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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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형태. 남원의 지형은 중앙을 경계로 서쪽은 침식분지 형태의 남원~오수·보절 평야와 그 서쪽의 규암산지이다. 동쪽은 고원상 분지인 운봉~아영·인월 고원과 그 남동쪽의 지리산지로 구분이 된다. 이와 같은 분지상의 지형이나 고원상 분지에는 분지벽의 안부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는 주요 고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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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남원은 면적 752.12㎢, 인구 10만 3572명(2001)이다. 동경 127°21′~ 127°26′, 북위 35°22′~35°28′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 서쪽으로 임실군·순창군, 북쪽으로 장수군, 남쪽으로 전라남도 구례군·곡성군에 접한다. 북동부·동부·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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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연결하여 인간과 물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남원시는 섬진강의 중류에 위치하는 섬진강권의 핵심 도시로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동부 지역 및 경상남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1. 삼국시대 남원은 삼한시대 때 마한과 변한의 접경 지역이었으며, 삼국시대 때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따라서 정치적·군사적 요충지로서 주변 지역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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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백우(百友). 절효재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며, 호군 김업상(金業相)의 아들이다. 김만광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러 나선 남원부사가 군좌영에 왔을 때 부장에 임명되었다. 남원부사가 경내에 군사를 거느릴 만한 사람이 있냐고 묻자 모두가 김만광을 추대하였다고 한다. 김만광은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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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옥(季玉). 판서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다. 김상덕은 강직하고 지조가 있었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부의 천총(千摠) 강민하가 군사를 거느리고 운봉 황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때 영장(營將) 손명대(孫命大)가 “누가 능히 함양에 있는 적의 괴수 최존서를 포박하겠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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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회(汝晦).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예이며, 한림(翰林) 김미(金楣)의 고조손이다. 김성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판관(判官)으로 있었는데, 도탄(桃灘) 변사정(邊士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팔량치(八良峙)에서 적과 대치하여 싸워 많은 적을 베었다. 조정에서는 김성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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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시. 동남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전라북도 임실군과 장수군에 접한다. 인구는 2009년 말 현재 88,496명,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고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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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입부(立夫), 호는 홍재(弘齋). 참판(參判) 노숙동(盧叔同)의 고손자이며, 신고당(信古堂) 노우명(盧友明)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촌 아우인 진사(進士) 노사상(盧士尙)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0여 명을 모았다. 팔량치에서 왜적 수십 명을 참살한 후 의병장 김면(金沔)을 좇아 지례(知禮)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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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숙(仁淑). 승지(承旨) 강수(江叟) 박훈(朴薰)의 후손이며, 박태성(朴泰成)의 아들이다. 박상채는 천성이 굳세고 무예가 뛰어났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태정(朴泰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진사(進士) 오상복(吳尙福)을 찾아가 “적이 팔량치(八良峙)를 넘어오면 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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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엽(慶燁). 이조판서 난계 박연의 후손이며, 박성신(朴聖臣)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상을 당하자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성재, 사촌 동생 박상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진사 오상복을 따라서 팔량치에 나아가 같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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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군보(君甫). 판서(判書) 배흥립(裵興立)의 후손이며, 포도대장(捕盜大將) 배시량(裵時亮)의 고손자이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켜 경상남도 함양에 본거지를 두고 남원으로 넘어오려고 하였다. 이 때에 남원의 진장(鎭將) 손명대(孫命大)는 정치(釘峙)를 지키다가 팔량치(八良峙)로 옮겨 적의 공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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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증여. 선무랑 서응린의 후손이며, 서의명의 아들이다. 서한중은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동지 수십 명과 더불어 좌영으로 가서 김상덕(金相德)과 함께 팔량치를 지켰다. 여러 장사와 함께 경상남도 함양을 포위하여 파수꾼을 죽이고 들어가서 반란군 우두머리 최존서(崔存緖)를 사로잡았다.