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2년 과정의 초급 초등 교육 기관. 일제강점기에 실무 교육의 강화와 단기 교육을 목적으로 개설된 초등 수준의 교육기관이었다. 2년을 수료함으로써 끝나는 종결 교육기관으로 정규 학제와는 상관이 없는 학교였다. 1934년 이후로 일제가 보통 교육의 보급이라는 미명 하에 용인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저급한 실업 교육과 일본어 교육을 통해 낮은 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갈담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를 경안천이 흐르고 있다. 1914년에 갈월(葛月)과 파담(琶潭)에서 한 자씩 따서 갈담리라 하였다. 갈담은 옛날에 어영대장을 지낸 정찬술이 낙향하여 집을 짓고 「갈지담방 시우중곡(葛之潭芳 施于中谷)」이란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갈담을 취...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생원. 강숙지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생원으로서, 용인현에서 살았는데, 도둑 누명을 쓰고 발가락이 뽑히는 형장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더불어 그 아내도 결박당하여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이에 명확히 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신(武臣)인 포도장(捕盜將) 이종례(李宗禮)가 함부로 형장을 써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였다며 조정에서 이종례를 추고하도록...
-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원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본래 경주김씨는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상갈동·구갈동 등 기흥구의 중심권에 고루 많이 살던 대표적인 세거 성씨이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서도 명문 거족으로 서기 65년(탈해왕 9)에 경북 지방에서 태어난 김알지를 시조로 삼고 있으나 기흥구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그 중에서도 갈천공파로 불린다....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며 현재의 경기도 용인 지역은 고려시대에 용구현(龍句縣)으로 지칭되었다. 고려는 통일 전쟁 기간부터 군현의 주속 관계를 통해 지방을 지배하였다. 통일을 이룬지 4년이 지난 940년(태조 23)에는...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고종이 착용했던 오목 누비저고리. 고종의 누비저고리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高宗)[1852~1919]의 조카딸이자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인규(金仁圭) 부인이 입궐했을 때 하사받은 것으로, 후손인 김현원(金賢源)이 석주선[1911~1996]에게 기증하여 현재는 단국 대학교 석주...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
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
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결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시조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본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에 세거해 온 호족의 후예로, 신라에서 벼슬을 세습해 오다가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나라를 바치자 이에 불복하고 절의를 지켰으므로 고려 태조가 회안...
-
정신호를 시조로 하고 정응규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정씨(光州鄭氏)의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에 걸쳐 상호군(上護軍)과 봉은사진전직(奉恩寺眞殿直)을 지내고 삼중대광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의 9세손 정응규(鄭應奎)가 용인시 처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구봉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봉산은 용인시의 원삼면·외사면과 안성시 고삼면의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용인시에 있는 산 중에서 높은 산에 해당한다. 예부터 산세가 뛰어나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다. 구봉산이라는 명칭은 봉우리가 아홉 개라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구봉산 앞에는 무학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이 춤을 추는...
-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로 용인에서 성장한 인물. 본관은 김해. 증조부는 김진후(金震厚)[비오, 1738~1814], 할아버지는 김택현(金澤鉉),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냐시오, 1796~1839]이고 어머니는 장흥고씨 우르슬라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김재복(金再福), 족보에 올려진 이름은 김지식(金芝植),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이름은 김대건(金大建), 세례명은 안드레아이...
-
일제강점기 용인소년회가 개최하였던 교육 행사. 김량동화회는 1920년대 이후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된 소년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된 교육 행사이다. 당시 소년운동은 유교 윤리의 폐습과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으로부터 조선의 소년·소녀들을 해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근대 교육을 통하여 소년·소녀들이 자유로운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반봉건 근대화운동이자, 반일민족운동으로 전개되었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법정동. 고려시대에는 김령역이 조선시대에는 김령역과 김령원이 있었다. 이곳에 시장이 서던 까닭에 김령장으로 불렸는데, 뒤에 소리가 변해 지금의 김량장이 되었다. 또한 김량(金良)이라는 사람이 처음 시장을 연 까닭에 그의 이름을 따서 김량장이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용인군 수여면(용인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
경기도 용인시의 의령남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남은·남재 관련 고문서. 「남은유서분재기부남재왕지(南誾遺書分財記附南在王旨)」는 조선의 건국공신인 남은(南誾)[1354~1398]의 재산 상속문서인 분재기(分財記) 형식의 유서 한 점과 남재(南在)[1351~1419]에게 내려진 왕지(王旨) 한 점을 말한다. 남은은 조선을 건국할 때 공을 세워 1등공신...
