제를 잘 섬기고, 몸소 집안의 법도를 윤택하게 꾸미고, 배고픔도 잊은 채 거궁수약(居窮守約)하는 것을 즐겼으며, 이름을 숨긴 채 자취를 없애려 문짝에 진흙을 발랐지만 손자와 같은 아들을 구슬처럼 여겼다”라고 하였다.
그의 시와 글을 볼 때, 비록 은둔하여 살았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무너져 내린 도덕적 질서를 다시 세워 유교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문집으로 『뇌천집(磊川集)』이 전한다. 유호의 글들은 글투가 슬프고 탄식이 깃들여 있으며, 기력이 순박하고 바른데다 법도와 감정이 잘 융화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