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283
한자 斗落里
영어음역 Dura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병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1.17㎢
총인구(남, 여) 148명(남자 76명, 여자 72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65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개설]

두락리는 이동마을을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아영면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가 된다. 인월면 유곡리와의 경계 능선에 가야 고분군 3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명칭유래]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마을이어서 남자들이 싸움터에 끌려가 여자들이 농사일을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고사를 지냈더니 콩농사·팥농사가 풍년이 들어 ‘콩 두(豆)’자와 ‘물이름 락(洛)’자를 써서 ‘두락’이라 했다고 한다.

그 뒤 다시 흉년이 들어 부처님께 빌었더니 ‘콩 두’자를 ‘말 두(斗)’자로 고치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하여 두락(斗洛)으로 고쳐 불렀다가 두락(斗落)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논이 많아 ‘두래기’로 불리던 것이 ‘두락(斗落)’으로 정착되었다는 설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형성 및 변천]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경주김씨 20여 호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다가 모두 괴질로 죽고 한동안 폐촌이 되었다고 한다. 그후 1200년경인 고려 후기에 전주이씨가 들어와 살다가 곧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이어서 경주이씨와 기타 성씨가 다시 정착하여 차차 마을이 번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는 현재의 마을 뒷산 기슭과 마을 앞 두 곳으로 마을이 나누어져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현 위치로 옮겼다. 괴질을 피해 새로운 터를 잡은 것이라고 한다. 운봉의 북하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월성리와 의지리, 이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남원군 아영면 두락리에 편입하였다. 1995년 시·군 통폐합 때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주위를 산이 감싸고 있으며,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산에서 감이 많이 생산되며, 풍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다.

[현황]

총 면적은 1.17㎢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65세대 148명(남자 76명, 여자 7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고랭지 감자와 배추·무 등이 많이 생산되며, 축산을 겸한 과수 영농이 발달하였다. 시군도 29번선이 마을앞 1㎞ 지점을 관통하고 있다.

[참고문헌]
  • 『남원지』(남원지편찬위원회, 1992)
  • 남원전통문화체험관(http://www.chunhyang.or.k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