-
경기도 용인시에서 불리는 장례의식요. 「회방아 소리」로도 불리는 「달구질 소리」는 장례 의식 때 관을 묻고 달구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용인 지역에서 불리는 「달구질 소리」는 답산가류의 산천풀이와 유택(幽宅) 명당풀이로 이루어지는데, 메기는 소리의 사설은 상여 소리와 큰 차이가 없다. 1983년에 출간한 『내 고장 민요』에 처인구 호동에 사는 김익채(남,...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덕온공주가 입었던 겹당의. 덕온공주 당의는 조선 제23대 순조(純祖)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1822~1844]가 입었던 자적 수복 문자(紫的壽福文字) 직금(織金) 겹당의로 치마저고리 위에 입는 소례복이다. 덕온공주는 1829년(순조 29) ‘덕온’ 작위를 받았으며, 18...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덕온공주가 생전에 사용했던 생활 용품. 덕온공주 유물은 조선 제23대 순조(純祖)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1822~1844]가 사용했던 유물로 자라줌치 노리개 1점, 댕기 4점, 빗 8점, 화장도구 6점, 보자기 6점, 재봉 도구 2점, 기타 6점 등 총 33점의 생활 용...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덕온공주가 생전에 입었던 예복과 평상복. 덕온공주 의복은 조선 제23대 순조(純祖)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1822~1844]가 입었던 원삼, 당의, 장옷 등의 예복 각 1점과 삼회장저고리 1점, 누비 삼회장저고리 2점 등의 평상복이다. 덕온공주는 1829년(순조 29)...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이거나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용인의 독립운동가는 의병부대 및 항일 무장단체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 밖에도 언론·외교 활동을 통해 국권 피탈의 상황을 국내외에 알려 독립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어갔다. 우선 의병부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보면, 용인 지역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활약한 임옥여·정...
-
조선 후기 숙종이 조광조의 문집인 『정암집』을 읽고 지은 어제시(御製詩). 「독정암집유감(讀靜庵集有感)」은 1990년 『용인군지』에서「정암집을 읽고 느낌을 적다」로 번역 소개되었다.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1661~1720]이 『정암집(靜庵集)』을 읽고 난 뒤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도덕과 절의를 칭송하여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작품이다. 민...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여종. 조선 중종(中宗)[1488~1544] 때 용인에 사는 이수손(李守孫)의 여종으로서, 이수손이 아내 김씨와 아들 이균(李均)·이돈(李墩)에 의하여 살해당하자 이에 연루되어 관가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이때 막덕의 공초(供招)에 의하면, 김씨가 아들 이균·이돈과 공모하여 이수손을 살해하였다고 하였고, 안성(安城)에 살다가 죽은 유운(柳雲)의...
-
능원마을은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속하는 마을로 용인 지역의 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은 광주(廣州)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같은 리(里)에 속하는 우명동 마을이, 동쪽은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陵坪里)와 이웃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오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을 제외하고 구릉성 산지로 막혀 있는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43번 국도가 동서를 관...
-
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자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문화류씨의 본향은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이며, 시조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 내지 12세손 대에서 14파로 크게 나뉘는데, 류량을 파조로 하는 충경공파(忠景公派), 류만수(柳曼殊)를 파조로 하는 좌상공파(左相公派), 류관(柳寬)을 파조로 하는 하정공파(夏亭公派), 류원현(柳元顯)을 파조로...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시각 예술 행위 및 그 결과물. 용인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아오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미술 문화가 전개되었다. 이는 남겨진 유물이나 문헌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용인의 경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미술 활동의 흔적이 드물지만, 고려시대부터는 불교 미술이나 공예 면에서 중요한 자취들을 남겼다. 조선시대에 들어 용인이 사...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호조판서 민겸호(閔謙鎬)의 아들이다. 백부(伯父)인 여성부원군 민태호(閔泰鎬)에게 입양되었다. 1877년(고종 14)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정자(正字)·검열(檢閱)·설서(說書)·수찬(修撰)·검상(檢詳)·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 동부승지를 거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약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약 200~250종이 자라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경에 익는다. 마을 어귀나 동네의 정자목으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2m, 가슴 직경은 1.18m이며, 수령은 약 200년 정도이다. 지상 4m 정도...
