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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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선의 유고 시문집. 김선(金宣)[1564~1614]의 자는 성시(聖始), 호는 백졸(百拙)·최락당(最樂堂)이며,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백졸집(百拙集)』은 김선의 손자들인 김익환(金益煥)·김익래(金益來)·김태기(金兌淇)가 편집하여 1882년(고종 19)에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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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숙(惺叔). 고려 때의 판서(判書)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현령(縣令) 김원(金騵)의 아들이다. 김경로는 어릴 때부터 여력이 출중하고 총명하여 열심히 경전을 읽었으나, 중년에 안질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문무의 실력을 견줄 만했던 황진(黃進)과 같이 1576년(선조 9)에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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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청(子淸), 호는 월호(月湖). 고려에서 판서를 지낸 수은(樹隱) 김충한(金冲漢)의 후손이며, 장사랑(將仕郞) 퇴한재(退閑齋) 김천로(金天老)의 아들이다. 정유재란 때 순절한 판윤(判尹) 김경로(金敬老)의 조카이기도 하다. 김집은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폄재(砭齋) 최온(崔薀), 해서(海西) 오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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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옮겨갔지만 70여 년 동안 남원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남원역의 뒤에는 조그만 철책 안에 ‘만인의총유지(萬人義塚遺址)’라는 조그만 돌 표지석이 서 있다. 이 자리에서 동쪽으로 100m 거리에는 남원성 북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 남원역의 구내이다. 만인의총 유지 바로 뒤쪽에서부터 남원성 북문 자리로는 남원성의 북쪽 성벽이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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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성(密城). 호는 백헌(栢軒). 증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조부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박이(朴頤), 부는 박경(朴慶)이다. 박기화는 성품이 굳세고 절개가 꿋꿋하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학식이 깊었다. 농암(聾庵) 이현보(李賢輔)와 교제하였다.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성이 위험에 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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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수부. 조선의 개국공신 이의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병서를 익힌 뒤에 일평생 몸을 조국에 바쳐 순국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매일 장순(張巡)과 악비(岳飛), 문천상(文天祥)의 전기를 읽었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에 나주판관이 되고, 이듬해 전라방어사·충청조방장(忠淸助防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