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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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옮겨갔지만 70여 년 동안 남원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남원역의 뒤에는 조그만 철책 안에 ‘만인의총유지(萬人義塚遺址)’라는 조그만 돌 표지석이 서 있다. 이 자리에서 동쪽으로 100m 거리에는 남원성 북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 남원역의 구내이다. 만인의총 유지 바로 뒤쪽에서부터 남원성 북문 자리로는 남원성의 북쪽 성벽이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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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율(仲律). 충숙공(忠肅公) 문극겸(文克謙)의 후손이고, 진사(進士) 문치주(文致周)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문형(文炯)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 등을 역임하였다. 정유재란 때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의 중군(中軍)이 되어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순절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사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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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이술(而述), 호는 초곡(草谷). 관찰사(觀察使) 행촌(杏村) 박자량(朴子良)의 후예로 참의(參議) 박숭조(朴崇祖)의 손자이다. 박계성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예(禮)로써 몸을 다스려 당세에 이름을 떨쳤으며, 관직은 사직(司直)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7)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산을 털어 병기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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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서(翼瑞). 부사(府使) 박호(朴瑚)의 고손자이며, 참봉(參奉) 박인손(朴仁遜)의 아들이다. 박필남은 힘이 좋고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적병들이 숙성령을 넘어오자, 의병을 거느리고 용추동(龍湫洞)으로 들어갔다. 박필남은 낮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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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술(子述). 금남재 오응(吳凝)의 5세손이며, 영의정 오찬조(吳纘祖)의 아우이다. 무술에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정에 이르렀다. 1597년(선조 30)에 일어난 정유재란 때 왜적이 남원성을 포위하자 형인 오찬조를 따라서 숙성령으로 나아가 적병의 동정을 살피고 적병 수십 명을 베었다. 승세를 몰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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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 자는 중술(仲述), 호는 영회정. 금남재 오응의 5세손이다. 무술이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동관을 굳게 지켰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군이 남원성을 포위했을 때, 그는 남원중군으로 숙성령의 싸움에서 많은 적병을 참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