-
일제강점기 개신교 순교자. 염광(塩光) 박관준은 1875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출생하였다. 1900년경 개신교 신자가 되었으며, 한방 의술을 배워 1917년 조선의생(朝鮮醫生: 지금의 의사) 면허를 받고 개업하여 193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십자의원을 운영하였다. 개천교회(价川敎會) 장로로 재임하던 중 1935년경부터 일제가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
-
조선 후기 용인에 거주한 귀화인. 북쪽 오랑캐 출신으로 광해군 초에 조선에 귀화하여 용인의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길가에 7~8년 거주하였는데,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하 16~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을 한다고 칭하면서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을 일삼았다. 또한 읍내의 원전(元田)을 빼앗아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
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 항아리 및 태지석.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은 1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이다. 태항아리란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胎)를 담은 항아리를 말하며, 이 태항아리와 주인공의 이름, 생년월일을 기록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1991년 1월 25일 보...
-
1896년 1월 경기도 이천의 백현에서 이천 의병과 일본군 수비대간에 벌어진 전투.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서도 의병이 일어...
-
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두암산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정암 조광조, 방은 조광보, 회곡 조광좌, 음애 이자 등이 모여 학문을 논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을 사은(四隱)이라 한 것은 정암, 방은, 회곡, 음애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도의(道義)로써 사귀어 더불어 즐거워하고, 농사 짓고[耕], 나무하고[薪], 낚시질하며[釣]...
-
지곡동으로 향하는 삼거리에는 좌우로 큼지막한 주유소가 있다. 좌회전은 지곡동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직진은 화성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그 삼거리 오른쪽 주유소 옆에는 작은 글씨로 ‘사은정’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50m쯤 올라가보니 아늑한 전통 정자가 나온다. 사은정은 조선 중종조의 학자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 선생이 종...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우리나라 불교는 중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의 순으로 수용되었는데,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전진의 아도와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들어와 불법을 전한 것이 시초이다. 당시의 용인 지역은 백제의 영역이었는데, 백제는 384년(침류왕 1)에 동진(東晋)에서 온 호승(胡僧) 마라난타로부터 불교...
-
목효기를 시조로 하고 목종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고려 때 낭장(郞將)을 지낸 목효기(睦孝基)이다. 고려시대에는 목충(睦忠)·목인길(睦仁吉)·목자안(睦子安) 등이 왜구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웠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목세칭(睦世秤)과 그 자손들이 목씨를 중흥시켰다. 아들 목첨(睦詹)은 선조 때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목첨의 아들 3형제가 문과에...
-
황석주를 시조로 하고 황윤충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국 황씨의 원시조는 중국 후한(後漢)의 유신(儒臣)이었다는 황락(黃洛)으로 전해온다. 그는 서기 28년(건무 4년)에 후일 평해구씨의 시조가 되는 구대림(丘大林)과 함께 교지국(交趾國)에 사신으로 가던 길에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착해 그곳에 자리잡고 살았는데, 이것이 황씨의 기원...
-
전통시대에 사족(士族)과 백성이 설립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서당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가 증대된 것은 16세기 사림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하는 것으로, 중종(中宗)대 사림파의...
-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동림리와 포곡읍 신원리에 걸쳐 있는 산. 남서쪽으로는 368고지·402고지·385고지를 거쳐 향수산[457.1m]으로 연결되고, 남쪽에는 신원저수지가 있으며, 이 물은 신원천을 따라 흐르다가 경안천으로 유입된다.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317고지·박석고개를 거쳐 구만이산으로 연결되며, 동쪽의 유수는 매산천을 따라 흐르다가 능원천에 유입된 뒤 경안...
-
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송언신의 초상화. 사모와 단령(團領)을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2000년 여산송씨 호봉공 종회에서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송언신(宋言愼)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과우(寡尤), 호는 호봉(壺峰)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천주교도들의 의례 및 집회 장소. 기독교 초창기 신자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성당이 없고, 다만 공동으로 모여 기도하고 학습하는 장소가 있을 뿐이었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성당 건물은 모습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갖추어진 공간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전례의 중심이 되는 중앙의 제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진목리 신촌 북쪽에서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안성시의 백련봉에서 발원한 성은천 본류는 성은저수지 및 성은저수지에 유입되었다가 계속 북류하여 용인시 남사면 경계에서 안성시 원곡면 성주리 천덕산[320m]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용인시 남사면 원암리로 흘러오는 원암천을 외암동에서 합류한 뒤 전궁리 신촌 서쪽 들판 한가운데를 지나 진...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광교산 골짜기에 있는 천주교 성지. 손골은 예로부터 향기로운 풀이 많고 난초가 무성하여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의 손곡(蓀谷)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손골은 주민들 사이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 즉 ‘성교촌(聖敎村)’이라고 불렸는데, 이요한과 그의 아들 베드로, 손자 프란치스코 삼대는 손골에서 지내다 병인박해 때 피신하였고 1871년에 순...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호는 대은(大隱).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全書) 송광우(宋匡祐)이다. 고려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자 낙향하였으나, 조선이 개국된 뒤에 다시 관직에 나왔다. 1417년(태종 17) 6월 형조정랑(刑曹正郞)에 있으면서 황단유(黃丹儒)의 자손인 박은·박자청(朴子靑)·조원(曹瑗) 등과 박송비(朴松庇)의 자손인 정...
