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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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學軍-大興官衙占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1984년 10월 7일 예포의 동학농민군이 충청남도 예산군의 대흥관아를 점령하여 내포 동학농민운동의 전환점이 된 사건.
[개설]
내포 지역의 동학농민군 중 특히 예포의 동학농민군이 가장 큰 성과를 올린 투쟁이 ‘대흥관아 점령’이었다. 박덕칠 등은 1984년 10월 7일 밤, 대흥관아를 기습하여 군량 창고와 무기고를 부수고 관아를 점령하였다.
[역사적 배경]
내포지역의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주도자들은 각 포를 대표하는 대표자이거나 이른바 ‘고위 동학 지도자’들로 파악된다. 당시 충청도의 동학농민군을 해산시키는 임무를 맡고 정부에서 파견한 선무사 정경원은 홍주로 내려와 각 지역의 동학지도자들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파악된 고위 동학지도자들은 홍주의 김영필(金永弼), 정대철(丁大哲), 이한규(李漢奎), 정원갑(鄭元甲), 나성뢰(羅成蕾), 덕산의 이춘실(李春實), 예산의 박덕칠[朴德七, 朴熙寅], 박도일[朴道一, 朴寅鎬], 대흥의 유치교(兪致敎), 보령의 이원백(李源百), 남포의 추용성(秋鏞成), 정산의 김기창(金基昌), 면천의 이창구(李昌求)였다.
이들 중 특히나 내포의 동학 거두로 알려진 인물은 박도일, 박덕칠, 이창구였다. 동학은 각 지역별로 포(包)라는 조직을 두었는데, 박덕칠은 예산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박덕칠을 따르는 자들은 박덕칠을 예포(禮包)라고 불렀다. 또한 박도일은 덕산(德山)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박도일을 따르는 자들은 박도일을 덕포(德包)라고 불렀다.
[경과]
박덕칠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예포의 대접주로 맹활약한 인물이다. 예포의 동학농민군을 이끌면서 많은 활동을 벌여 성과를 올렸지만 가장 큰 성과를 올린 투쟁은 ‘대흥관아 점령’이었다. 대흥 지역의 유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동학농민군 진압에 앞장섰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박덕칠은 10월 7일 밤, 대흥관아를 기습하여 군량 창고와 무기고를 부수고 관아를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 군수 이창세의 동학농민군 토벌 계획을 미리 차단하였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전투 대비를 위하여 군량미와 무기가 있는 군량 창고와 무기고를 부순 것이다.
[결과]
대흥관아 점령은 내포 동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의미했으며, 이후 관군이 강도 높은 진압을 모색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군량 창고와 무기고를 부수어 동학농민군 토벌 계획을 미리 차단하고 앞으로의 전투를 대비하였다는 점에서 내포 동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마련하였다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