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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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황위(黃暐)[1605~1664]의 유고 시문집. 황위는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명성이 자자한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후손이다. 사마(司馬) 문과(文科)를 거쳐 기성서윤(箕城庶尹)에 이르렀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원에서 창의한 지사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남원 풍계사(楓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역대 충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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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 남원 문학의 대상 범위는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과 남원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그리고 남원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남원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남원 문학 대상의 조건은 첫째, 중앙 문단에 등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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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조선 전기 세종 때의 영의정 황희(黃喜)를 주벽(主壁)으로 삼아 오상덕(吳尙德)과 황위(黃暐) 3현을 배향하고 있다. 황희(黃喜)의 선조는 장수와 남원 등지에서 살았고, 부친 황군서(黃君瑞)는 개성으로 옮겨 살았다. 황희는 1363년(공민왕 12)에 개성 가조리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후기 두문동에 들어간 황희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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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촌과 곡촌, 양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촌은 문덕봉과 책여산이 바라보이는 마을 주변 경치가 좋아 산수(山水)몰이라 부르다가 산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곡촌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골짜기 곡(谷)’자를 쓴 곡촌이라 하였다. 양촌은 망태봉[해발 290m]을 뒤로하여 남쪽으로는 비홍치와 문덕봉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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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長), 호는 양진(養眞). 안렴사(按廉使) 하중용(河仲龍)의 후손이며, 도사(都事) 하극윤(河克潤)의 아들이다. 하만리는 학행이 뛰어나고 언 강에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할 만큼 효성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폄재(砭齋) 최온(崔蘊), 당촌(塘村) 황위(黃暐)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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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석여(錫汝), 호는 운계(雲溪), 무민공(武敏公) 황진(黃進)의 증손이며, 당촌(塘村) 황위(黃暐)의 아들이다. 황신구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탁월했고, 소년이 되자 이미 옛 선인들의 학문을 이해하였다. 벼슬에 뜻이 없어 은거하여 후진을 교육하였는데 많은 선비가 모였고, 고관대작들이 그의 높은 절의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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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군익(君翊).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아들이다. 황정직은 음직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무과에 급제하여 1606년(선조 39) 수의부위(修義副尉)가 되었다. 1607년(선조 40) 전주병마절제도위(全州兵馬節制都尉), 1608년(선조 41)에 옥구현감(沃溝縣監), 1611년(광해 3) 제주목판관(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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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공(武愍公).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황위(黃暐)는 황진의 손자이다. 1576년(선조 9) 2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이듬해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로 사신 황림(黃琳)을 보좌하여 군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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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인 황진의 집안에서 간직해 온 고문서. ‘황진가 고문서’는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와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세거하는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1550~1593]의 후손인 황호연(黃鎬淵)과 황맹연(黃孟淵)의 집에서 각각 보관하고 있는 장수황씨(長水黃氏) 문중의 고문서이다. 고문서는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임진공신으로 유명한 무민공 황진 장군과 그의 아들·손자가 과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