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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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에 간행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인 변사정의 유고 시문집. 변사정(邊士貞)[1529~1596]은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83년(선조 16)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병 2천 여 명을 사살하고, 그 공으로 1595년 첨정(僉正)으로 승진되었으나 벼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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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회(汝晦).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예이며, 한림(翰林) 김미(金楣)의 고조손이다. 김성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판관(判官)으로 있었는데, 도탄(桃灘) 변사정(邊士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팔량치(八良峙)에서 적과 대치하여 싸워 많은 적을 베었다. 조정에서는 김성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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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숙(止叔), 호는 수성재(守性齋).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감정(監正) 김취련(金就鍊)의 아들이다. 김정은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고, 옳지 못한 것을 보면 분함을 참지 못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으며,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시묘를 극진히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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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준부(俊夫), 호는 사계(沙溪). 할아버지는 호조좌랑 방귀화(房貴和)이고 아버지는 방한걸(房漢傑)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방원진(房元震)이 손자이다. 일찍이 조식(曺植)·이항(李恒)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는 나가지 않았다.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사계천 위에 집을 짓고 송시(誦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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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남원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본관은 장연(長淵), 자는 중간(仲幹), 호는 도탄(桃灘). 참판(參判)을 지낸 수정(水亭) 변처후( 邊處厚)의 5세손이며, 생원(生員) 변호(邊灝)의 아들로 1529년(중종 24)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남원의 운봉(雲峰) 도탄(桃灘)에 살았으므로 도탄선생이라 칭하였다. 일재(一齋) 이항(李恒)과 옥계(玉溪) 노진(盧禛)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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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원천마을과 입석리 삼화마을 사이 만수천에 있는 큰 폭포. 선캄브리아기의 지리산편마암복합체인 흑운모편마암과 반려암의 경계 지역으로 만수천이 람천에 합류되기 전에 산내면 입석리의 선상지성 충적 평야와 지리산지가 만나는 지점이다. 산내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역 면적을 가진 만수천 하류 지점이어서 넓은 골짜기와 풍부한 유량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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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남원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군사상의 요충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한이 달궁(達宮) 지방에 별궁을 두고 정장군(鄭將軍)과 황장군(黃將軍)을 파견해 진한·변한의 침략을 막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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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했던 문신. 정염은 1524년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는 당대의 석학 미암(眉岩) 유희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정암 조광조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것이다. 성리의 바른 학문을 공부하였고, 규암 송인수와도 교유하였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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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옹(德翁), 호는 송헌(松軒), 진취(陳就)의 후예이며, 진몽일(陳夢日)의 아들이다. 진대수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눕자 형 진희수(陳稀壽)와 함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구환(救患)하였다. 초시(初試)를 치르러 갔다가 장내가 혼란함을 보고 부끄럽게 여겨 과거보기를 단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