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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함 소각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241
한자 投票函燒却事件
영어음역 Tupyoham Sogak Sageon
영어의미역 Incident of Ballot Box Burni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병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투표함 소각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960년 7월 30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60년 8월 18일(민의원재선거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남원군청|광장|사거리
관련인물/단체 이병희|윤성준|이우열|양인현|김태진|강덕원 등

[정의]

1960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있었던 투표함 소각사건.

[개설]

‘투표함 소각사건’은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던 7월 30일에 일어났다. 남원 갑구 선거구에서 일어난 개표 부정 사건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군청에 진입하여 보관 중이던 투표함을 소각하였다.

이 사건으로 남원 갑구 선거위원 조갑수(趙甲洙)가 부정선거 개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고, 시위 주동자 40여 명이 형을 선고받았으며, 8월 18일 남원 갑구의 민의원재선거가 실시되었다.

[역사적 배경]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李承晩)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같은 해 6월 15일 의원내각제(내각책임제)에 입각한 개정 헌법이 공포되었다. 이어 국회의원선거법 역시 민의원(民議院: 하원)과 참의원(參議院: 상원) 제도로 바뀌어 그 해 7월 29일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초대 참의원 선거를 실시하였다.

[발단]

남원에서는 갑구와 을구로 나누어 두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을구에서는 민주당 후보였던 윤정구가 압도적 다수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그러나 무소속인 양영주(梁瑛注)·김병오(金炳午)·이형우(李亨雨)·안재준(安在準), 사회대중당 박환생(朴煥生), 자유당 조정훈(趙定勳), 민주당 양해준(梁海俊)이 겨루던 갑구에서 개표 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7월 30일 10시경 박환생이 자신과 양영주의 유효표가 무더기로 무효표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항의하면서 개표 부정이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개표는 중단되었고, 그때까지의 개표 결과는 백지화되었다. 13시경 재개표가 시작되었으나 다시 중단되었다. 도선거위원들이 남원에 내려와 중재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돌아갔다.

[경과]

이런 과정에서 20여 명의 청년과 학생들이 “우리의 주권을 지키겠다. 부정 개표의 사실을 밝히라”면서 시위를 시작했고, 군민들이 이에 호응하여, 시위 군중이 4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중 20여 명이 군수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으며, 스크럼을 짜고 군청 정원을 돌며 시위하였다.

31일 새벽에 윤인섭 등 20명을 도경 수사과에서 연행해 가자 시위대는, “①개표 득표수와 개표 결과 득표수에 큰 차이가 있다. 이는 분명히 부정이 개재된 것임으로 장본인을 색출해 내야 한다. ②연행된 시위대원 20명을 즉시 석방하라”면서 도선관위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시위를 계속하였다.

31일 밤 남원에는 도내 4개 기동대와 헌병 50여 명이 경비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23시 30분 통금 예비 사이렌과 함께 군청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통금 사이렌과 함께 재진입을 시도한다. 그리고 최류탄이 난무하는 속에서 투석전으로 정문을 돌파하여 보관 중이던 투표함을 꺼내어 불태웠다.

민의원 투표함 24개, 참의원 투표함 26개가 불탔다. 8월 1일 0시 30분경의 일이다. 불타고 있는 투표함 주변에서 시위대와 시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박수를 쳤다. 이런 와중에 경찰이 시위대원을 붙잡아 수갑을 채우고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시위대를 격분시키기도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투표함이 전국적으로 목제에서 철제로 바뀌었다.

8월 1일 08시에 시위대는 정준수(鄭濬秀) 전북경찰국장으로부터 8월 1일 정오까지 ①연행된 20명 전원 석방과 ②시위대를 수갑 채우고 폭행한 경위를 밝히겠다는 확약을 받고 해산했다.

[결과]

이후 경찰은 민주당 추천 남원 갑구 선거위원 조갑수(趙甲洙)를 부정선거 개표 혐의로 구속하고 시위 주동자 검거에 나섰다. 주동자는 이병희(李秉熙)[27세]·윤성준(尹成俊)[25세]·이우열(李宇烈)로 밝혀졌는데, 이중 이병희와 이우열은 2년 6개월 형을 받았으며, 양인현(梁寅鉉)·김태진(金泰鎭)·강덕원(姜德元) 등 40여 명이 형을 선고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시위를 주도했던 주동자들은 대체로 학생이거나 청년들이며, 정당에 가입한 사람이 없고 정치권의 사주를 받은 사실도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8월 18일 남원 갑구의 민의원재선거가 실시되어, 사회대중당의 박환생이 6,644표를 얻어서 6,589표의 민주당 양해준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시 국회의원 227명 중 민주당이 172명으로 압도적 다수였는데, 박환생이 소속된 사회대중당은 단 4명이 당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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