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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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月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금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옥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금월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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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금월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98㎢ |
가구수 | 79가구 |
인구[남/여] | 137명[남 61명/여 76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평(錦坪) 마을, 칠립(漆立) 마을, 대각(大角) 마을을 합하여 금월리(錦月里)라 하였는데, 이때 금평리의 ‘금’ 자만 따고 마을과는 관계가 없는 ‘월’ 자를 붙인 연유는 알 수 없다. 대각 마을은 금월리에 속해 있는 세 마을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 대각산 아래 동남쪽에 있어 대각산의 지명을 그대로 따왔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월리에 편입되었고, 1994년 행정리인 칠립리에서 분리되었다. 옛날에 마을 안에 사찰이 많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기와 조각 등 그 흔적이 출토되기도 한다.
칠립 마을은 350년 전 설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원래 ‘칠립’이란 옻칠을 한 갓을 말한다. 이는 대각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산의 형상이 옻칠을 한 갓 모양으로, 장군대좌(將軍大座)의 상대성 지명으로 옥관(玉冠)이란 말이 변음되어 옻 갓이 되었으며, 후일 한자 표기를 하면서 ‘옻 칠’ 자를 써 칠립(漆笠)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더욱 변하여 칠립(漆立)으로 표기하면서 옻이 서 있다는 말로 본뜻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이름으로 변하였다. 더욱이 예전 이 마을에 큰 가람이 있었을 뿐 아니라 많은 설화와 함께 부자가 많은 마을로 전해져 이름에 대한 바른 정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두(江頭) 마을은 대각산 남쪽 한 지맥이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칠립 마을의 백호등이자 안산을 이루고 초막골 앞뜰까지 내려가, 이 능선 남쪽에서 어은리와의 사이에 형성되었다. 마을 앞뜰이 비단 자락 같은 들이라 하여 금평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터 강두 마을로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주민들에 따르면 섬진강의 발원지라 강 머리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강두가 되었다고 한다. 1971년 칠립 마을과 강두 마을이 행정리로 나뉘었다가 1994년 칠립 마을에서 대각 마을이 분리되어 3개 행정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금월리는 복흥면 서쪽에 위치한다. 명지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산맥이 비기재를 거쳐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로 내려가는 감상굴재[옛길]를 휘돌면서 동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솟아 오른 산이 대각산[528m]이다. 이 산은 특이하게도 남북으로 약 1㎞가량 산맥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대각산 동쪽 기슭에 마을 두 곳이 있는데 북쪽이 대각 마을, 남쪽이 칠립 마을이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금월리의 면적은 1.98㎢이며, 인구는 79가구, 137명으로 남자가 61명, 여자가 76명이다. 3개 행정리와 6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어귀에 고인돌 여러 기가 있어 오래전부터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마을 앞에 화재와 재난을 방지하는 비보용으로 나무 깃대봉[짐대]을 세웠는데 이 풍습은 400여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2월 1일에 깃대봉 두 개를 세운다. 특히 대각 마을은 화재막이 짐대를 세우는 것이 정월 세시풍속 중 가장 큰 마을 행사다.
대각 마을 입구 모정 옆에는 선돌 1기가 있다. 크기는 높이 120㎝, 폭 25㎝, 두께 28㎝이다. 마을 주민 진동순[2013년 당시 77세]에 따르면 이 선돌은 본래 마을 앞뜰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을 1970년대에 경지 정리하면서 마을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마을 앞 들 가운데 풍수 비보용으로 세운 것이었으나 줄다리기가 중단되고 용도를 상실하면서 단순한 선돌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