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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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禮山修德寺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腹藏遺物 |
이칭/별칭 | 수덕사 목조삼세불좌상 일괄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용환 |
제작 시기/일시 | 1639년 -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풍국사의 대웅전과 보광전에 모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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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발굴 시기/일시 | 2003년 -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개금 과정에서 복장유물 발견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03년 -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중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개금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11월 14일 -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38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재지정 |
현 소장처 | 수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
복장 유물 소장처 | 수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
성격 | 불상|불교 유물 |
재질 | 목조 |
크기(높이) | 147~187㎝[삼세불좌상 높이]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의 수덕사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불상과 불교 유물들.
[개설]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된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에 모셔져 있는 삼세불상[석가불, 약사불, 이미타불을 조합한 세 부처의 상]과 복장유물, 연화대좌, 불상을 모셔 놓는 단인 수미단(須彌壇) 등을 일컫는다. 수덕사 목조삼세불좌상 일괄이라고도 불린다. 2003년 11월 14일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38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불상을 만들 때의 기록인 「아미타존상 신조성 복장 발원 동참기(阿彌陀尊像新造成服藏發願同參記)」에 의하면,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39년(인조 17) 전라도 남원 만행산(萬行山)에 있었다고 하는 풍국사(豊國寺)의 대웅전과 보광전에 새롭게 모셔진 불상으로서 유연(惟演) 등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발원문 가운데에 “화원(畵員) 수연 비구(守衍比丘), 영철 비구(灵澈比丘), 성민 비구(省敏比丘), 사인 비구(思忍比丘), 신관 비구(信寬比丘), 명혜 비구(明惠比丘), 인종 비구(印宗比丘)……”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수연을 비롯한 일곱 명의 화원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만행산의 풍국사에서 같은 만행산의 귀정사(歸淨寺)로 옮겨지고 나서, 그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수덕사를 다시 크게 일으켜 세운 중흥조인 만공(滿空)[1871~1946]이 귀정사에서 옮겨와 모신 것이라고 한다. 수덕사 대웅전으로 이전되어 현재까지 봉안되고 있다. 풍국사는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그 터만 전하고 있으며, 귀정사 또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다.
[형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높이 147~187㎝ 정도의 불상 셋이 있는 형식이며,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본존불(本尊佛)로,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뻗어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상체와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여 굽어보는 듯한 자세에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고 있어 건장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삶과 죽음을 윤회하는 인과(因果)를 나타내며 불상에서는 목에 세 개의 선을 오목새김하는 형식으로 나타냄]가 있다.
석가모니불 양 옆의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눈·입·코의 표현, 양손과 옷주름 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아미타불은 약사불과 손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복장 유물은 2003년 삼세불상에 다시 금칠을 할 때 발견된 것으로, 전적류·후령통(喉鈴筒)·오색실·두루마기가 있다. 전적류는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판본으로서, 발원문인 「아미타존상 신조성 복장 발원 동참기」를 비롯하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불설관세음경(佛說觀世音經)』 등의 경전과 진언문, 다라니 등이 있다.
후령통에는 동·서·남·북·중앙, 오방을 상징하는 청색·흰색·홍색·자주색·황색의 오색실이 들어 있었고, 두루마기는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형태로 색상과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특징]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는 통견(通肩) 형식으로, 왼 어깨를 덮어 내린 옷자락은 오른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오른 어깨를 덮고 있는 옷자락은 팔이 드러나도록 팔꿈치 아래를 돌아 왼쪽 겨드랑이로 흘러서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는 대좌형 수미단은 측면에 금강저(金剛杵)와 모란꽃이 꽂힌 꽃병 등이 층별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러한 조성 수법은 고려시대 불교 의식에 쓰이는 탁자인 불탁(佛卓)의 특징을 보여 준다. 만들어진 방법으로 보아 대웅전 건립 연대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만든 작가의 이름과 조성 시기가 정확히 밝혀져 있고 수미단은 유일하게 대좌형 수미단을 육각과 장방형으로 각기 구성하고 있어, 불교미술사와 공예사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된다. 또한 두루마기는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모든 직물의 색상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조선 중기 직물사와 염색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