-
일제 강점기 용인에서 활동한 친일파 함경남도 장진 출신이다. 구한말 양지현감으로 부임하여 용인과 인연을 맺었다. 본관은 은진(恩津). 호는 제암(濟庵). 아버지는 율학훈도 송문수(宋文洙)이며, 아들은 송종헌(宋鍾憲)이고, 손자는 송재구(宋在九)이다. 송종헌은 송병준 사후 백작의 작위를 이었고 양지면장을 지냈으며, 손자도 양지면장을 지냈다. 함경남도 장진(長津)...
-
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선장산 수리봉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신원저수지에 유입되었다가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포곡읍 가실리와 신원리, 모현읍 능원리 경계에 있는 수리봉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신원저수지를 거쳐서 계속 동류하여 경안천 본류에 유입되는 하천으로 하천 연장은 3㎞, 유로 연장은 4㎞, 유역 면적은 8.9㎢이며, 2급 하천이다....
-
강지연을 시조로 하고 강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강씨의 득성조(得性祖)는 중국 주나라 왕족인 강숙(康叔)으로 전하며 시조는 그의 후손인 강호경(康虎景)이다. 신천강씨는 강지연(康之淵)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고려 명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몽골 침략으로 강화로 천도할 때 왕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고 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
조선 후기 성영우가 심곡서원을 배알하고 난 뒤의 감회를 적은 오언율시의 한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은 기묘명현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학덕을 기리는 서원으로, 조선 명종 때 사액되었다. 따라서 용인 지역의 유림은 물론이고 전국의 유학자들이 찾아와 배알하며 감회를 시문으로 남겼다. 「심곡서원에 배알하며」도 그중의 한...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시대 지방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면서 이전에 충청도 지역을 1314년(충숙왕 1) 양광도라 개칭하였다. 현재의 충청남도·충청북도 일원과 강원도 일부 및 고려시대 용인 지역의 명칭이었던 용구현(龍駒縣)을 포함한 경기도 남부 지역이 해당된다. 『고려사』「지리지」와『세종실록』「지리지」에 실려...
-
1497년(연산 3) 홍귀달이 지은 용인현에 있었던 양벽정의 기문. 『신증동국여지승람』「용인현」 ‘누정(樓亭)’에 전하는 작품으로, 용인현감 김우(金祐)의 부탁으로 홍귀달(洪貴達)[1438~1504]이 지어준 기문(記文)이다. 조선 성종 때 김우(金祐)가 용인현감으로 부임하여 잘 다스렸음을 칭송하고, 객헌(客軒) 동쪽에 있던 정자 터에 새로 정자를 짓고 ‘양벽...
-
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권근의 시문집.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은 조선 전기 태종 대의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시문집으로, 1674년(현종 15)에 중간한 후쇄본이다. 19권 4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이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27.5㎝이다. 『양촌선생집』은 원...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집(聖執), 호는 일재(一齋). 어약우(魚若愚)의 아들이다. 어윤중은 9세에 어머니를,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밤에는 독서를 하였다. 20세 때인 1868년(고종 5) 지방유생 50명을 뽑아 바로 전시(殿試)를 볼 수 있는 칠석제(七夕製)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86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
-
1933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일대의 소작농들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일으킨 소작쟁의. 1930년대 초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로 인해, 조선에서는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의 부채가 가중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1930년대 경기도 용인시의 농민운동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본격화되었다. 1930년대 경기도 용인시의 경작면적은 경기도 전체 면적에 비해 매우 영세한 규모였으...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석형(李石亨)과 이원발(李元發)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이무(李茂)이다. 본래 당나라 사람으로 백제를 침공할 때 소정방을 따라온 장수였다고 한다. 지금의 황해도 연안(延安)을 지키다가 당이 측천무후의 전횡으로 어지러워지자 신라에 귀순하였다. 김유신의 주청으로 연안을 식읍으로 주어 연안후에 봉해졌다. 저헌(樗軒) 이석형, 이...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광조를 모신 서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원년)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 등을 임금에게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성씨.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이는 일종의 칭호로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고려 중기부터라고 하는데,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성에는 본관(本貫)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관(...
