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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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口里 |
영어공식명칭 | Ganggu-ri |
이칭/별칭 | 골마을,대추밭골,신기동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강구리(江口里)는 오십천이 남동쪽 바다로 흘러드는 해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강구항이 있어 수산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행정리는 강구1리·강구2리·강구3리·강구4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강구리의 강구(江口)는 오십천 강 어구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구1리는 강구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일제강점기인 1917년 축항(築港) 공사로 어선 정박이 늘면서 어업 전진기지로 변하자 갈대밭을 매립하여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많은 일본인이 거주하였다. 강구2리는 강구마을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일제시대에 변전소가 설치되어 전기회사가 자리하게 되면서 전기회사 마을이라고도 하였다. 갈대밭을 매립한 시가지 평지에는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고 산비탈에는 한인들이 주로 살았는데, 이곳을 골마을이라고 불렀다. 강구3리는 강구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평지가 잠식되자 한인들이 강구3리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웃한 골마을과 더불어 대추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추밭골이라 불렀다. 강구4리는 강구항이 어업항으로 번창하자 새로 생긴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기동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강구리는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중남면(中南面) 지역으로 고을의 외항 역할을 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으며, 1910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마을이 생김에 따라 신강(新江)과 구강(舊江)으로 나누어 불렀다. 1914년 3월 1일 일제강점기에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강구동으로 하여 영덕면(盈德面)에 속하였으며,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과 동시에 강구면에 속하였다. 강구면에 속한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로 개칭할 때, 강구동은 강구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동쪽은 동해안, 서쪽과 남쪽은 오십천, 북쪽은 봉화산[141m]에서 이어지는 능선과 경계를 이루는 강구리는 대부분 높이 약 150m 이하의 구릉지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오십천을 따라 발달한 범람원과 하안단구는 서쪽에는 좁고 긴 형태, 남쪽에는 반원 형태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 평지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현황]
강구리의 2020년 말 면적은 1.37㎢이며,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 총 452가구에 832명[남 388명, 여 444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동해, 서쪽으로는 오포1리·오포2리·소월리, 남쪽은 오포3리·삼사리, 북쪽은 금진리·금호리가 있으며, 영덕읍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8㎞ 지점에 강구항이 있다. 동해안 일대에 형성된 해안단구를 따라 국도 제20호선이 조성되어 있고, 강구항 동쪽에는 2016년 파식대 위에 인공적으로 만든 해파랑공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