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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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였던 성북골은 인근에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어 마을이 성의 북쪽에 해당하므로 오랜 동안 성북동(城北洞)이라 불리었다. 1524년(중종 19)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남원에서 옮겨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로부터 약 40년 후에 김해김씨와 경주최씨 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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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역이었던 이곳에는 마을 남동쪽에 합미성(合米城)이 있어 마을이 성의 북서쪽에 해당하므로 오랜 동안 성북리 또는 성복골로 불리어 왔다. 성복골은 성 옆에 성인동과 복덕촌이 있었는데 두 마을의 첫글자를 합쳐 성복골로 불렀다고 한다. 1524년(중종 19)에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남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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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남원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군사상의 요충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한이 달궁(達宮) 지방에 별궁을 두고 정장군(鄭將軍)과 황장군(黃將軍)을 파견해 진한·변한의 침략을 막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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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재, 호는 송종. 판서에 증직된 오응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오탄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장정 수십 명을 거느리고 최여삼·태윤주 등과 함께 남원성을 지킬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아들에게 유서를 남기기를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반란군을 진압할 것이니 뒷일을 부탁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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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읍. 운봉읍은 남원시에 소속된 행정단위로, 17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동면(東面)·산내면(山內面), 서쪽으로 산동면(山東面)·이백면(二白面), 남쪽으로 주천면(朱川面), 북쪽으로 아영면(阿英面)과 장수군 반암면(蟠岩面)과 각각 접해 있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모산현(母山縣)이라 칭하여 신라의 국경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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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광양군(廣陽君) 이세좌(李世佐)의 5대손이다. 숙종 때 부사를 지냈으며, 1728년(영조 4)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운량도감이 되어 두 아들 이자간(李自侃)과 이여간(李汝侃)을 시켜서 군량을 모아 군부에 보냈다. 여러 의사(義士)들과 함께 운봉의 팔량치를 지키다가 운봉의 천총(千摠)·정준교(鄭俊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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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공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 분야. 남원시는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있는 내륙 도시로,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임실군·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 북쪽은 전라북도 장수군에 접해 있다. 남원시는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고, 섬진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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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광옥(光玉). 고려시대 상호군(上護軍) 정연방의 후손이며, 직장(直長) 정훈의 증손이다. 정희는 힘이 뛰어나게 세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의 수성장이 되어 군졸을 거느리고 팔량치에 이르러 영장 손명대와 힘을 합쳐 방어책을 마련했다. 앞장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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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지표면의 기복 형태. 지표는 높고 낮음이 있어 기복은 복잡하고 그 형태 또한 일정하지 않다. 지형의 형성에는 암석의 구성 및 성질, 지질구조, 지각운동, 기후 등이 기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지형은 인간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남원시는 한반도 서남부의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서편으로 동부에는 1,000m 이상의 소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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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여휘.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킨 진중희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진칠보이다. 진광두는 힘이 세고 병서에 통달하였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서한중과 함께 동지 두 사람을 모아서 운봉의 팔량치에서 적을 막으니 적이 감히 이 재를 넘어오지 못하였다. 그 뒤 강만하 등과 함께 함양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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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형중(亨中), 호는 매천(梅川). 진무원종공신 태상문(太尙文)의 후손이며, 통덕랑(通德郎) 태처화(太處華)의 아들이다. 태윤주는 어려서부터 말을 잘 탔고 활을 잘 쏘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마을 장정 50여 명을 거느리고 운봉(남원의 옛 이름)으로 달려갔다.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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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이(士爾). 삼중대광(三重大匡) 한난(韓蘭)의 후손이며, 통정대부(通政大夫) 한신재(韓信栽)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나이 20세였던 한팔기는 숙부 한신필(韓信弼)과 함께 좌영장(左營將) 손명대(孫命大)를 찾아갔다. 손명대는 그를 장하게 여기고 부장으로 삼아 군졸 100여 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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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에 있는 『흥부전』을 소재로 하여 만든 공원. 예로부터 남원 지역에서는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가 실존 인물이라고 전해져 옴에 따라 1992년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 고증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은 흥부가 출생한 곳이며,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유랑 끝에 정착하여 복을 누리고 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