-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있었던 광산. 일제강점기 용인의 대표적인 광산이었으며 1960년대까지 있었다. 광산의 위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사암리를 중심으로 고당리와 미평리 일대에 걸쳐 있었다. 광산의 개발로 원삼면의 중심지였던 사암리 안골은 광산 임금 노동자, 일본인 광산업자와 기술자 등의 유입으로 인구가 급격히 늘기도 하였다....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석농(石儂), 자는 경집(敬集)이다. 유근은 1898년 5월 남궁억·나수연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5년 11월에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매국 관료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황제와 각부 대신들을 협박한 사실...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근영은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여 「독립선언문」을 읽고 3월 5일 남대문역(서울역)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날 만세 시위에서 그는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남대문을 지나 조선은행 옆까지 갔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는 조선독립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선돌군. 유운리 입석군의 건립 동기에 대하여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첫째,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과 함께 왜군과 싸워 평양 수복에 큰 공을 세운 이일 장군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일 장군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는데,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양쪽 겨드...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국보 9점, 보물 37점과 경기도에서 지정한 경기도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용인시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 보물 9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8점을 집중 관리·소개하고 있다. 광교산 동쪽 서봉사(瑞峰寺) 터에 있는...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청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신 윤섬과 그 손자 윤계의 정려문. 윤섬의 본관은 남원이고, 호는 과재(果齋)이다. 1583년(선조 16)에 문과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거쳤으며, 1587년(선조 20)에 조선 왕실의 세계(世系)가 명나라에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宗系辨誣) 사건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공을 세워 수기광국공신...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문신이자 서화가인 윤용구가 남긴 복식 유물. 윤용구 유물(尹用求遺物)은 조선 제23대 순조(純祖)의 셋째 딸 덕온 공주(德溫公主)[1822~1844]의 남편인 남령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의 양아들 윤용구(尹用求)[1853~1939]가 생전에 입었던 현녹색 겹...
-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재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남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문헌에는 57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영양·의령·고성 3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상세히 알 수 없다. 이들 세 본관은 모두 같은 시조에서 분파한 혈족으로 남민(南敏)을 시조로 삼고 있다. 남민은 원래 중국 봉양부 여남(汝南)[지금의 하남성 여남현] 사람으로 본명은 김충(...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의원군 이혁 일가 묘에서 나온 출토 유물. 의원군 이혁 일가 묘 출토 유물은 1999년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위치한 의원군(義原君) 이혁(李爀)[1661~1722] 일가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130종 181점의 복식과 서간(書簡)·지석(誌石)[죽은 사람의 행적을 적은 돌] 등...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
조선 후기 용인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정종(定宗)의 열 번째 아들 덕천군(德泉君)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좌승지 이진하(李鎭夏)이다. 이규헌(李奎獻)[1669~1731]은 1705년(숙종 3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가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하여 병간호에 전념하였다. 한겨울 아버지가 잉어찜이 먹고 싶다고 하자 20리나 떨어진 곳을 찾아가 잉어...
-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이맹석은 조선 세종 대에 경기도 용인현에 살았다. 할아버지 이도을(李都乙)이 서울에서 죽었는데, 이맹석의 아버지가 종기가 심해 거의 죽게 되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다. 그러자 이맹석이 아버지를 대신해 예의에 맞게 염(殮)하고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무덤 앞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 후 부모가 사망하자 이맹석은 몸소 찬...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판서를 지낸 이광시(李光時)이고, 할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사위(李士渭)이고, 어머니는 지군사(知郡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윤보(尹寶)의 딸이었고, 사별한 뒤 판관(判官) 권경(權敬)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아들은 증이조참...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평은(平隱).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仲仁)의 맏아들이다. 이사영(李士穎)[?~1406]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淸州牧使), 안동부사(安東府使), 형조전서(刑曹典書)를 거쳐 1391년(공양왕 3) 밀직사우대언(密直使右代言)에 임명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격살된 후 당여(黨與)로 몰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
-
고려 후기 용인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곡(南谷).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이송현(李松賢)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경덕재생(慶德齋生)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영천윤씨(永川尹氏) 윤취(尹就)의 딸이다. 이석지(李釋之)는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41년(충혜왕 2)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진사(進...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부인은 박호(朴濠)의 딸이다. 이숙(李䎘)[1626~1688]은 인조 대부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 35년간 활동...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쌍계(雙溪).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는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있다가 물러나 용인현에 은거하며 조선 건국의 혼란기를 벗어났던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이안직(李安直)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판의금(判義禁) 유호(柳滸)의 딸이다. 동생은 제주선위...
