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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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히고 햇빛을 가리는 전라북도 남원시의 특산품. 남원부채의 경우 1925년경에는 당시 조산리에 부채산업조합을 설립하여 만주와 일본 지역에까지 수출될 정도로 유명했다. 한지에 그림과 글씨로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간결하고 원만한 선으로 멋을 살린 남원의 부채는 주로 태극선과 방구부채를 제작했는데 그 품질이 우수해 전국 제일로 꼽힌다. 전라북도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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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맹례를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동계 혈족. 태씨는 중국 주나라의 태전(太顚)의 후예라는 설과 발해왕 대조영(大祚榮)의 10세손 대광현(大光顯)이 발해 멸망 후 고려에 망명하여 태조로부터 사성(賜姓)된 것이라는 설이 전래되고 있다. 본관도 『조선씨족통보』 등에서 협계, 영순, 남원, 밀양, 통천 등 23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협계(浹溪)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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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절도사(節度使) 박대손(朴大孫)의 후손이며, 밀산군(密山君) 박춘성(朴春成)의 손자이다. 박기수는 힘이 세고 병서를 두루 읽어 통달하였다. 1592년(선조 7)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형 박흥남(朴興男)과 함께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장군을 따라 이치(梨峙) 싸움에 나아가 많은 공적을 세웠다. 박기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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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찬성(贊成) 박건(朴楗)의 아들이다. 1729년(영조 5)에 경상도 밀양부 동강방에서 출생하였으며, 뒤에 부모를 따라 남원부 보현방 벌촌마을로 이거(移居)하였다 9살 때 부친이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병석에 누워 있자 그는 밤낮으로 옆에서 간병하면서 자신을 대신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친의 병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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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박안선(朴安瑄)이다. 박말선은 국상(國喪)을 당하자 마을 뒷산에 초막을 지어 3년간을 그곳에서 살면서 국상을 슬퍼하여 마치 부모상을 당한 것과 같이 예절을 갖추었다. 또한 동료나 친구의 죽음에도 3일간을 소식하며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1566년(명종 21) 명나라 황제 세종(世宗)이 승하하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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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숙(仁淑). 승지(承旨) 강수(江叟) 박훈(朴薰)의 후손이며, 박태성(朴泰成)의 아들이다. 박상채는 천성이 굳세고 무예가 뛰어났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태정(朴泰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진사(進士) 오상복(吳尙福)을 찾아가 “적이 팔량치(八良峙)를 넘어오면 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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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극(君極). 부원군(府院君) 박언부(朴彦孚)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된 박검종(朴檢宗)의 아들이다. 박세중은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용기가 있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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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상화(尙和), 시호는 충정(忠靖). 밀성군(密城君) 박언침(朴彦沈)의 고손자이고, 예조참판(禮曹參判) 박광영(朴光榮)의 손자이며. 군수(郡守) 박난(朴蘭)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나성령(羅城令) 이지(李漬)이고, 처부(妻父)는 조언국(趙彦國)이다. 박숭원은 1564년(명종 19)에 문과(별시 병과)에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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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엽(慶燁). 이조판서 난계 박연의 후손이며, 박성신(朴聖臣)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상을 당하자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성재, 사촌 동생 박상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진사 오상복을 따라서 팔량치에 나아가 같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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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칙(士則). 헌납(獻納) 박증영(朴增榮)의 고손자이며, 이조판서에 증직된 박훈(朴薰)의 증손이다. 박은종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장(部將)에 이르렀다. 이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적이 하동으로 침입해오자, 장사 300명을 모아 무기를 갖추고 구례 석주(石柱)로 나아가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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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예경(禮卿). 정국공신(靖國功臣) 좌찬성(左贊成) 밀원부원군(密原府院君) 박건(朴楗)의 7세손이고, 진사(進士) 박용현(朴庸賢)의 증손이다. 대동찰방(大同察訪) 박석봉(朴碩鳳)의 손자이며, 훈련부장(訓練部將) 박응사(朴應士)의 아들이다. 아들 박우춘(朴遇春)은 공조좌랑(工曹佐郞)이었고, 손자 박승원(朴昇元)은 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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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서(翼瑞). 부사(府使) 박호(朴瑚)의 고손자이며, 참봉(參奉) 박인손(朴仁遜)의 아들이다. 박필남은 힘이 좋고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적병들이 숙성령을 넘어오자, 의병을 거느리고 용추동(龍湫洞)으로 들어갔다. 박필남은 낮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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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석윤(錫胤), 호는 구암(龜巖). 절도사(節度使) 박대손(朴大遜)의 후손이며, 밀양군(密陽君) 박춘성(朴春成)의 손자이다. 박흥남은 어려서부터 담력이 있고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장군을 따라 이치(梨峙) 싸움에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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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사람들의 성(姓)을 이르는 명칭.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거니와 전해지는 자료도 많은 부분 소실되어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으로 고조선부터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성씨(姓氏)가 이미 단군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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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민들이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업에 종사하여 경제적 급부를 받아 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활동양식. 「도시산업구조 변화와 성장률시차분석」이라는 연구에 의하면, 남원시는 18개 도시(안성, 김포, 천안, 공주, 보령, 아산, 논산, 정읍, 김제, 나주, 광양, 김천, 상주, 문경, 김해, 밀양, 제주, 서귀포시)와 함께 농업 및 임업 부문에서 전국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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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남원 지역에서 거둔 조세미(租稅米)를 보관하던 창고. 해룡창은 사비포(沙飛浦) 또는 조양포(潮陽浦)로 불렸다. 조창(漕倉)이 설치되기 전부터 세곡(稅穀)을 수납하던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순천도호부 남쪽 10리 지점 해룡산 부근으로 나와 있다. 지금의 순천시 해룡면 해창리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조창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