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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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鬱垈1里 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1리 |
집필자 | 서영각 |
의례 장소 | 울대리 산신제당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1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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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3월 초|9월 초 |
신당/신체 | 산제당|오봉산 산신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1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울대1리 산신제는 매년 음력 3월 초와 9월 초에 날을 받아 마을 동쪽 갓바위 아래 야산 정상에 있는 산제당에서 오봉산 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마을 사람이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기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울대리 사람들은 오봉산 산신[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신]이 매우 영험하다고 믿어 신성시함으로써 해마다 두 차례씩 치성을 드리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울대1리 산신제가 언제부터 있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3월과 9월에 날짜를 정해 한 해에 두 번 지내던 것으로, 예전에 소를 잡아 산신제에 쓰고 제의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나누었으나 이런 전통은 모습을 감추었다. 울대1리 사람들은 오봉산 산신령을 받들어 왔는데, 특이하게도 할아버지 산신과 할머니 산신 두 분이다. 울대1리 산신제는 바로 이 두 산신령에게 마을 사람이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주고, 산짐승의 피해를 막아 주며,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해를 바꿀 때마다 마을 사람 모두의 염원을 담아 산신에게 빌었는데, 울대1리 산신제는 한 번도 지내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산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강하였으나 지금은 오봉산 산신령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제를 지내는 산제당은 마을 동쪽 갓바위 아래 야산 정상에 있다. 이를 마을 사람들은 도당이라고 일컫는다. 산제당은 2칸으로 된 목조 기와집이다. 지금은 붉은색 기와지붕에 시멘트로 벽을 칠해 놓았지만 건물의 골격만은 옛날 그대로이다. 예전에는 오봉산 할아버지 산신령과 할머니 산신령의 화상이 산제당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이 화상을 도난당해서 그 뒤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산신당 안에는 제상과 제기만 보관되어 있다. 산제당[도당] 옆에는 오래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절차]
음력 2월 그믐과 8월 그믐에 산신제 날짜를 잡는데, 화주로 모실 사람의 생년월일을 보아 날을 받았다. 화주는 집안에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선출하며, 제물을 준비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 외에도 축관 한 명을 더 뽑았다. 산신제의 날짜를 잡고 화주와 축관이 정해지면 화주 집 대문과 당집에 왼쪽으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에 나가서 잘 수 없으며, 손톱이나 발톱도 깎지 않았다. 심지어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쌀을 씻고 난 쌀뜨물마저도 소에게 먼저 먹이면 소가 눈을 먼다고 하여 산신을 영험한 존재로 믿고 치성을 드렸다.
산신제를 지내는 날 하루 전에 화주는 제물을 준비하는데, 먼저 산신당 옆에 조라술을 담가 두었다가 산신제 당일에 걸러서 쓴다. 팥 시루떡 한 시루와 절편, 산적, 편, 삼색실과, 소머리, 북어, 국수 한 그릇, 조라술 등을 마련한다. 원래 산신제에는 소를 산으로 끌고 가 직접 잡아서 사용하였으나 1960~1970년대 이후에는 간편하게 소머리로 대신하였다. 제를 지내고 남은 고기는 마을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경비가 많이 드는 데다 정부에서 밀도살을 금지한 뒤로 소를 잡는 풍경은 일찍이 사라졌다.
산신제의 제의 절차는 일반 제사와 별로 다르지 않다.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리는데, 축문은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를 올릴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소지는 화주와 축관의 것을 먼저 올린 다음 마을 전체의 대동 소지를 올린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음복을 한다. 그러나 음복은 도당에서만 하며, 마을에 내려와서는 하지 않는다. 제물로 쓰인 음식은 조금씩 나누어 마을 각 가구마다 돌린다. 제사 비용은 마을의 가구 수로 균등하게 나누어 부담하였다.
[축문]
축문을 쓸 사람도 없고, 축문의 전통이 사라져 축문을 구할 수도 없다. 축문의 내용은 정해진 것이 없고 해마다 조금씩 달랐으며 내용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만 울대1리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를 지낼 때 마을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으며, 또한 산짐승의 피해를 막아 주고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부대 행사]
산신제와 별도로 울대1리에서는 3년마다 한 번씩 만신을 데려다가 큰굿을 치렀다. 봄이나 가을 중 적당한 계절을 택해 한 번만 굿을 하였는데 한창 성대하게 할 때는 의정부에서 10여 명의 이름난 만신들이 와서 굿을 한 적도 있었다. 이틀에 걸쳐 굿판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밤낮을 쉬지 않고 치른 굿을 마을 사람들은 산신굿이라 하였다. 산신제를 정성 들여 지내면서도 산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굿을 따로 하였다. 이 마을의 굿이 색다른 것은 산신제를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굿을 할 때도 화주나 축관을 선출하여 이들로 하여금 굿을 주관하도록 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