-
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이종겸은 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
-
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찬조는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무신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별천선전관(別薦宣傳官)으로 인조(仁祖)를 남한산성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이 후 의병을 이끌고 지금의 성남시 세곡동에 이르렀을 때 적군인 청군(淸軍)에게 포위되었다. 민진익(閔震益)과 함께 힘을 다해 싸워 여러 명의 적군을 죽...
-
1896년에 경기도 용인 지역 의병들이 참가하여 벌어졌던 전투.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 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하락(金河洛)은 1895년 11월 17일, 이천에서 전부...
-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주민수 또는 집단. 용인시는 수도권 남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1960년대까지는 인구 10만 이하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1960년 중반부터 시작한 이촌향도로 인구가 일정 기간 감소하였으나, 영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에버랜드와 양지파인리조트 등과 같은 위락시설이 입지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10만 명을 넘어...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용인은 경기도의 남부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로, 극동은 백암면 고안리, 극서는 수지구 고기동, 극남은 남사면 원암리, 극북은 수지구 고기동이다. 용인은 서울에서 동남 쪽으로 30㎞ 떨어진 도시로 행정구역상 동쪽은 이천시와, 서쪽은 수원·의왕·화성시와 접하고 남쪽은 안성시, 북쪽은 성남 및 광주시와 접하고 있다....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용인의 역사. 경기도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서울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의병 운동, 물산 장려 운동 등과 같은 반일 민족 운동이나 소년 운동, 청년 운동 등과 같은 반봉건적 근대화...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
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언념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에 있는 지명이다.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이도는 본래 공주에 세거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통합삼한개국익찬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순수와 이은동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신라 때 사공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1세손이다. 전주이씨는 조선왕조의 건국으로 확고부동한 대성의 지위를 차지했으며 본관을 기준으로 할 때 3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정낙용은 조선 철종 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활동한 문신 관료로, 철종 대에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일제시대에는 남작의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구(景龜). 방어사(防禦使) 정인기(鄭寅基)의 아들이다.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
경기도 용인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 등에게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 충, 효, 열행을 표창하기 위하여 정문을 내리는 국가의 특전을 작설지전(綽楔之典)이라고 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예전편」을 보면, “절의와 선행이 있는 자는 장권한다. 효자와 조부모의 봉양에 성심을 다한 손순(遜順), 절부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 자, 우애와 화목을 지켜 칭송을...
-
충렬서원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말기에 그려진 고려 후기의 문신 정몽주의 초상화. 원래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은 1390년(공양왕 2)에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녹봉될 때 그려진 공신도상(功臣圖像)이라고 하나, 현전하는 작품은 모두 그 후대에 이모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초상화는 보물 제1110호로 지정된 인조기사모...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정선의 그림과 화첩. 『정선필 해악 팔경 및 송유 팔현도 화첩』에는 정선(鄭敾)[1676~1759]이 금강산을 그린 산수화 8면과 송대 유학자의 고사를 그린 산수 인물화 8면이 들어 있다. 산수화는 「단발령(斷髮嶺)」, 「비로봉(毘盧峰)」, 「혈망봉(穴望峰)」, 「구룡연(九龍淵)」, 「옹천(甕遷)」, 「고...
-
충렬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1929년 간행된 조광조의 문집.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의 정고본(定稿本)은 조선 중기에 이기주(李箕疇)가 수집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유문(遺文)·사적과 이선(李選)이 수집한 유문, 5대손 조위수(趙渭叟)의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모아 박세채(朴世采)가 교정·편차하고 부록과 연보를 붙인 것을 말한다. 그후 조...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효자. 조선 선조 때 출생하였고, 관직은 전력부위(展力副尉)에 올랐다. 부친이 병을 얻었을 때 동짓달에 생대추가 먹고 싶다고 하자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축원하였더니 이튿날 아침에 생대추가 붉기 시작하였고, 또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찾아 가는 길에 꿩의 무리 중 한 마리가 높이 날아 올라갔다가 그 앞에 떨어졌다. 또...
-
경기도 용인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해방이전까지 용인 지역의 정치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권력 작용, 즉 국가의 지역 주민에 대한 일방적인 통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일찍이 백제의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을 도읍지로 하여 건국한 이래 용인 지방은 백제의 영토에 귀속되어 오랫동안 백제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용...
