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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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上里 陶堂祭 |
이칭/별칭 | 도당제,대동산치성,도당치성,산치성,당산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
집필자 | 서영각 |
의례 장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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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9월 9일 오후 8시 경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에서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삼상리 도당제는 2년에 한 번씩 홀수 해[주로 음력 9월 9일 8시 경]에 산제 터에서 제물을 차려 놓고 마을의 수호신인 도당산(陶堂山) 신령에게 주민 모두가 태평하고 탈이 없기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삼상리 도당제는 부르는 명칭이 여러 가지이다. 마을 사람들은 통상 ‘도당제’라고 하지만 동계제 장부에는 ‘대동산치성(大同山致誠)’, ‘도당치성’, ‘산치성’, ‘당산제’ 등의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도당제는 마을 사람 모두가 산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산제사이다. 축문에도 산고사(山告祀)로 되어 있으니 산신에게 지내는 고사임이 분명하다. 또한 축문에 ‘도당산 신령(陶堂山神靈)’이란 명칭을 보면, 도당은 ‘都堂’이 아니라 ‘陶堂’이므로 도당제는 도당산신제(陶堂山神祭)가 맞을 것으로 본다.
[연원 및 변천]
장흥면 삼상리 배울마을에서 2년에 한 번씩 홀수 해에 마을 공동으로 도당제와 도당굿을 치러 왔다. 그러나 도당굿은 많은 경비 부담을 꺼려 1975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다만 도당제는 그대로 실시되었는데, 음력 9월 9일에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몇 차례 예외가 있었다.
1977년의 경우 음력 10월 9일에 지냈으며, 1979년에는 음력 10월 1일에 지낸 것으로 삼상리 동계제 장부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가장 좋은 날로 여겨 이날에 지내거나 여의치 않은 경우 이후 10월 9일 경까지 지냈던 것 같다. 9월 9일이 아닌 날에 지낸 까닭은 당시 이장이 마을 형편에 따라 제의 날짜를 잡아 지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모두 9월 9일에 도당제를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나자 1997년에는 도당제와 함께 도당굿을 치렀다. 서울 수색에서 박수무당과 악사들을 초청하여 하루 동안 도당굿을 했다고 한다. 도당굿은 만신을 데려다가 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때는 박수무당을 불러 치렀다. 굿을 할 때는 해금, 피리, 제금, 장구잡이 등 5~6명의 악사가 함께 하였다.
삼상리 도당제와 도당굿은 같은 날 치렀는데 경비가 많이 들어서 도당굿은 중단되었고, 그 이후에도 도당제는 유지되었다. 도당제는 마을에서 선정한 제관이 주관하는 행사였고, 도당굿은 무당이 주관한 행사였다. 그러나 도당제나 도당굿에 사용하는 제물은 모두 제관이 준비하고 무당은 굿만을 진행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마을의 도당제를 지내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그래도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9월 9일 반드시 소를 잡아 제를 지낸 다음,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던 관례는 정부에서 밀도살을 하지 못하게 한 이후로 사라졌다. 대신 소머리나 우족 등을 사다가 제를 지내 왔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사 터 주변에 특별히 모시는 신목(神木)이나 신체(身體)는 따로 없다. 신당(神堂)이나 당집도 따로 없다. 따라서 당일 산제 터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지내곤 하였다.
[절차]
음력 9월 1일 마을 회의에서 제관을 선출하면 이들이 산제에 필요한 제물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복이 있고 깨끗한 사람으로 상하주[도유사(都有司)라고도 함]와 중하주[부유사(副有司)라고도 함)를 선출하여 이들이 제의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마을 이장이 도유사가 되고 반장들이 부유사가 되어 제를 주관하였다.
마을의 규약에 도유사는 치성의 모든 절차를 총지휘하며, 이장이 자동으로 도유사를 맡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유사는 마을 각 반장이 맡는다. 도유사와 부유사는 치성에 드는 모든 비용을 걷고 제수를 마련하며, 당일 오전부터 밤 11시 치성이 끝날 때까지 책임지고 행사를 주관하였다. 또한 9월 1일에는 도유사와 부유사 및 마을 노인들이 모여 산제에 대한 준비 회의를 하며,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산제를 지내는 곳에 가서 조라술을 담갔다. 조라술은 도유사가 선정하여 9월 3일에 당산에 독을 묻고 빚는다.
시루떡은 아홉 시루를 준비하며, 이 역시 재수가 좋은 사람을 정해 맡긴다. 시루떡과 함께 백설기, 소머리 1개, 우족 2개, 전육 근, 생닭 1마리, 배 10개, 사과 10개, 감 10개, 밤 5합, 대추 5합, 산자 봉, 사고지 20권, 창호지 5장, 약과 2봉, 북어 10마리, 만수향 1갑, 양초 2갑을 준비하는데, 제의를 도와주는 천막과 장작 및 모닥불 등도 빠트리지 않고 가져간다.
제의는 당일 오전 10시 경부터 준비하여 밤 11시경에 끝나는데, 도당제는 저녁 8시 경에 지낸다. 제례는 먼저 집례[헌관 이하 참사한 마을 사람 모두가 배례]로부터 시작하여 초헌관과 대축관·아헌관·종헌관의 헌작을 거친다. 축관은 축문을 읽고 소지도 올려 준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음복을 한다.
[축문]
축문에는 삼상리 도당산 산신에게 9월에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을이 태평하고 어려움이 없도록 산신이 도와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다음은 1983년 계해년 9월 9일 영구보존건(永久保存件)으로 작성한 장흥면 삼상리의 「산치성절차초(山致誠節次抄)」의 축문이다.
“유세차 계해 구월 정묘 구일 을해 삼상리민 대표 유학 ○○○ 감소고우 일영봉락산 도당산신령 복이금당 구추가절 리민일동 백가집성 예년준례 근이주과진수 자이건고 신기보우 동중태평 살무후간 복이원지천 우신 상향(惟歲次 癸亥 九月 丁卯 九日 乙亥 三上里民 代表 幼學 ○○○ 敢昭告于 日迎峰駱山 陶堂山神靈 伏以今當 九秋佳節 里民一同 百家集誠 例年準禮 謹以酒果珍羞 玆以虔告 神其保佑 洞中泰平 殺無後艱 伏以願祗薦 于神 尙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