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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670
한자 安處順
영어음역 An Cheosun
이칭/별칭 순지(順之),기재(幾齋),사재당(思齋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1492년연표보기
몰년 1534년연표보기
본관 순흥
대표관직 홍문관박사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순지(順之), 호는 기재(幾齋), 사재당(思齋堂). 그의 증조는 안구(安玖)이며, 조부는 전주부윤(全州府尹) 안지귀(安知歸)이고, 아버지는 전적(典籍) 안기(安璣)이다. 어머니는 조양임씨(兆陽林氏) 능성현령(綾城縣令) 옥산(玉山)의 딸이다.

[활동사항]

안처순은 1513년(중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가서,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정자겸경연전경(正字兼經筵典經),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등을 역임하였다.

1517년에 홍문관박사가 되었으나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하여 외직을 청하여 구례현감으로 제수되었다. 구례현감 재직 시절에는 『근사록(近思錄)』을 간행, 보급하여 지방 교육의 진흥에 힘썼다.

그는 1519년 기묘사화에 이행(李荇)과 함께 연루되었으나 겨우 화를 면하고 은퇴하였다가 뒤에 복관되어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 경성교수(鏡城敎授) 등을 지내다가, 1533년 전적(典籍)으로 제배된 뒤 양현고주부(養賢庫主簿),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에 이르렀다. 그는 43살 때 병을 얻어 남원부 흑성산(黑城山)에서 요양을 하다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남원의 영천서원(寧川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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