-
1707년(숙종 33) 숙종이 정몽주의 절의를 칭송하며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세 편. 「정포은(鄭圃隱)」은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1661~1720]이 지은 어제시(御製詩)로,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영당(圃隱影堂) 벽에 오태주(吳泰周)의 발문이 함께 시판(詩板)으로 걸려 있다. 오언절구의 한시 작품으로,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1904년 2월,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시켰으며, 5월 말에는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1905년 들어 일본은 청과의 봉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화시켜 11월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외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조비산 정상부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조비산 유물산포지는 해발 294m의 조비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조비산은 융기로 인해 형성된 암산으로 산정부에는 약간의 평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암반이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다. 산 정상 조금 못 미쳐 있는 큰 암석 하단부에서 무문양...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사의 사당. 조사(趙師)의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로 태조의 생질이다. 태조가 조선 개국 후 중추부사를 제수하였으나, 고려 공양왕 밑에서 벼슬한 일을 내세워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양양(襄陽)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죽기 전에 후손에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
조선 전기의 문신. 조연(趙捐)[1374~1429]은 벼슬에 나간 뒤 파천된 일이 없었고 4대조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재화를 탐하지 않고 국정에 힘썼다. 문신이면서도 야인 정벌에 무공을 떨치기도 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여정(汝靜), 초명은 조경(趙卿). 아버지는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이고, 어머니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친인 환조...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연의 사당. 조연(趙涓)[1374~1429]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1386년(고려 우왕 1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392년(고려 공양왕 4)에 봉상대부 공조정랑에 올랐다. 조선 태조 즉위 후 별운검이 되고, 1409년(조선 태종 9)에 길주도안무찰리사 겸 길주목사가 되어 변방의 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좌전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좌전고개의 유래」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포(朴苞)[?~1400]와 관련되어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박포는 조선 전기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의 조전절제사로 전공을 세워 죽성군에 봉해지고 중추부지사가 되었으나, 상작이 낮다고 불평하여 이방원의 미움을 사서 죽...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와 원삼면 좌항리에 걸쳐 있는 고개. ‘좌전(左田: 고개 남쪽의 마을 이름도 좌전임)’으로 변음되어 있었으나 1995년 일제식 지명을 정비할 때 ‘좌찬’으로 표기하도록 하였다. 좌찬고개는 본래 조선조의 관직명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연혁집』에 보면 ‘조선 정종 때 무장 박포(朴苞)가 정도전 난 때에 이방원을 도와 큰 공을 세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좌항리는 원삼면 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양지면과 맞닿아 있다. 좌항리는 황골[항곡]·좌찬[좌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좌찬의 ‘좌(佐)’자와 항곡리의 ‘항(恒)’자를 따서 좌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황골은 이곳 형상이 “마을을 품은 학 같다”고 해서 학곡(鶴谷)으로 불리다 황골이 됐다는 설이 있...
-
안영의(安令儀)와 안원형(安元衡)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죽산안씨는 구죽산과 신죽산 두 파가 있는데, 구죽산의 시조는 고려의 상서좌복야 안영의(安令儀)이고, 신죽산의 시조는 안향의 증손인 시중(侍中) 안원형(安元衡)이다. 구죽산에서는 고려시대에 공민왕의 국구로서 우문관대제학을 지낸 안극인(安克仁), 그의 아들로 도순문사(都巡問使)를 지낸 안숙...
-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환관. 양지현(陽智縣)에서 태어난 진입(眞立)은 일찍이 명나라에 건너가 선종(宣宗) 황제 때 환관(宦官)이 되었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5세기 전반으로, 명나라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두텁게 받아 조선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성품이 순박하고 정직하여 황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하는데, 조선과의 관계도 원만하였다. 아버지는 진익생(眞益生)...
-
처인성은 현 행정구역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2리 산 43번지에 있는 성곽이다. 면적은 약 1,764㎡(5,820평)이며, 둘레는 425m이다. 북측면 좌측에 문대(門臺)가 있고 남쪽 면의 서측에 후문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으나 1979년 복원공사 때 이 부분을 절단하여 연대 등을 조사한 후 복토하여 지금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붕괴가 심하여 정확한 축조공법은...
