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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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燈洞齋 |
영어음역 | Deungdongjae |
영어의미역 | Deungdongjae Village School |
이칭/별칭 | 둔산서실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235[산정유암길 12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찬용 |
성격 | 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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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60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235[산정유암길 125-1]![]()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있는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근거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등동재는 1860년(철종 11)에 설립된 남원도호부 수지방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 마을 유림 김택주가 설립하였다.
등동재는 많은 후진 양성을 한 서당으로, 서당과 관련한 많은 한서(漢書)가 있었다고 전한다. 경주김씨 가문의 김택주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해주 사람 오선생이 등동재 훈장을 했다는 기록과 함께 변기섭, 김란기, 김영옥 등 많은 선비가 등동재 출신이라는 기록이 『남원지』에 전해온다.
등동재 건물은 현재 약 40년 전에 건물이 허물어져 민간 가옥이 들어서 있다. 또한 등동재가 자랑하는 한서 중 일부는 경주김씨 일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당답이 6두락 있어 장학답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 안쪽에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등동재는 터 주변으로 약 661㎡ 면적의 땅을 가지고 있다. 등동재는 1960년대까지 해주 사람 오선생이 훈장을 맡았다. 현재 등동재에서 학업을 한 여양진의 유일한 후손이 생존해 있다.
서당의 근간이 되는 향촌 사회 등동마을에는 여양진씨(驪陽陳氏), 경주김씨(慶州金氏), 순흥안씨(順興安氏), 장연변씨(長淵邊氏) 일가들이 약 300여 년 전에 정착하였고, 등동재는 경주김씨 가문에서 설립하였다. 둔산령(屯山嶺) 아래에 마을이 위치해 있어 옆 산이 등을 걸어놓은 놓은 형태이기 때문에 마을 명칭을 등골로 개칭하였다는 등동(燈洞)과 관련한 풍수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