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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447
한자 立石里
영어음역 Ipse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74.6㏊
총인구(남, 여) 241명(남자 119명, 여자 122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25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명칭유래]

마을 동쪽에 거대한 자연석 두 개가 유달리 우뚝 서 있으므로 돌이 서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선독골, 선돌골이라 불렸고, 한자로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선독골은 ‘서다’와 ‘돌’, ‘골’로 분석이 된다. ‘독’은 ‘돌’의 전라북도 방언이다.

그런데 이 바위가 서 있으면 입석리는 흥하지만 건너다보이는 원천리는 망한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믿고 원천리 사람들이 야간에 몰래 바위를 넘어뜨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입석리는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삼화리와 실상리 일부가 병합되어 입석리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가 되었다.

1951년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 작전시 뱀사골 주변의 내삼동(내령, 부운, 덕동) 주민을 소개시켰다. 이때 이주민 10여 호가 실상사와 연이어진 산줄기 주산(主山)을 개간하여 뽕밭을 조성하고 마을을 형성하여 신흥리(새동네)라 하였다. 지금은 입석리와 신흥리 두 개의 자연 마을이 입석리에 편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처음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828년(흥덕왕 3) 실상사 창건 후 많은 승려들이 드나들면서 사찰이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삼화리, 입석리, 실상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실상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자연환경]

입석리 뒤에는 1,182m의 삼정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만수천이 흐르고 있으며, 실상사가 마을에서 동남향으로 700m 되는 곳에 있다. 마을 앞 람천에는 1977년에 가설한 실상교가 있었으나 2002년 9월 1일 태풍 ‘루사’와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실상교가 붕괴할 위험성에 처하였다.

이에 원래 다리가 있던 곳에서 뱀사골 방향으로 200m 이동하여 2006년 10월에 람천교를 가설하였다. 근년에는 지리산 자락인 남원시 지리산 뱀사골 일대에 최고 5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집중 호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입석리와 신흥리는 주산을 경계로 나뉘어 있으며, 주산은 풍수지리상 와우형(蝸牛形)의 길지라고 한다. 마을에는 실상사가 자리하고 있고, 마을 뒤편 삼정산 자락에는 실상사 연수원인 화림원과 약수암이 있다.

[현황]

마을의 총 면적은 삼정산 임야를 포함하여 74.6㏊로 산내면 전체 면적의 2.8%를 차지한다. 경지 면적은 55.4㏊로 밭이 20㏊, 논이 35.4㏊이다. 입석리에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25세대 241명(남자 119명, 여자 12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비농가의 비율이 많은 편인데, 실상사 스님들의 주소가 입석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2년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안길을 확장하고 초가 지붕을 개량하였으며, 전기도 들어오게 되었고, 1976년에는 새마을회관을 건립하였으나 시설 노후와 붕괴 위험이 있어 1997년 신축하게 되었다.

1977년에는 정부 지원 사업으로 실상사 다리가 가설됨으로써 천 년 숙원을 해결하여 섬 신세를 면하게 되었으며, 1978년 교량과 접속되는 농로 200m를 개설하여 우마차가 마을까지 들어올 수 있게 되어 복지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1994년 가을에는 실상 지구와 삼화 지구의 경지 정리를 완료하여 용배수로 사업이 이루어져 경작 활동이 편리해졌으며, 2002년에 마을 뒤쪽의 논을 경지 정리하였다. 1993~1995년까지 삼화교를 가설하여 주민의 우회 도로망이 완전 개통되어 음지골이 살기 좋은 양지골로 변모하였다. 1990년대 이후 주거 문화 개선을 위한 주택 개량 사업이 입석리 쪽은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나 신흥리에서는 실상사 소유 부지 문제가 대두되어 주거 개선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실상사가 마을에서 동남향으로 700m 되는 곳에 있다. 한편 이곳에는 실상사 소유의 논 25㏊가 있으며, 농경지 대부분을 타 마을민이 들어와 경작을 하여 이 마을 주민들의 경작 면적은 그만큼 축소되어 있다. 신흥리가 주산에 많은 뽕밭을 조성하여 연간 100상자 이상의 잠견을 사육하였던 1980년대 사업들이 이제는 흔적 없는 사업장이 되고 말았다.

주민들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주로 하고, 근년에는 한약 재료인 천궁, 황기를 재배하는 한편 지리산 할매 고사리 영농법인을 설립하여 고사리를 재배하고 있다. 실상사 작은학교의 학생들과 실상사 귀농학교 귀농인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무농약 친환경 농법에 의한 농사법을 널리 행하고 있다.

옛날 차량 통행이 적을 때는 4㎞ 떨어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상거래가 많아 경제 생활권, 통혼권이 함양에 속해 언어도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유적으로는 실상사가 있으며,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실상사 석등, 실상사 부도, 실상사 삼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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