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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68
한자 天府里古墳群
영어의미역 Tumuli in Cheonbu-ri
이칭/별칭 죽암 고분군,천부리 고분군1,천부리 고분군2,천부리 고분군3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 187|천부리 647|천부리 649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석실분|적석분|기단식 적석석실분
건립시기/연도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높이 5~6m
지름 7~13m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 187 지도보기 |천부리 647지도보기|천부리 649지도보기
소유자 울릉군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개설]

천부리는 울릉도 북쪽 해안의 동편에 위치하며, 해변을 제외하고 높이 400m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앞 동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가면 죽암을 거쳐 섬목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큰 홍문동을 거쳐 나리 분지에 이른다. 천부리는 원래 조선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 배를 만들어 고기를 잡고 벌목을 해갔기 때문에 왜선창(倭船艙) 또는 옛선창으로 불렸다.

[위치]

천부리 고분군은 남쪽의 가파른 능선이 바다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완경사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다. 전방으로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어 고분의 상당한 부분이 훼손되었으며, 고분 사이의 거리는 약 20m이다. 고분은 3개의 무리로 나뉜다.

천부리 고분군1은 천부리 649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천부리 고분군2는 천부리 647번지 일대로 천부리 고분군1과 큰 홍문동 사이의 시멘트 포장길변의 밭과 숲에 3기가 분포한다. 이곳은 천부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400m 떨어진 지점으로, 양편의 계곡 사이에 형성된 해발 200~220m 내외의 비교적 완만한 산 사면이다.

천부리 고분군3은 천부리 187번지 일대로 죽암마을에서 죽암천을 따라 약 500m 올라간 손화자의 집 앞쪽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남쪽의 가파른 능선에서 분기한 해발 122~130m의 돌출 능선 정상부로, 오른쪽은 석포동백운동에서 내려온 계곡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이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로 서쪽 구릉에서 2~3기, 남쪽 산 정상 부근에서 2기, 서남쪽 구릉에서 3기, 죽암에서 3기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조사된 고분은 천부리 1·2·3·4호분과 죽암 1·2·3호분이다. 천부리 2호분는 1998년 영남대학교에 의한 지표 조사 당시 본천부(本天府) 고분으로 명명되었다.

1998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천부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100m 떨어진 지점의 능선에서 4기의 고분이 추가로 조사되었다. 2002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는 이 4기의 고분에서 약 150m 떨어진 천년포에서 큰 홍문동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쪽 밭에서 3기가 다시 추가로 확인되었다.

[형태]

천부리 고분군1은 밭 개간으로 상당한 부분이 훼손되어 정확한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없다. 고분의 잔존 규모는 대략 하단 직경 7~8m, 높이 5~6m 정도이며, 평면 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천부리 고분군2의 1호분은 길 아래쪽으로 산 사면을 개간한 밭 중간에 있으며, 잡목이 우거져 있다. 이 1호분은 밭을 개간할 때 나온 잡석으로 채워져 있어 외형상 고분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나, 상부에 개석으로 추정되는 장대석과 그 사이에서 회청색 경질 토기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고분으로 보인다. 2호분과 3호분은 도로 위쪽의 솔숲에 있는 닭장 뒤에 15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위치한다. 2호분은 밭의 구릉상에 위치하며, 규모는 길이 13m, 너비 8m 정도이다. 석실은 지상에 노출된 채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주변에는 1.3×1.0×0.3m의 개석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3호분의 규모는 길이 7.5m, 너비 7m 정도이고, 주변에는 1.4×0.8~0.9×0.25~0.3m 정도의 할석 수 매가 방치되어 있다.

천부리 고분군3은 대부분 도굴로 인해 석실이 노출되어 있거나 붕괴되었다. 1호분은 산길 개설로 인해 석실 측벽 최하단석만 확인되었다. 석실은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둔 것으로 추정되며, 잔존 길이 8.7m, 높이 0.7m에 4단이 남아 있다. 벽석재는 대부분 50×14~50×5~17㎝ 정도의 할석이 사용되었다. 2호분은 1호분에서 서남쪽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석실의 장축은 남북 방향이다. 석실 규모는 길이 5.7~6m 내외, 너비 0.6~0.9m, 높이 0.7~0.85m 가량 된다. 측벽은 할석으로 내경하게 7~8단 정도 쌓았으며, 상부에는 개석 4매가 남아 있고, 봉토는 없다. 석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네모서리를 모죽임으로 처리하였다. 3호분은 경사가 급한 서쪽은 석축을 높게 쌓았으며, 동쪽은 지면을 파서 석실 바닥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실 입구는 바다가 조망되는 남쪽으로 열려 있으며, 도굴로 인해 붕괴되었다. 석실 규모는 길이 약 6.5m, 너비 0.5~0.7m, 높이 약 0.8~0.9m이다. 측벽은 할석으로 5~6단 정도 쌓은 후, 그 위에 1~1.4×0.4~1.4×0.2~0.25m의 얇은 판석으로 된 개석을 덮었다.

[출토유물]

유물은 고분군 주변에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이 많이 수습되었다. 특히, 주변의 밭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들이 많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천부리 고분군은 훼손이 심해 규모나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에 남아 있는 적석(積石)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축조된 울릉도식 기단식 적석석실분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은 울릉도 고분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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