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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577
한자 新興書堂
영어음역 Sinheung Seodang
영어의미역 Sinheung Village School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신흥마을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당
건립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신흥마을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 있었던 조선 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개설]

신흥서당(新興書堂)은 1894년(고종 31)에 남원도호부 보현방 신흥마을에서 마을 유지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변천]

신흥서당이 위치한 보절면 신파리는 원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남원군 보현면 신흥리가 주변 여러 마을과 함께 보절면 신파리에 편입되면서 형성된 마을이었다. 신흥마을은 1717년에 안극량의 아들 안여가 분가하여 정착한 후 처음으로 씨족 마을이 되었으며, 인재 교육과 미래 일꾼 양성을 위해 향촌 초등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 후 마을 주민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서당이 설립되었다.

신흥마을에는 훗날 순흥안씨(順興安氏) 일가가 추가로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또한 마을 동편에 신흥사(新興寺)라는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흥마을이라고도 불렸다. 사찰은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에 설립된 신흥서당은 주로 구한말 외세의 간섭이 심한 상황 속에서 한문과 유학보다는 역사의식의 학습이 많이 이루어진 민족 교육의 현장으로 발전하였으나 이를 탄압하는 일제에 의해 휴업을 당하기도 하였다.

신흥서당은 1894년에 설립하여 일제강점기인 1940년까지 운영되었다가 민족의식이 강하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될 때까지 약 50여 년 가까이 교육 활동을 지속하였다. 신흥서당의 훈장은 많은 지역 향촌의 명망 인사들이 담당하였으며, 특히 운사 박태섭, 화사 임철규, 국찬 이교성, 계석 이원형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현황]

신촌서당의 현존 시설로 서재만 일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구한말의 역사적 급변기에서 민족 교육의 요람 역할을 해온 신촌서당에서는 많은 후학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일대를 학문과 문화 예술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는데 가교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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