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남원 출신 김주열이 없었다면 마산의 3·15는 항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우리 역사에서 4·19혁명도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산의 국립3·15민주묘역도, 서울의 국립4·19민주묘역도 없었을 것이다. 3·15의거에서 4·19혁명까지 김주열이 어떤 일들을 수행하였기에 이런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는가? 김주열(金朱烈)은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열사. 김주열은 마산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되어 4·19혁명의 영원하고 유일한 상징 인물이 된 열사이다. 김주열은 1944년 10월 7일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계(金在桂)와 어머니 권찬주(權燦珠) 사이의 둘째 아들이었다. 위로는 누이가 둘 있고 아래로 동생이 있었다. 할아버지 김태종(金泰鐘)은 해방...
『남원통신』이라는 신문을 발행한 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었던 지역 신문사. 남원 지역의 뉴스를 관공서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독자들에게 빠르게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1년 3월 13일에 전병림이 창설하였고, 당시 지방 유지 유순권·윤봉기·이규로와 제5대 국회의원 윤정구(민주당), 동양통신 전주지사장 이용재 등이 후원하였다. 남원통신사는 일...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행위. 남원시의 선거 역사는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함 소각 사건을 경험하였듯이 나름대로 치열한 정치적 역경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중앙당과 도당 체제로 변경되어 정당 활동의 주요 무대가 되지는 않지만 과거에는 각 공화국의 변천에 따라 여당, 야...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당활동. 남원시의 정당활동을 과거의 정치적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나름대로 치열한 역경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남원 지역에서는 선거사상 가장 높은 경쟁률(갑구 8명, 을구 5명)을 보였다. 선거 결과 갑구에서는 개표 도중 사회대중당과 민주당 간의 의견...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1. 해방 이후 8·15 광복 직후 남원 지역은 해방에 들뜬 채 전체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청년운동에 앞장섰던 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1945년 8월 18일 남원청년회를 결성하였다. 이들과 때를 같이하여 좌익계에서도 남원인민위원회를 조직함에 따라...
1960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있었던 투표함 소각사건. ‘투표함 소각사건’은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던 7월 30일에 일어났다. 남원 갑구 선거구에서 일어난 개표 부정 사건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군청에 진입하여 보관 중이던 투표함을 소각하였다. 이 사건으로 남원 갑구 선거위원 조갑수(趙甲洙)가 부정선거 개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