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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493
한자 坪村里-帶江面-
영어음역 Pyeongchon-ri [Daegang-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길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1.12㎢
총인구(남, 여) 130명(남자 61명, 여자 69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73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대강면 평촌리평촌과 새터로 나뉘어 있다.

[명칭유래]

옛날에 ‘견바실’로 부른 것은 견소곡(見所谷)의 새김말에서 유래했다. ‘점바실’로 부른 것은 덕동(새터)에 점(店)이 있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후에 마을 앞뜰이 넓다고 하여 평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새터 뒤에는 옛 도요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1506년(중종 원년) 천안김씨 중시조인 나주목사 전인손(全仁孫)이 갑자사화로 인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에서 이 곳으로 이주해왔다. 지금의 마을보다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질마재 들에 정착(집터들이 남아 있음)했으나, 1650년경 지금의 위치로 다시 이주하였다. 그 후 경주최씨·밀양박씨·경주정씨·금성나씨 등이 들어왔다. 본 마을인 ‘큰몰’과 남쪽으로 500m 떨어진 ‘덕동(德洞)[새터]’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견소곡방(見所谷坊)이라 하여 속칭 ‘견바실’ 또는 ‘점바실’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강면 평촌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시 발족으로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경 127° 14′39″, 북위 35° 23′05″의 해발 130m 지역 마을이다.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5.2㎞ 떨어져 있고, 동북쪽은 옥택리, 서쪽으로 입암리, 남쪽으로 송대리와 연접해 있다. 국도 13호선(사석~수홍)과 지방도 730호선(평촌~순창)이 마을 앞에서 삼거리를 이룬다.

마을 앞 동남쪽으로는 문덕봉 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북쪽은 해발 270m의 야산이 둘러 있다. 마을 앞으로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옥전에서 내려 이어진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큰몰과 새터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광주 대구 고속 도로 확장 계획에 의하면 마을 앞에 새로 진출입 도로가 생기고 선형도 크게 변형될 것으로 보인다.

[현황]

총 면적은 1.12㎢이며, 경지 면적은 60㏊로 밭이 31㏊, 논이 29㏊이며, 임야가 154㏊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73세대, 130명으로 남자가 61명, 여자가 69명이다. 쌀농사가 중심이며, 엽연초와 한우·돼지·젖소 등의 축산농가도 비교적 규모가 크다. 문덕봉 자락은 경사가 완만하여 조경수 묘목 재배가 성하며, 배·단감 등의 과수 재배도 지역 소득을 올려주고 있다.

마을에 충효문이 있는데, 경주정씨 중시조 정원세가 조부의 사망으로 3년 동안 시묘를 하던 중에 영조의 국상을 맞자, 시묘살이 5년을 더한 것을 정조가 높이 치하하여 충효공(忠孝公)이란 시호를 내린 데서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또 효열문도 있다. 대강면 가덕리에서 이 마을의 밀양박씨 문중으로 출가해온 흥덕장씨가 20세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집안이 극도로 가난하였으나 수절을 하며 외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후 90세에 일생을 마치니 후손들이 추모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평촌의 요지는 새터마을 뒷산에 있는데, 인삼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유구를 확인하기 어렵다. ‘점밭골’, ‘점실’로 불리는 지역으로, 그릇을 만드는 점토가 많이 있다는 데서 연유된 지명이라 한다. 이곳은 동쪽의 문덕봉에서 흘러내린 구릉이 남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는 백자편과 그릇받침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마을 동편에 소나무로 된 할아버지당산, 서편과 마을 위쪽에 느티나무로 된 할머니당산 2개소가 있어, 정월 14일 밤 12시에서 보름날 새벽 사이에 당산제를 지낸다. 먼저 마을에서 굿을 하고 당산을 오르면서도 굿을 치는데, 입당을 하면 더 잘 친다고 한다. 이때 굿패는 징 1개, 꽹과리 2개, 북 1개에 이어 큰 깃대가 따라가게 된다.

마을의 동쪽과 서쪽에는 조산의 흔적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으며, 서쪽은 지방도 730호(현 국도 13호) 확장, 포장 공사로 헐렸고, 동쪽은 그대로 흔적이 있다. 이 조산은 마을이 개구리 명당인데, 뱀혈인 앞산이 마을을 향하여 있으므로 개구리(마을)를 보호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마을 앞에다 소나무를 심고 입석을 세움으로써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특히 마을이 밖으로 노출되면 불길하다고 하여 수구(水口)막이로 동탑과 서탑을 세웠는데, 동탑은 높이가 120㎝이고 서탑은 높이가 180㎝였다. 그 위에 입석은 높이가 50㎝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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