-
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17세기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과 만나 서양의 과학 기구와 각종 서적들을 얻어 가지고 귀국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양 선교사들과 공식적으로 접촉하는 출발점이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서적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친구 이벽에게 자신이 얻어온...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일어났던 청년들의 사회 운동. 1920년대 청년운동은 3·1운동 이후 대중운동이나 사회운동이 전국적으로 조직화되는 흐름 속에서 출현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의해 국내의 계몽운동과 교육·언론 활동이 탄압받던 분위기와 달리 3·1운동 이후에는 국내 보통학교 수가 증가하고 야학 등의 교육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각지의 청년 단체들이 결성되는 정...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 청덕동이라는 이름은 수청동에서의 ‘청’자와 덕수동에서의 ‘덕’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동변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청동·덕수동·읍내면의 언동(彦洞) 일부를 합쳐 청덕리라 하여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었고, 2000년 9월 1일...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 문수봉 동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안성시 일죽면과 이천시 장호원읍을 거쳐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남한강의 한 지류인 청미천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독조봉 건지산[410.4m]과 사암리 문수봉 및 어두니고개[446.8m] 산록에서 발원하는 10여 개의 지천들을 합류하여 일단 원삼면 사암리의 용담...
-
이지란을 시조로 하고 이문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청해이씨의 시조는 조선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퉁두란으로서 아버지에 이어 천호가 되었다가 원나라 말기 고려 공민왕 때 많은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북청에 거주하면서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어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올라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
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
-
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 340m 고지 서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 88골프장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삼거교 부근에서 북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서 낙생저수지를 수원으로 하여 왼쪽에서 흘러드는 동막천(東幕川)에 합류한다. 다시 이매동에서 중천(中川)을 합하여 계속...
-
경기도 용인을 관적으로 하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15세기에 존재한 전국의 성씨 종류와 본관의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용구현 토성으로 진(秦)·이(李)·송(宋)·용(龍)·엄(嚴) 등 5개와 처인현 토성 이(李)·서(徐)·지(池)·섭(葉)·김(金)·강(康) 등 6개를 나열하고 있다. 또 양지...
-
1910년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실시된 일제의 토지 소유권 조사사업.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면서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 1908년 「토지가옥소유권 증명규칙」 제정 등 토지 침탈을 위한 각종 제도적 정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만으로는 완전한 의미의 토지 소유권을 보장하고 토지를 상품화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소유권을 보호하기...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세기 초반 조선의 조정에는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통론(嫡統論)을 내세워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일전에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던 유영경 일파가 몰락하고 대북정권(大北政權)이 들어섰다.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선조의 첫째 왕자 임해군을 제거하...
-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위치하고 있는 학일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원삼면의 문촌리 일부와 양지군 목악면 학일마을 지역을 통합하여 만든 마을이다. 마을에는 2007년 현재 50가구에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38가구에서 38대의 PC를 보유하고 있는 정보화마을이다. 학일마을은 현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용인의 기타 지역에...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육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양조씨의 시조는 고려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이다. 한양조씨 가문에서는 조선 개국공신이 2명이 배출되었는데, 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趙仁沃)과 태종 때 찬성사를 지낸 조온(趙溫)이다. 한양조씨 가운데서 가장 번창하였던 가문은 판도판서 조인벽(趙仁璧)의 아들 4형제의 후손이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소례복. 항아 당의(姮娥唐衣)는 안깃의 안쪽에 ‘뎡유듕추길례시뎌동궁고간이류구’라는 명문이 있어 1837년(정유년) 8월 13일 남령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에게 하가한 덕온 공주(德溫公主)[1822~1844]의 혼례 때 입은 당의였음을 알 수 있다. 덕온 공주는 조선 제23대 순조(...
-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
1636년 1월 2일 경기도 용인에서 충청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싼 청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벌인 전투.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한성-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거점 방어를 하여 청군을 격퇴할 것을 구상하고, 이 거점들의 방어 태세를 정비하는 한편, 각도 첨사·병사에게 근왕(勤王)을 명령하였다. 그런 다음 비빈(妃嬪)·왕자·종실 및 백관(百官...
-
조선 후기 기호 지역에서 일어난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 논쟁.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등을 지지한 이들이 충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므로 호론(湖論)이라 하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이재(李縡)를 지지한 이들은 서울·경기 낙하(洛下) 지역에 주로 살았으므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호는 겸제(謙濟). 증조부는 황징(黃澄)이며, 조부는 황준원(黃浚源)이고, 외조부는 조계상(曹繼商)이다. 아버지는 황순경(黃舜卿)이고,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준(尹濬)의 딸이다. 황림(黃琳)[1517~1597]은 1552년(명종 7) 식년시(式年試)에서 을과 4인으로 급제하여 1562년(명종 17) 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