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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689
한자 柳資澤
영어음역 Yu Jatae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전라남도 영광군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영광
대표관직 관찰사|전라감사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개설]

유자택은 영광에서 태어났으나 훗날 남원시 고죽리로 이주하여 영광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손이 번창하여 이백면사매면 등 여러 곳에 동족 부락을 형성하였다.

[가계]

유자택의 아버지 유혜방(柳惠芳)은 선대 이래 영광에서 살았다. 일찍이 영광군수를 역임하고 후에 영광군으로 봉군됨과 아울러 시호를 익양공이라 하였다. 유혜방의 두 아들 중 장자 유순은 고려 후기에 경상도안렴사겸관찰사를 역임하고 예문관 대제학과 정당문학을 역임하였다. 유순은 진주에 정착하여 진주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유자택의 자손들이 영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유자택의 아버지 유혜방이 고려 후기에 영광군이란 봉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자택의 아들 유면은 1412년(태종 12)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유면의 아들 유두명은 1447년(세종 29)에 문과에 급제한 후 좌천성을 증직하고 기성군에 봉군되었다. 유두명의 아들 유규세종 때 문과에 급제, 경주부사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고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는데, 후에 영의정을 증직받아 시호를 정숙공이라 하였다. 그가 바로 유자광의 아버지이다.

유자광의 형 유자환은 서기 1451년(문종 1)에 문과에 급제, 전라감사를 역임한 후 이조판서를 거쳐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러 오성군에 봉함을 받고 시호를 문양공이라 하였다.

[활동사항]

1399년(정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팔도의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전라감사가 된 후 남원시 고죽리에 정착하여 살았다.

[묘소]

묘소는 남원시 이백면 강기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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