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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587
한자 蓼溪書院-
영어음역 Yogye Seowon Teo
영어의미역 Yogye Private Confucian Academy Site
이칭/별칭 요계사우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산 6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
건립시기/일시 1692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산 62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

[개설]

1692년(숙종 18)에 창건된 서원으로서 남원도호부 산동방을 근거지로 하여 학문을 펼쳤다.

[변천]

요계서원은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동쪽으로 8㎞ 떨어진 산동방에 위치한 서원이었다. 특히 부안김씨 출신인 충경공 김익복의 아들인 재간당(在澗堂) 김화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천묵재(天黙齋) 이상형, 용암(舂巖) 김지순, 담허재(澹虛齋) 김지백 4현을 봉안하여 배향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관학을 중심으로 한 향교 제도의 문제점이 도출되어 선비들의 문파에 따른 서원 건립과 향촌의 선비 교육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자 남원시 산동방의 많은 선비들이 서원 건립의 필요성을 깨닫고 요계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근현대까지 지속되지 못하였다.

[현황]

현재 요계서원은 사우 정면 3칸, 측면 2칸인 원지로 서원 터만 남아 있다. 동재와 서재, 강학당 자리의 주춧돌이 원지 근처에 산재해 있다.

[의의와 평가]

요계서원은 16세기 사화의 난을 계기로 하여 세워진 다른 서원의 형태와 그 근본은 다르지 않다. 특히 남원도호부 산동방에서 배움의 장을 갈망하던 향촌 사회 선비들의 요구와 학문적 수요를 적극 수응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명망 선비들의 제례를 행하면서 향촌 사회의 사립 중등 교육 시설로서의 존재 가치가 컸다.

요계서원은 자체 서원 원규를 두고 훼철되기 전까진 봄과 가을에 선현을 모시는 행위에서부터 성리학을 배우고 자신을 성찰하던 강학당 역할과 함께 산동방 지역 사회의 도서관으로서 늘 학문을 연마하던 공간이었다.

또한 학문의 강학 활동 역시 기초 학문인 『소학』에서부터 사서삼경과 『가례』, 『심경』, 『근사록』, 『사기』, 『주역』 등의 순서로 학문적인 윤리적 체계를 갖추었다. 요계서원은 지방에 잔존하여 사림의 주요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때때로 정계에서 쫓겨난 선비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또한 남원 지역 붕당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하였고, 적극적인 정계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등 학문 수양을 비롯하여 그 존재를 산동방 관내의 지역 사회에서 중요하게 부각시켰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18 내용 수정 [현황] 사우 정면 3칸, 측면 2칸인 원지가 남아 있다. 동재와 서재, 강학당 자리의 주춧돌이 원지 근처에 산재해 있다. 현재 요계서원은 서원 터만 잔존해 있다. 서원 관련 기념 사업으로는 재간당 김화의 문중이 전라남도 곡성에서 횡탄계라는 이름으로 요계서원 김화 기념 사업 관련 모임을 진행하고 있으며, 요계서원 4현의 각 후손들 역시 매년 제사를 드리고 있다. → 현재 요계서원은 사우 정면 3칸, 측면 2칸인 원지로 서원 터만 남아 있다. 동재와 서재, 강학당 자리의 주춧돌이 원지 근처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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