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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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未死里 |
영어공식명칭 | Mis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정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조선 후기 『정감록(鄭鑑錄)』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난리를 피할 수 있고, 흉년이 들지 않아 능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십승지(十勝地)의 한 곳에 정착하여 마을 이름을 미사리(未死里)[죽지 않는 곳]라 하였다. 조씨들이 터를 잡은 곳은 지금도 조촌(趙村)이라 하고 그 윗 동네를 명생동(命生洞)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는 경상도 사람들도 십승지 가운데 “일곱 째의 승지는 영월 정동쪽 상류이니 어지러운 세상에 종적을 감출 만한 곳이나 수염이 없는 자가 먼저 들어오면 틀릴 것이다[七曰 寧越正東上流 可藏亂踪 無髮者先入則否].”라는 말을 믿고 명당인 미사리에 찾아와 자리를 잡았다. 19세기 홍경래의 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평안도에서 양씨들이 난리를 피하여 미사리로 찾아들어 정착하기도 하였다.
[명칭 유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골짜기에 있는 자연마을로, 『정감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담아 미사리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기묘사화 때 큰 화를 당한 조광조(趙光祖)의 후손들이 공주로 낙향하였다가 평창 주진을 거쳐 십승지를 찾아서 와석리에 터를 잡고 마을 이름을 미사리라 하였다. 그 후 후손들이 미사리 골짜기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조촌(趙村)[조씨들의 집단 거주지]이라고 불렀다. 한양조씨 17세손 조홍필(趙弘必)[1707~1777]이 입향조로 김삿갓면에 터를 잡고 살다가 죽었다. 조홍필은 부인 인동 장씨와 함께 진별리 베리골에 묻혔는데 현재 양주터라고 부르고 있다.
미사리는 논이 없고 화전민들이 개간한 밭에서 콩, 옥수수, 고추 등의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자연환경]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의 경계인 어래산[1063,6m]의 삼도봉 아래 자리 잡은 미사리마을은 18년 동안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여 환경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청정 지역이다. 2021년 올해도 마을회의를 통하여 휴식년제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현황]
미사리는 경관이 빼어나 지방도 제88호선에서 미사리촌집 식당과 미사밸리펜션 앞으로 맑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펜션 세 곳과 폐교가 된 외룡초등힉교 와석분교가 야영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2021년 현재 30 가구가 살고 있는데 토착민은 8가구이고 나머지는 귀촌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