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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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楊里 |
이칭/별칭 | 수앵정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수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순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수양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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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수양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47㎢ |
가구수 | 45가구 |
인구[남/여] | 84명[남 36명/여 48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수양리(水楊里)는 조선 전기 순천 김씨(順天金氏)가 터를 정한 뒤, 마을이 유지앵소(柳枝鶯巢) 형상이나 버드나무 숲이 빈약하여 마을 앞 수구에 비보(裨補)를 위해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꾀꼬리는 버드나무 가지에 당사실로 줄을 늘여 줄 끝에 집을 만드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 정상이므로 ‘수앵정’이라 하였던 것이 변하여 ‘수양정’이 되고 다시 수양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전라남도 승주군의 송광사 금불상을 충청남도 공주로 옮겨 갈 때 이 마을에서 쉬어 갔다 하여 수양승(修養僧)이라 하였던 것이 변한 말이라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순창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금과면은 1314년(충숙왕 1) 금동방(金洞坊)과 목과방(木果坊)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60년(영조 36) 금동방 11개 리와 목과방 8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897년(고종 34) 방을 면으로 고치면서 금동면과 목과면이 되면서 목과면에는 호치리와 남계리, 금동면에는 수양리가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동면과 목과면이 통합되면서 금과면(金果面)이 되었고, 수양리도 금과면 소속이 되었다.
[자연 환경]
금과면의 정동쪽에 위치한 수양리는 북쪽으로 발산리와 풍산면 죽곡리, 남쪽으로 대성리와 풍산면 유정리, 서쪽으로 동전리, 동쪽으로 풍산면 반월리와 유정리가 인접하여 있다. 아미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산수동을 지나면서 결인되었다가 남쪽으로 다시 솟아오르니 대붕산(大鵬山)[313m]이다. 이 산이 남쪽으로 다시 내려가다 서북쪽으로 박환하여 내려가면 금과면 일대의 물이 총집합하여 흐르는 사천(沙川)을 만나 가지 못하고 머무른 곳이 고산(高山)[180m]이다. 가리보(佳鸝洑)는 수양리 서쪽에 있는 논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아 놓은 둑을 보(洑)라 하는데, 이름이 아름다운 꾀꼬리와 같다 하여 가리보라고 하였다.
고산동은 고산 밑에 있는 마을을 말하고, 고산제는 고산동 북동쪽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뒷골은 수양리 북쪽 발산리 사이 골짜기를 말하고, 버드나무 거리는 수양리 서쪽에 있는 버드나무가 20여 그루 있는 거리를 말한다. 구래보는 수양리 서남쪽에 있는 보를 말하고, 진태걸은 수양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탑성이골은 고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탑이 있었다고 하며, 고두개재는 고산리에서 풍산면 반월리로 넘나드는 고갯길을 말한다. 고사대(古寺垈)는 탑골 안쪽에 옛날 절이 있었던 터를 말한다고 한다.
[현황]
2021년 12월 31일 현재 수양리의 면적은 1.47㎢로, 이 중 논 39만 6,808㎡, 밭 14만 2,683㎡, 임야 73만 5,173㎡이다. 인구는 45가구, 84명으로 남자가 36명, 여자가 48명이다. 토착 성씨로 순천 김씨(順川金氏), 창원 정씨(昌原丁氏)가 있다. 지방도 730호선이 수양리 남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지나 동전리를 지나고, 지방도 729호선은 대성리에서 수양리 정남서쪽을 지나 수양리 중앙에서 지방도 730호선과 만난다. ‘동네 개바우’라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부모 없이 형제가 걸식하며 목숨을 이어 가고 있었는데, 동생은 이름이 없어 ‘동네개’라고 불렀다. 어느 날 동생이 바위 위에서 놀고 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동생을 물고 갔다. 형이 동네 사람들에게 “호랑이가 동네 개를 물고 간다!”고 외치자 동네 사람들은 호랑이가 개를 물고 가는 일은 보통이라 생각하여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형은 이 바위 위에서 목 놓아 울었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동네 개바우라 부른다고 한다.